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야 별이 빛난다.
일본의 유명 작가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했지만 시들어가는 육신을 보고 죽음을 맞이하기로 하였다.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태울 건 태우고 나눌 건 나누었다. 자식들과 가족들에게 남기는 말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에 찾아올 친구들에게 할 말을 미리 녹음기에 녹음하였다. 자식들에게 장례식에 찾아 온 이웃들에게 내가 인사말을 할 수 있도록 당부하였다.
작가는 임종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며 녹음기를 틀었다. 살아있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죽은 사람이 인사말을 하였다. 장내가 더욱 숙연해 졌다.
장례식이 끝나고 한마디씩 하였다. ‥산 사람은 조용히 있는데 죽은 사람만 떠드는 장례식은 처음봤네. ‥ㅎ
길상사 행지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
죽은 사람 둘이 나눈 대화를 산 사람들이 숨죽여 가며 들여다보고 있다.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가 생전에 나눈 이야기를 법정스님 5주기에 맞춰 책으로 출판되었다. 여백 출판사에서 나온,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가 그것이다.
책에 나오는 대화는 2003년 4월 최인호 작가가 길상사 행지실로 법정스님을 찾아와 차를 마시면서 3시간동안 나눈 이야기이다. 그때는 두 분다 건강하신 모습이었다. 대화 7년 후에 법정스님은 열반에 들었고 최인호 작가는 투병 끝에 이승의 삶을 마치고 소천하였다.
최인호. ‥스님 어느 책에선가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법정스님.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 들일수가 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도 살만큼 살았으면 물러나야지요. 사람이 만약 200년, 300년 산다고 가정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나무는 해가 묵을수록 기품이 있고 늠름해지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풍상에 씻겨 추해집니다. 이제 그만 몸을 바꾸라는 소식 아니겠어요. 폐차처분하고 새 차로 옮겨 타듯이 말입니다.
수덕사의 만공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시자에게 물을 떠오게 합니다. 시자들이 목욕물을 떠오자 육신을 씻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리고는 거울을 가져오게 합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껄껄 웃으며 말합니다.‥
이제 자네와 내가 이별할 때가 되었네..! 그럼 잘 있게 그동안 고마웠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겨울이 지나고 꽃소식이 들려온다. 만공의 스승 경허는 지혜의 눈을 뜨고 이렇게 말한다.
세속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으냐.‥
봄볕 비치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행지실 마당에서 샘터 김재순 사장과 최인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