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읍에서 온정리 쪽으로 한 5리쯤 가면 바닷가에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노적봉과 촛대를 세워 놓은 것 같은 형상의 촛대봉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금강산을 보물산 혹은 보석산으로 불리는데 한 몫을 하는 보물로 가득한 수정봉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금강
예로부터 금강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온갖 보물과 보석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 왜구들은 금강산의 보물과 보석을 도적질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노적봉과 촛대봉을 통해 침입을 시도하였고, 노적봉과 촛대봉에는 왜구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지켜 싸운 우리 선조들의 대담하고 슬기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금강산의 보물과 보석을 도적질하기 위해 수많은 군사를 실은 수십 척의 왜적선이 동해 장진항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사람들은 왜적과 맞서기 위해 병기와 쟁기를 들고 바닷가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눈이 빛나는 한 젊은 장수가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 여러분! 침입하려는 왜구의 수가 우리보다도 몇 십 배나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왜구를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 무슨 좋은 수라도 있는 것입니까? 장수님이 그 방법을 알려주시면 우리가 따르겠습니다.”
젊은 장수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 힘 센 군사가 용맹한 군사만 못 하고 용맹한 군사가 지혜로운 군사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에게 묘한 계책이 있으니 왜적이 제 발로 달아나게 합시다.”
해금강 (사진. 김유종 갤러리)
젊은 장수는 사람들에게 밤이 새기 전까지 마을의 볏짚을 모아 바다 가까운 둥실한 봉우리(노적봉)에 옮겨 놓고, 흰색의 흙 일천바리를 장전만 기슭에 실어 와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젊은 장수의 말대로 해가 뜨기 전에 둥실한 봉우리를 볏짚으로 덮고 흰색의 흙을 장천만에 풀어 장천만의 맑은 물을 뿌연 쌀 뜬 물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뽀족봉(촛대봉) 정수리에는 등불을 피울 송진나무 광솔을 무더기로 쌓아 놓았다. 준비를 마친 장수는 날랜 군사 몇 명과 장정 몇 명을 뽑아 어부로 변장을 하고 도래굽이 나가 어업을 하는 척 하며 왜구들이 염탐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때마침 왜구가 보낸 염탐꾼들이 장사꾼인 것처럼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 전에 없던 저 괴상한 봉우리는 무엇인가요?”
젊은 장수는 어리숙하게 대답하였다.
“ 우리네 백성들이 군사들이 하는 일을 어찌 알겠소만 얼마 전에 몇 십만인지 몇 백만인지 모를 군사들이 성안으로 모여들더니 저런 노적가리를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가며 쭉 쌓아 놓았소. 그런데 군사 수가 너무 많아 저런 노적가리가 몇 달 아니 몇 일을 못 가서 없어지는데 없어질 만하면 또 다시 저렇게 쌓아 놓는다오. 저 바닷물을 보시오. 군사가 오죽 많으면 하루 세 끼 쌀 씻은 물이 흘러 들어와서 파랗던 바닷물을 저렇게 뿌옇게 만들었겠소.”
해금강 돌섬 (사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염탐꾼은 놀라서 노적가리로 덮힌 봉우리와 뿌옇게 변한 바닷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젊은 장수와 약속한데로 뽀족봉에 쌓아 놓은 공솔 무더기에 물을 지피자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 타오르면서 주이를 환하게 밝혔다.
“저건 무슨 불입니까?”
젊은 장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였다.
“저건 길이가 만리가 된다고 하는 만리성의 등불이라오. 저 불길이 오를라치면 군사들이 왜적의 침입을 대비해 더욱 든든히 싸울 준비를 한다오. 우리 마을에서는 만리성의 촛불이라고 한다오.”
염탐꾼의 보고를 받은 왜적들은 몹시 놀라서 도적질할 생각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은 왜적을 속여 넘기게 한 이 둥실한 봉우리와 뽀쪽봉을 가리켜 노적봉과 촛대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금강 해안(사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