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스님의 불교행복론 1
대흥사 겨울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도 그 행위와 마음가짐이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왜 그러한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기시모도라는 일본의 종교학자가 종교를 믿는 신도들의 수용 차원을 청원태(請願態), 희구태(希求態), 체주태(諦住態)의 세 가지로 분류한 설이 있다.
첫째, 우리 주변에서 흔히 행해지는 기복신앙의 형태로 신 · 부처님 · 보살님 등 나의 밖에 존재하는 힘과 능력을 지닌 초월적 대상에게 나의 괴로움을 해소시키고 소원을 이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떼를 쓰면서 종교행위를 해나가는 청원태(請願態)의 단계이다.
예를 들자면 가뭄이 들어서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말라 죽어 가면 농부들은 산과 강 혹은 들판의 큰 나무나 절 · 성당 · 교회 등에 재단을 차리고 비가 오기를 청하는 기우제를 지낸다. 청원태란 이러한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의 신앙형태로 비가 오게 해주시고 잘 살게 해주시고, 돈 많이 벌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시고 등 인간사의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을 부처님, 관음보살님, 지장보살님이 또 다른 있는 이들이 해결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원하는 것이다. 동서양의 모든 종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형태라 하겠다.
둘째, 위에서 예를 들은 가뭄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비가 내리지 않는 원인을 생각하여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거나 우물 · 저수지 · 댐 등 여러 가지 과학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같이 자신이 무엇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 희구태(希求態)의 단계이다.
종교 경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마음의 눈을 열고 경전에 나타나 있는 도에 맞는 생활을 하고 그 진리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해 열심히 내면의 지혜를 열기위한 수도 생활을 하리라 결심하고 그 이상(理想)에 맞는 길을 걸어가는데 인생의 의미와 사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희구태의 단계에서는 삶의 목표가 종교적인 이상의 실현에 있다. 이에 입각해서 자신의 모든 생활을 재편성하고 의미를 조절한다. 계율을 지키고 출가하거나 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매일 독경을 하는 등 복을 구하기보다 종교적 가치에 관심이 집중된다.
셋째, 비가 오지 않는 현상도 나름의 큰 자연적 의미가 있다고 보며, 큰 병에 걸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죽음의 문제가 생기더라도 연연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체주태(諦住態)는 나름의 깨달음을 증득한 단계이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일상적인 생과 사 속에서도 한층 더 깊은 생명의 가치를 깨달아 육체적인 생과 죽음은 그대로 일어나지만 단순한 육체적 생과 사를 초월한 생명의 영원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체주태(諦住態)는 외형적인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져서 모든 것을 성스럽게 보는 심화된 신앙형태라 하겠다.
종교학자 기시모토의 3가지 신앙형태에 덧붙여 불교에서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제 4의 신앙형태로 보살태 (菩薩態)가 있다. 보살태란 체주태적인 자신 내면의 완성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 나누려는 자비심을 갖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적 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함께 이루려는 수행의 완성을 위한 여정이 된다. 기도 중에 내가 관음보살이 되거나 지장보살이 되어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를 보살태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똑같이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님을 부르면서도
어떤 사람은 청원태의 형태로,
어떤 사람은 희구태의 형태로,
어떤 사람은 체주태의 형태를 지니고 염불을 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하면 청원태의 염불이고, 보살님들의 깨달음을 이해하고자 원한다면 희구태의 염불이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님에 대한 공경과 동감의 마음에서 부르면 체주태의 염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고 지장보살의 화신이 되리라고 기도한다면 보살태의 염불이 될 것이다.
석문의범에 나오는 제사의식인 관음시식(觀音施食)을 보면 돌아가신 분들에게 정성껏 마련한 음식과 법문을 일러드리고,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시를 전하고 있다.
가시는 몸 천리만리 허공계에 가득하오.
가시다가 정 잊으면 그곳이 곳 정토라오.
삼업 벗고 삼보님께 귀의하고
성인범부 구별 없는 법왕궁에 이르시라.
쉽게 풀이하면,
"사바세계를 떠나 극락세계에 가셔야 할 것인데,
서방극락세계가 서쪽으로 30만억 국토를 지나서 정토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만 극락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모든 집착과 애착의 정을 잊으시면
그 자리에서 극락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곳은 모든 좋고 나쁨과 높고 낮음 그리고 괴로움과 즐거움이 사라진
그지없는 부처님의 경계가 이루어진 곳 입니다.“ 라는 뜻이다.
"가시다가 정 잊으면 바로 그곳에 극락세계가 나타납니다"
라는 시구가 체주태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청원태적인 생각이라면 꼭 삼십만억 국토를 지나서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 까지 가야만 행복해지지만 체주태적인 입장에서는 그 멀리 극락세계에 가지 않더라도 마음의 번뇌를 없애면 그 자리에서 극락세계가 이루어진다.
언제가 "당신이 지금 받는 월급의 몇 배를 받으면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라는 영국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내용을 보았는데 응답자들이 대답한 수치를 종합해보면, 평균 5배의 월급을 받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직장인들의 행복을 위해 월급이 5배나 인상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결국 행복은 월급의 양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월급을 수용하는 내 마음의 자세에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아도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소득수준이 수십 배가 올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물질에 대한 부족함과 불안감이 여전하고 수십 배 행복해졌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행복이란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행복해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청원태의 입장에서는 월급이 5배 올라야 행복해지지만 체주태적인 신앙형태를 가진 사람들은 같은 월급으로도 5배의 행복을 이룰 수 있다.
기도를 하면 외부가 바뀌어서 기도 성취가 되기도 하고, 내 마음이 지혜로워져 기도가 성취되기도 한다. 어쨌든 열심히 기도하는 곳에 기도의 수준이 진전되어 간다.
올해의 동안거 기도에 다 함께 동참해서 기도 수준을 한걸음 더 성숙시키고, 더불어 소원성취를 이룰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동안거 정진에 이루는 월급 5배의 행복 (광륵사 능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