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업설에 의한 불교의 우주론 (3)
아함경의 교리를 체계화한 ‘구사론’의 문헌에 나오는 우주의 구조 생성 소멸 등 요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모든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허공에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풍륜風輪이 생긴다.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다시 풍륜 위에 구름이 일어나 수륜水輪을 생하고, 업력에 의해 다시 수륜 위에 바람이 일어나 수면을 때리고 응결시켜 금륜金輪을 생한다. 금륜 위에 수미산이 솟고, 이것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일곱 산이 생하고, 그 최외각에 철위산이 둘러앉는다. 그리하여 각 산 사이에 물이 고여 여덟 바다가 생하는데, 수미산 부근의 일곱 산 사이에 생긴 바다를 내해內海라 하고, 그들과 철위산 사이에 생긴 바다를 외해外海라고 하고, 이 외해 속에 사대주四大洲가 있어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수미산 남쪽의 섬부주이며, 이 밑에 염라왕국閻羅王國이 있고, 그 아래 다시 팔대지옥이 차례로 위치한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은 수미산을 둘러싸고 공중에서 돌아간다. 이것이 중생들이 몸담게 될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최초의 풍륜으로부터 이러한 세계가 완성되는데 1소겁의 시간(1,590만 8년)이 걸린다고 한다.
세계가 생긴 다음 이곳에 중생이 생하는데, 중생의 경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갈라진다. 욕계는 욕심이 있는 경계로서 고통의 정도에 따라 지옥 축생 아귀 수라 인간 천신의 육취六趣가 식별되고, 특히 천신은 다시 육천으로 세별되고 있다. 색계는 선정을 닦아 욕심을 멸했지만 형색은 남아 있는 경계로서 사선천으로 나누기도 하고 18천으로 세별하기도 한다. 무색계는 색계의 형색마저 사라진 정定의 경계로서 사처四處를 헤아림이 보통이다.중생들의 경계는 이와 같고 이들은 세계가 생긴 다음 그곳에 어떤 순서로 생하는가.
먼저 범천(색계의 최하위)이 하생하고, 계속해서 욕계 육천에 해당되는 타화자재천 화락천 도솔천 야마천이 하생하여 수미산 위의 하늘에 머물고 도리천 사천왕이 생하여 수미산의 봉우리와 허리에 각각 머문다. 그리고 또 인간이 생하여 사대주에 머물고 축생은 바다에 생하여 육지와 공중에도 살게 되며 아귀는 염마왕국에 생하여 떠돌아다니고 지옥취는 지옥에 생한다. 아수라는 수미산을 본거처로 하여 도리천과 향상 전쟁을 일으킨다. 이렇게 해서 천 인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취의 여섯 갈래 중생이 생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십구 소겁이 걸린다는 것이다.
성겁 다음에는 주겁住劫이라는 시대가 온다. 그 기간도 20소겁이다. 이때 세계는 별로 변동이 없지만, 중생의 과보는 변동이 나타난다. 수명이 장구하다가 악업은 심해져 마침내 10세가 된다. 중생들은 악업을 뉘우처 수명도 증가하여 8만세에 이르게 된다. 그러자 다시 욕심과 악업이 심해져 수명이 10세로 감소된다(제2소겁). 인간 수명의 이러한 증감이 그 뒤에도 19번 반복된 다음 다시 10세에서 8만세에 증가하게 된다(20소겁).
이때 우주가 파괴되는 괴겁壞劫이 여기에도 20소겁이 있다. 먼저 중생이 파괴되는데 여기에도 20소겁이 있다. 먼저 중생이 파괴되는데 그 순서는 지옥취부터 시작하여 최후에 천신이 파괴된다(19소겁이 소요됨). 그런 뒤 화 수 풍의 삼재가 발생하여 풍륜으로부터 색계 제삼선천에 이르는 세계를 모조리 멸해 버린다(제20소겁).
괴겁이 지나면 허공만이 존재하는 공겁空劫이 오는데 이 기간도 20소겁이다. 공겁 다음에는 다시 중생들이 업력에 의해 성 주 괴 공겁이 반복하여 세계는 끝없이 생성 소멸한다는 것이다. 20소겁을 1중겁이라 하고 4중겁을 1대겁이라고 하므로 결국 한 세계는 1대겁을 시간적 단위로 하여 생성 소멸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성주괴공이 되풀이하고 있는 이러한 세계는 하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속에는 무수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1소천세계를 1천배한 것을 1중천세계라고 하며, 1중천을 다시 1천배한 것을 1대천세계라 한다. 이 소천 중천 대천을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 부처님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보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의 생성을 중생의 의지적 업력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며, 변천 소멸 그리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업력에 의한다는 입장이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우주를 신의 창조로 보는 신학적인 우주론이나 또는 성주괴공를 기계적으로 반복한다고 보는 우주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불교의 삼세 업보설을 우주의 동력인으로 보고 그런 입장에서 전개시킨 우주론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계속)
고익진 저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