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에서는 왜 한손으로 합장인사를 하게 되었을까?
달마대사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 부릅뜨고 있다. 부처님의 눈은 코끝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아나파나사띠 들숨과 날숨을 지켜보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사람들은 졸리면 잠을 잔다. 경상도 사람들은 디비자고, 전라도 사람들은 자빠져서 잔다. 그런데 달마대사는 잠이 올 때 어떻게 했을까?
대원사 극락전 벽면을 가득 채운 달마대사벽화이다. 신광이 칼을 들어 자신을 한 쪽 팔을 내리친다. 그때 흰눈이 붉게 변하고 눈 속에서 푸른 파초잎이 솟아나 떨어진 팔을 받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사진. 현장스님 제공)
9년간 눕지 않고 장좌불와 면벽좌선으로 불도를 이룬 달마는 졸음이 쏟아지자 칼을 꺼낸다.왼손으로 눈꺼풀을 잡아당긴 그는 예리한 칼로 눈꺼풀을 잘라내어 동굴 밖으로 던져 버린다.
눈꺼풀이 썩은 자리에서 작은 나무가 솟아나 자랐는데 그 나뭇잎을 따서 우려먹었더니 졸음이 오지 않았다. 그 나무가 바로 차나무이다. 선원에서 차 한 잔을 마실 때는 달마대사 눈꺼풀을 우려 마시고 반드시 지혜의 눈을 뜨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달마대사의 명성을 듣고 신광이라는 젊은 구도자가 찾아 왔다. 소림동굴에서 면벽 좌선중인 달마대사에게 소리쳤다.‥
"진실한 불법을 깨닫고 싶습니다. 번뇌를 벗어난 마음의 본성을 깨닫고 싶습니다."
달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신광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답을 들을 때까지 동굴밖에 서서 기다렸다. 밤새 폭설이 내려 허리까지 쌓였지만 신광은 구도일념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얀 눈이 햇살에 눈부시게 빛을 발하였다.
신광은 다시 외쳤다.‥
"제자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어떻게 하면 안심입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때에야 달마가 뒤돌아보며 대답하였다.
"옛사람들이 불도를 구할 때는 자기 생명을 바쳤다.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던지고 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눈을 바쳤다. 너는 어떻게 가벼운 마음으로 불도를 구하고자 하느냐?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도하겠다."
달마의 말이 끝나자 신광은 칼을 빼들었다. 오른손으로 칼을 들어 왼손을 내리쳤다. 붉은 피가 쏟아지며 붉은 눈이 되었다. 그때 눈 속에서 푸른 파초가 솟아나서 떨어진 한 쪽 팔을 받쳐 들었다.
이렇게 하여 신광은 달마의 선맥을 잇는 2조가 되고 법호를 혜가로 받았다.
대원사 극락전 달마도는 이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다.
오른쪽에 신광선사 단비구법 (神光禪師 斷臂求法)이란 글이 보인다. 붉은 도포를 걸쳐 입은 달마대사 앞에서 칼을 들어 자기의 왼팔을 잘라 바친 신광의 구도정신을 위법망구 (爲法忘軀)라고 부른다. 불법을 위하여 육신을 바치고 스승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친다는 뜻이다.
소림사 입설정(立雪亭)이다. 혜가가 달마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밤새 쌓인 눈 속에서 스승의 답변을 기다리는 구도의 마음을 기념하는 전각이다.(사진. 현장스님 제공)
소림사에서는 달마의 법을 이은 혜가의 구도정신을 기억하고 받들기 위해 합장이 아닌 한손 인사법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아미타파.‥하고 염불한다.
당신은 언제 태어나서 지금 몇 살 먹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당신의 생명은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아미타불의 생명과 하나이다.라는 축원의 뜻이 깃들어 있다.
대원사 극락전은 조선 영조 때 건립되어 300년 가까운 세월을 이겨낸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이다. 80년대 초 붕괴위기가 왔을 때 극락전 벽화의 문화재가치를 인정받아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다행히 국비를 지원받아 해체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 1월 5일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대원사 극락전 벽화의 예술성과 문화재 가치를 평가하여 보물로 지정하였다. 지난해 지장탱. 시왕탱 보물 1800호 지정에 이어 두 번째 보물이 대원사에 탄생한 것이다.
대원사는 서기 503년 백제 무녕왕 3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백제고찰이다. 금년에 개산 1515년째를 맞이한다.
대원사를 참배할 때는 보물로 지정된 백의관음도와 달마대사도를 함께 참배하기를 바란다. 극락전 좌.우벽면을 가득 채우면서 장엄하게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