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금강이 전하는 김시습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양반세계를 등지고 방랑의 길에 나선 이후 황해도 평안도 일대를 돌아보고 강원도 땅에 이르러 별금강에 살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뜻을 굳히고 있던 때에 있은 일이다.
별금강
이때 조카인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세조 밑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던 선비출신의 관료들이 스승인 김시습을 찾아 여러 지방을 헤매다가 별금강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김시습이 사랑하던 제자들이었다.
오래간만에 뜻밖에 만난 제자들과 기쁨에 겨워 회포를 나눈 김시습은 그들의 간절한 소청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다음날 아침 김시습은 제자들을 데리고 금강못에 올라갔다.
아아한 절벽으로 돌러 싸여있는 금강못의 절경은 제자들의 입에서 경탄의 환성이 터져 나오게 하였다.
너무나 황홀한 절경에 매혹되어 어쩔 바를 모르는 제자들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김시습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금강못의 절경을 처음 보았겠는데 뭔가 느끼는바가 없느냐?”
제자들은 스승이 무슨 뜻에서 묻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서로 마주 보기만 할 뿐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러한 제자들을 둘러보며 김시습은 다시 물었다.
금강산 봄비내린 뒤
“이 아담한 못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저 벼랑 바위가 없다면 어찌되며 또 저 벼랑바위 곁에 이 못이 없다면 어떻겠느냐?“
그때에야 제자들을 앞을 다투어 소견을 터놓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못에 저 장엄하고 기세찬 바랑바위가 없다면 무엇이 불게 있겠소이까.”
“아니 저 벼랑바위가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다 해도 이런 산봉우리에 위에 아담한 못이 없다면야 신비로운 절경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되오이다.”
저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제자들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김시습은 이런 뜻깊은 말을 하였다.
“그렇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벼랑바위가 아담한 못과 어울려있기에 신비경을 이루는 것이고 이것이 또한 금강못의 절경이니라.”
“그렇소이다. 바랑바위와 못이 어울려 신비함이 분명하오이다.”
“아담하면서 굳세고 굳세면서도 아담한 것이 별금강인가 하오이다.”

제자들의 이런 대담을 기다린 듯 김시습은 그 아름답고도 기세 찬 절경을 새삼스레 둘러보며 아픈 심정을 터놓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내 나라 산천에서 태어난 사람가운데 산천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냐.”
의미심장한 스승의 말에 제자들은 대답 없이 묵묵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지 않느냐? 사람들이 말로는 충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절개 없이 충의는 어이 지키며 절개는 또 충의 없이야 빛 내일 수 있으랴. 어디 대답들 해보아라.”
제자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자가들을 금강못으로 데리고 올라온 김시습의 깊은 뜻을 깨달게 되었고 다시는 스승에게 정계에 나서기를 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후 김시습은 금강못의 절경이 마치도 충의를 굴함 없이 지켜 살려는 자기의 마음과 같고 그 마음을 티 없이 깨끗하게 키워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곳에 9년 동안이나 살며 신선의 도를 닦았다고 한다.
리철민 그림 만물상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