천강에 비친 달 〈30〉
내불당
내원불당(內願佛堂)을 줄여서 내원당 혹은 내불당이라고 불렀다. 왕실의 소원을 부처에게 비는 곳이라는 뜻의 집이었다. 세종은 내불당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창덕궁에 있던 내불당을 경복궁 뒤쪽으로 옮긴 불사도 세종 때의 일이었다. 태조의 첫째부인이었던 신의왕후의 위패를 봉안한 금소전을 옮기면서 함께 불사했던 것이다.
세종이 내불당을 소중히 여기고 외호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태조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를 향한 효성의 발로인 셈이었다. 금소전을 조성할 때였다. 태조는 첫째왕비였던 신의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내불당을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원경왕후는 나이 50이 넘어서부터는 몸이 부쩍 쇠약해져서 동대문 밖에 있는 비구니사찰 정업원(淨業院)까지도 움직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 태종이 혁파했던 내불당을 다시 궁내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태종 때 유명무실하게 방치했던 내불당을 다시 살려 원경왕후에게 바친 셈이었다. 내불당을 살리고 보니 세종 자신도 더 없이 좋았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가끔 내불당을 들르곤 했는데 대부분은 내시 김용기(金龍奇)만을 데리고 갔다. 신하 중에서도 사헌부나 사간원 관원들의 간섭을 받기 귀찮아서였다.
내불당에서 향을 사르고 난 뒤 혼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잡스런 나랏일들이 잠시 동안이지만 머릿속에서 씻어졌다. 그때 눈앞에 섬광처럼 번쩍이며 보이는 것은 불단 위의 금불상이었다. 옥에 개금을 한 불상이었다. 더구나 금불상 속에는 부처의 사리가 들어 있었다. 치아사리 네 과(果)가 봉안돼 있었던 것이다. 두골사리와 패엽경 및 가사는 흥천사 사리전에 있었다.
“너도 이리 와 앉아 보거라.”
“전하, 저는 이곳에 서 있어야 하옵니다.”
내시 김용기는 내불당 큰문 옆에서 허리를 굽힌 채 서 있었다. 큰문은 임금이 드나드는 문이라 하여 어간이라 했다.
“오늘은 신하들도 일찍 모두 퇴궐하고 없으니 괜찮다. 부처 앞에서는 임금도 신하도 다 평등하다고 하지 않느냐.”
“전하, 내불당 안까지 저를 데라고 온 것만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나이다.”
“너도 석교를 믿느냐?”
“친지 중에는 승려가 된 사람도 더러 있사옵니다.”
“그래서 더 기쁜 것이냐?”
“전하의 은혜가 아니라면 어찌 감히 부처님 사리 앞에 설 수 있겠사옵니까?”
“너도 불상 안에 사리가 있음을 알고 있구나.”
“내불당에 부처님 사리가 있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나 다름없사옵니다.”
“내불당으로 하늘의 부처가 내려왔다는 너의 말솜씨가 그럴 듯하구나.”
“전하, 저는 아무 것도 모르옵니다.”
“아니다. 이곳을 내불당이라 하는 것보다 천불사(天佛寺)라 하는 것이 더 거룩하고 아름답구나.”
“정말 개명할 것이옵니까?”
“헌부의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내불당에 부처의 사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만이 많은데 말이야. 내불당을 절로 승격시킨다고 하면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느냐. 상소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그러니 천불사라는 말은 너와 나만 아는 일로 하자구나.”
금불상 속에 부처의 사리가 들어 있다는 것은 세종에게 몹시 흥미로웠다. 2500년 전에 살았던 부처의 사리가 조선 땅까지 왔다는 것이 신비롭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중국의 사신 중에 석교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오면 특별히 내불당을 참배하게 했다. 명나라 사신 황엄이 그랬다. 세종은 황엄이 사신으로 오자, 그를 이명덕, 원민생, 원숙에게 안내하게 하여 내불당을 참배시켰다. 세종은 내불당에 있던 부처의 사리 말고도 전국의 사찰에 있는 고승들의 사리 550과를 내불당으로 가져와 친견하도록 했던 것이다. 사헌부 신하들이 요사한 물건이므로 궐 밖으로 내치자고 상소하곤 하였지만 세종은 내불당 부처의 사리로 명나라 사신 황엄에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외교를 했다.
“용기야, 내불당 주지를 불러오너라.”
“지금 내불당 문밖에 있사옵니다.”
늙은 주지는 내불당 밖에서 두 손을 모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세종이 부르지 않는 한 내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불러 들여라.”
“주지는 안으로 드시오.”
그제야 늙은 주지가 내불당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너는 다시 흥천사로 돌아가거라.”
“전하,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그동안 내불당 일을 보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내불당 주지는 흥천사와 흥덕사에서 번갈아가며 파견 나오곤 했는데, 왕실의 크고 작은 재를 지낼 때는 흥천사, 흥덕사, 진관사는 물론 대자암 염불승들의 지원을 받았다.
“흥천사로 되돌아가면서 원하는 것이 있느냐?”
“아,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주지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내불당의 소임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많았다. 수시로 왕비나 상궁들이 찾아와 기도를 했고, 왕실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재를 지내야 했다. 더불어 문소전을 관리해야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신의왕후 위패 앞에서 염불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혼자 소임을 다 보았느냐?”
“상주하는 중은 동자승까지 포함해서 세 명이옵니다.”
“내불당 작은 요사에서 세 명이 거처했다는 말이냐?”
내불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요사는 10평 남짓한 작은 건물이었다. 요사는 숲속에 있었으므로 내불당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전혀 불편함이 없었사옵니다.”
“알았다. 물러가 있거라.”
늙은 주지가 나가고 난 뒤 세종이 내시에게 말했다. 세종이 내불당을 찾은 까닭은 때를 보아 신미를 부르기 위함이었다.
“용기야, 주지가 불편함이 없다고 하나 네가 가서 확인해 보거라.”
“전하, 다음 주지의 방 때문이옵니까?”
“그렇다. 네 눈으로 직접 청결한지 더러운지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신미가 올 것이다.”
세종은 내시에게 왜 신미가 내불당에서 살아야 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자와 수양, 안평, 정의공주까지만 아는 극비였다. 내불당에 임시관청인 정음청을 설치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었다. 우리 글자가 완성돼 가고 있다는 보고를 세자로부터 들은 세종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신미가 하루라도 빨리 내불당으로 와서 비밀을 지키면서도 불편함 없이 속도를 내야 했다.
신미가 거처할 요사의 방을 확인하고 돌아온 내시가 말했다.
“대방(大房)은 아니오나 빛이 잘 드는 양명한 방이옵니다.”
“알았다.”
“전하, 신미대사가 정말 오는 것이옵니까?”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세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불당을 나왔다. 신미가 왜 내불당으로 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내시 김용기는 세종을 뒤따르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가로저었다. 내시는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세종의 곤룡포가 석양빛을 받아 유난히 눈부셨다. 눈부신 것은 내불당의 금불상만이 아니었다. 세종의 뒷모습도 일렁이는 금빛이었다. 내시 김용기는 세자와 왕자들이 존경하는 신미가 내불당으로 온다니 갑자기 가슴이 설레었다. 뿐만 아니라 내불당에서 무언가 상서로운 일 하나가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창제의 주역 신미대사가 한양에 올라왔을 때 자주 주석했던 고찰, 정릉 흥천사가 협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