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 빼앗긴 옥황상제
“만경다리”를 지나 왼쪽 세존봉을 바라보면 산중턱에 사람이 맨머리로 앉아있는 모양을 한 “옥황상제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천궁의 상제인 옥황이 어찌하여 임금의 상징이기도 한 관을 벗고 저렇게 앉아 있을까?”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전설이 있다.
하늘세계에 조선의 금강산이 천하명승이라는 소문이 펴진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선녀들은 제집 드나들듯 팔담에 다녀왔고 얼마 전에는 토끼에게도 금강산 구경을 시켰다. 옥황상제는 “이제는 나도 금강산에 가봐야 하겠는걸...”하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는 하늘세계의 정사를 태자에게 맡기고 조선의 금강산에 내려왔다. 먼저 비로봉에 와서 내, 외금강을 굽어보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토끼가 금강산에 정신을 팔려 자기의 명령을 어긴 이유를 알만하였다. 그래서 이번 금강산유람이 끝나면 처벌 받은 토끼를 다시 데려가기로 작정하고 장군봉을 비롯하여 일출, 월출, 차일, 영랑, 옥녀, 채하, 선하 등 금강산의 1만 2천봉우리를 차례로 다 보고 나서 세존봉 구룡연가에 왔다. 구룡연에서 계곡을 따라 흘려 내리는 물은 금강산의 천백개의 벽계수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듯하였다. “거울 같다더니 참 맑기도 하구나!”
삼복더위를 무릎 쓰고 1만2천봉우리를 다 돌아보고 난 옥황상제는 이 맑은 물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에이. 더워!” 그는 자기가 하늘의 상제라는 체면도 체모도 더 돌볼 새 없이 관을 벗어 바위에 얹어놓은 다음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소에 뛰어들었다.
찌는 듯 더운 날씨였으나 물 안에 몸을 잠그니 얼음물에 들어간 듯 시원하였다. 땀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피곤도 사라졌다.
“음 좋군! 금시 날아갈 듯하구나. 그 애들이 쩍하면 팔담에 내려오는 까닭을 알만하다!”
팔선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뉜지 감히 여기서 벌거벗고 목욕을 하는고?”하는 소리가 드렁드렁 울려왔다. 좋은 기분에 취해있던 옥황상제는 흠칫 놀라 쳐다보니 자기가 옷을 벗어놓은 바위 위에 웬 백발노인이 용두장을 짚고 서 있다.
산신도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
“그대는 뉘 길래 남의 일에 참견이요?” “나는 금강산을 지키는 산신이요. 금강산의 벽계수가 천만종의 약초를 씻고 흘러내린 신령약수라는 걸 그대는 모른단 말이요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오면 의례 이 물부터 즐겨 마시는데 그대는 이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니 그 아니 죄란 말이요. 더군다나 유람하는 길목에서 이 무슨 창피한 노릇이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니 그런 줄 아오.” 하더니 금강신은 옥황상제의 관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야단난 것은 죄지은 옥황상제였다. 금강신의 엄한 꾸중을 듣고 담수에서 나와 옷을 주어 입었으나 관이 없다. 선녀는 날개옷을 입어야 하늘에 날아오르듯 옥황상제는 관을 써야 하늘세계에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쩐담?”
바위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데 아래에서 사람들이 구용연을 찾아 올라왔다. 그 가운데 한사람이 옥황상제를 알아보고 의아하게 물어보았다.
“상제님은 어찌하여 관을 벗고 거기 앉아계시는 것이 오이까?” “나는 저 소에서 목욕을 하다가 금강신의 처벌을 받았소. 당신들은 나를 거울로 삼고 비추어보며 절대로 예의 도덕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요.”
금강신의 처벌이 하두 엄하여 옥황상제는 끝내 하늘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세존봉중턱에 맨머리채로 굳어지게 되었다. 때로는 부끄러운 듯 안개와 구름을 너울로 삼아 몸을 숨기기도 하고 맑은 날이면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로 하는 듯이....
북한1급화가 김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