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테라와다 불교, 특히 마하시 사야도의 닙바나 해설과 도과 성취의 안내
3. 수행의 도정
가. 이러한 방법으로...
나. 경이로움
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라. Sampajañña(분명한 앎)의 가르침
앎을 보는 의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까지 만으로도 그렇게 즐겁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때로 주위에서 본삼매를 거쳐 신통을 얻었다는 이들의 간증 같은 얘기를 듣습니다만, 과연 신통을 얻음이 앞서 말한 즐거움과 행복을 체감하셨는지 묻고, 과연 신통을 얻으면 우리에게 무슨 이익, 보탬이 있는가도 묻고 싶습니다. 괴로움의 지멸, 번뇌망상의 결박에서 벗어난 고요와 평온을 얻으셨는가도 함께 말입니다. 저는 체험해 보지 못해 신통방통함을 말할 수 없지만, 예를 들어 타심통이니 숙명통을 얻었다고 하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번뇌와 괴로움을 더할 뿐이라 생각함은 저만의 추측은 아닐 것입니다. 붓다께서도 아무 외도들이 흉내 내지 못한 쌍신변의 신통까지도 가지고 계셨지만, 다른 외도들과의 차별을 위해서도 신통을 사용치 말라 경고하셨습니다. 성인의 과위에 오르면 신통은 자연 열린다 하였습니다. 신통은 곧 깨달음이란 등식으로 인식된 한국 불교의 병폐가 문제입니다. 괴로움을 벗어난 안온한 행복감과 비견될 수 없음은 잠깐의 유추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도과의 성취를 위한 문턱에 이르렀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 문턱 앞에서 마냥 즐기기만 하고 흡족해 해서는 안 된다는 사야도의 경책과 스스로의 담금질로 열심히 의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의식의 흐름을 여실하게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식의 사라짐”은 너무 어렵습니다. 명상을 시작하여 빠를 때는 20분 이내의 시간에 “앎, 앎, 앎”에 이르러 의식 보기를 여러 날, 인터뷰에서 그 과정을 보고하고 “의식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더 빠른 다른 테크닉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인터뷰 사야도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Sampajañña(분명한 앎)의 수행”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는 저의 수행기에서도 밝힌 바 있듯, 마조도일(馬祖道一)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맥을 같이하는 “일상의 알아차림”입니다. 의식의 흐름이 시작되는 아침,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보기 시작해, 의도에 의해 침대를 벗어나고 의도에 의해 시작되는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에 sati를 두고 그 연장이 잠자리에 드는 밤까지 놓침 없이 보는 이 수행을 제시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글로 기고하고 지도했던 Sampajañña가 이렇게 도과의 문턱에서 시행되는 수행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전에 이러한 지도 없이 교학을 공부할 때, 그걸 시행해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루 1시간 Sampajañña 수행을 완성하고 두 시간, 세 시간, 열 시간까지를 연장하며 성공하다가, 그 시간 이후에는 sati를 놓치는 시간이 너무 많음에 잠들기 전까지를 완성해 본 적 없이 포기했던 이 수행. 다시 붙잡고 해 보았습니다. 역시 어려웠습니다. 새벽 3시경 일어나 밤 11시경 잠들 때까지 아무런 장애가 없는 이곳 수행처에서도 어려웠습니다.
의식의 흐름 속에서 앎을 인식하는 그 의식을 보는 순간에 의식이 하얗게 변해감이 찰나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함에 너무 조급하고 안타까워 “안 됩니다”의 보고를 수차례, 그야말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만났고, 그걸 깨부수지 못하고 뛰어넘지 못한 안타까움. “수행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모든 것은 과정이다. 잘 된다 들뜨지 말고 안 된다고 속 끓일 일이 아니다.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탐욕이다”라는 수행 초기의 경구도 소용없이 조급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상황을 보고하고 묻자 사야도께서 마지막이랄 만큼 매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마. 바라밀 공덕
“도과의 성취는 바라밀 공덕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였습니다. 바라밀 공덕은 뒷글에서 별도로 소개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사야도와 뭇 수행자 앞에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사두, 사두, 사두”를 연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삶의 편력에서 10바라밀 공덕은 어느 것 하나라도 찾아보기 힘든데, 이야말로 “맨땅에 헤딩”도 유분수지,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탐욕만 부렸다는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노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머리로만 교설을 이해하고 일상은 바라밀 수행을 방기했고, 또한 수행의 테크닉만으로 도과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등의 실참수행의 허점들이 무수히 엄습해 왔습니다.
나의 공덕 쌓음이 그렇다 해서 은산철벽 앞에 무릎을 꿇는 무지랭이는 더욱 될 수 없는 일.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공격을 멈추다니...” 이제 인터뷰는 여기까지로 충분하고 넘쳤습니다.
이제부터 진짜로 수행해야 합니다. 명상 중에도 명상 전에도 서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생애 10바라밀 공덕과 삼빠자나 수행이 완성되어, 소타파나 막가팔라(수다원 도과), 사까다가미 막가팔라(사다함 도과), 아나가미 막가팔라(아나함 도과), 아라한 막가팔라(아라한 도과) 4쌍8배 도과를 기필코 성취하오리다. 고따마 붓다시여 가피 내려 주시옵고 수많은 성제자님들 바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두, 사두, 사두” 짧지 않은 이 서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서원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엔가 사야도의 가르침대로 찾아오는 도(magga)의 경지와 과(phala)의 경지. 앎을 인식하는 그 의식마저 하얀 백지 상태가 되어 더 알아차릴 것이 없이 팽팽한 로프가 탁 끊어지듯, 정신, 물질(nama-rupa)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 이 상태가 짧게는 몇 십 분부터 두세 시간, 일곱 여덟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까지 이어지는 도과의 성취를 기필코 체험하리란 서원입니다.
10년 전 이곳에서 비쿠 수계 후 수행시에 미얀마의 재가수행자가 위의 체험을 하고서 사야도께 보고하고, 미얀마어, 영어, 한국어로 통역할 때 한국어 통역관과 더불어 그 내용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풋내기 비쿠였으니... 오늘에야 그 일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이와 같은 상태를 이곳에서는 닙바나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어느 경전이나 주석서에서 이런 내용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같은 현상을 뚜렷하게 밝히며, 그 길로 인도하심이 마하시 사야도의 위대한 점으로 저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체험을 한 수행자가 “저는 닙바나를 체험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사야도께선 “그런 천박한 말을 하지 마라”고 일갈해 버리십니다. 이는 도과와 닙바나의 경지는 정신세계의 전개와 체험이지 이를 체험한 개체, 물질인 “놈”은 없다는 뜻이고 언설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더 나아가 “깨달았다”라는 말을 하게 되면 그런 이를 파문시킬 정도로 외도시 함은 같은 맥락으로 봐야겠지요. 그러고 보면, 과연 닙바나는 금단의 열매요, 아무나 넘나들 수 없는 붓다 고유의 성역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벙어리가 꾼 꿈”일까요? 아닙니다. 수행자만이 체험하는 지고의 정신세계가 펼쳐짐은 수행자 본인의 몫일뿐입니다. 체험해봅시다! 도과 성취와 닙바나 실현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 지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바. 모두가 같은 도정(道程)인가?
이와 같은 명상의 꼭짓점만으로도 도과의 성취와 닙바나의 실현이 있을 것인가? 이 의문은 앞글에서 설명하였듯 명상 수행만으로는 역부족이고, 그 수행을 받쳐주는 복합적 요소의 산물이나, 역시 수행 없이는-명상수행 없이는 그 곳에 도달함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의 행위입니다.
붓다 재세 시엔 그야말로 언하에 돈망생사(頓忘生死)하는 꼰단냐 같으신 분도 계셨습니다. 붓다의 사성제 법문, 한마디로 그 자리에서 수다원 도과를 이루셨고, 또한 “라조 하라낭(밀고 당기고)”만으로 도과를 성취한 수행자 중에서 바보 취급을 받던 쭐라 빤다까 비쿠, 붓다 친견 후 7일 만에 아라한과까지 성취하신 신통 제일의 목깔라나(목련존자), 붓다친견 15일 만에 아라한 도과를 이루신 지혜제일 법의 장군이라 일컫는 싸리뿟다(사리불) 존자, 마하테라 까사파(큰 장로 마하가섭)의 독려로 7일 간의 수행과 긴 경행 끝에 쉬어야겠다는 의도와 함께 침상에 올라 베개에 고개가 닿기 전에 당시 수다원 이었던 다문제일 아난다(아난) 존자는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과를 동시에 성취한 사례도 있습니다. 붓다 재세 시 수십 명의 아라한을 배출한 대강백(大講伯) 뽀띨라 장로는 붓다의 ”어리석은 뽀띨라여, 바보 뽀띨라”라는 붓다의 질책에 왜 저리 부르실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많은 아라한을 배출한 본인은 정작 아라한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크게 용맹심을 내어 자기가 배출한 수명의 아라한을 찾아가 길을 물었으나 “어찌 제가 스승님을”이라 사양하며 다른 이에게 넘기다가 어린 사미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대 강백이라는 만심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후, 그 사미 아라한의 6문의 sati 비유 한마디에 깨달아 아라한과를 성취한 사례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빗댄 대승 쪽 사례는 어떤가요? 거두절미하고 수행자의 수행 도정의 설명 없이 기왓장 깨지는 소리에 홀연 득도하고 매화꽃 한 송이 피어남을 보고 득도하기도 하고, 기와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조사의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고 나아가서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은 다반사요, 더 나아가서 나무에 기대어 열반에 드는 이 죽음을 희롱하며 거꾸로 서서 열반에 들었다는 둥, 조사의 할이나 죽비, 주장자의 내리침에 돈오했다는 등의 아주 쉽게 접근하고 재미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사례들을 간과할 수 없음은 이 모든 분들 중 범부에서 도과를 얻으신 이는 한 분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수행의 도정을 철저하게 거치신 분들로 익을 대로 익고 여물대로 여무신 분들이라 이러한 인연사에서도 터지신 분들입니다. 붓다가 지도하신 성제자님들은 붓다의 전지 능력과 위력의 힘으로 제자 비쿠들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지도력을 발휘해 그들을 도과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공식적 견해로 불멸 이천오백육십이 년이 지난 오늘의 세대에 그렇게까지 제자들의 법그릇을 알아보시고 무르익음을 꿰뚫어 보신 후 지도해 주시는, 눈 밝고 귀 밝은 스승으로서 줄탁동시(啐啄同時)할 수 있는 어미닭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빨리 3장을 부동의 근거로 하여 그 길을 제시하고 인도해 주시고 계시지만 도과의 성취를 가늠해주시는 분은 정말로 귀합니다. 아울러 세계 어느 곳의 상가 스님들도 허명일 뿐 눈 밝은 스승은 귀하고 귀할 뿐입니다.
그래서 보물이라 하겠지요. 세속의 보물들은 대략 150만년이나 200만년에 보물(황금, 다이아몬드, 루비 등)이 형성되지만 불보(佛寶)는 몇 겁을 익어 내린 보물이고 법보(法寶) 또한 그러하며, 이 두 보물을 유지 존속시켜 오신 승보(僧寶) 또한 그 세월과 같은 것이니 귀하고 귀할 수밖에요. 그저 로드맵을 보여주시고 그 과정을 교설에 의거, 나아가 자신의 귀한 체험에 의거해서 점검해 주는 이 정도로도 얼마나 고마운 길라잡이십니까? 그 분들도 도과의 성취와 닙바나의 체험을 언설로 삼간 채 지금 같은 불멸의 시대에 수행자는 작은 수다원이라도 성취해야만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이 같은 불만족이나 푸념은 망상이 짙게 깔린 제 푸념에 불과합니다.
시절 인연이 어쨌건 지도 방법이 어떻든 수행자는 스스로 수행을 담금질하며 정진, 또 정진, 용맹정진의 바라밀을 완성해 가야 합니다.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다른 것을 “탓”하기 전에 수행자는 올바른 교학에 의거해 나아갈 뿐임을 알았습니다.
주위의 인정이나 심지어 지도하신 분의 인가(?) 이것은 수행자를 도살하는 독소조항입니다. 그런 것들이 때로 용기를 주고 정진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지 몰라도 나의 “몸과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자에겐 붓다의 당부대로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할 뿐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할 일이 없음도 알았습니다. 더욱이 세속의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인연사는 더욱 장애일 뿐입니다. 오직 법의 가호 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