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경봉, 만해 등 근현대 고승의 전기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소설가 정찬주씨가 올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일타 큰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천착한 소설을 발표했다. 선(禪), 교(敎), 율(律) 삼종(三宗)을 겸통한 선지식으로 존경받았던 일타 스님이 정찬주 작가의 필력을 방편삼아 입적한 지 10년 만에 중생들 곁에 다시 오신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인연』. 현대 한국불교계의 큰스님이자 이 시대의 참 스승이었던 일타 스님의 일생을 다룬 두 권 분량의 장편 전기소설이다. 이 소설은 정찬주 작가의 철저한 취재와 고증에 이은 1년 5개월여에 걸친 각고의 집필로 완성했다.
일타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전무후무한 41명 일가친척이 출가한 집안에서 출생해 14세의 어린 나이에 불문에 귀의했고, 26세 때 오른 손가락 네 개를 불에 태워 소신공양할 정도로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걸었다. 세존염화라는 화두를 들고 태백산 도솔암에서 6년 동안 한순간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와 선방을 떠나지 않는 동구불출 수행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은 불교계에서는 전설같은 인물이다.
이 소설은 연비한 오른손에서 생사리가 나오는 이적, 7일 기도 중 빛을 발하는 방광 등의 불가사의한 일화 외에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타 스님의 진정한 구도자이자 자유인으로서의 면모를 생생히 다루고 있다. 아울러 작가가 인도하는 일타 스님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성철 스님, 경봉 스님, 전강 스님 등 한국 불교계의 큰 산맥으로 우뚝 솟은 청정한 수행자들과의 아름다운 인연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과 마주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짜인 일타 스님의 삶은 ‘자비’ 그 자체였다. 스스로 엄격한 율사였으면서도 파계한 제자를 용서하고 그 승적을 끝까지 지켜 주거나 5계를 범한 제자를 올바른 길로 제도하고 자신에게 보시한 산삼을 아픈 제자에게 돌려보내는 모습 등 대자 대비한 스님의 행적은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유와 이해, 용서의 미덕을 가르쳐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찬주 작가는 한국 현대불교의 거목들을 대상으로 소설을 써 왔다. 성철 스님을 소재로 한 '산은 산 물은 물', 경봉 스님을 대상으로 한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등은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받았던 발군의 소설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펴낸 일타 스님의 일대기 『인연 1·2』(작가정신/각권 1만원)은 앞의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작가의 내공과 역량에다 한층 깊어진 불교적 통찰과 정진력이 더해져 꽃을 피운 역작 중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 1시쯤이었다. 일타는 칠흑 같은 세상에 불을 켜는 심정으로 성냥을 그어 자신의 손에 붙였다. 곧 붕대를 감은 손가락이 어둠을 밝히는 등처럼 활활 타올랐다. 붕대를 감지 않은 엄지가 뜨거울 뿐, 정작 타는 네 손가락은 따끈하고 얼얼한 느낌을 줄 따름이었다. 네 손가락에 대한 애착이 떨어져버린 탓인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손가락에 붙은 불이 산바람을 타고 일렁이며 기세좋게 타올랐다. 불꽃이 촛농을 녹이며 춤을 추었다. 일타는 연비삼매에 빠져들었다.” <소설 본문 중에서>
연비의 순간을 작가는 마치 그 현장을 지켜본 듯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찍이 성철과 경봉의 일대기를 써낸 내공이 아니면, 무섭도록 치밀한 취재와 정진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오죽하면 그의 글을 읽고 출가를 단행한 이가 여럿 나왔겠는가.
작가는 말하길 경봉 스님은 멋들어지게 사신 지장보살, 성철 스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문수보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타 스님은? 한없이 자비로웠던 관음보살!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다. 일타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한평생 살림살이를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는 게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인연』의 출판과 관련해 일타 스님의 제자들 모임인 ‘동곡당 일타문도회’에서는 5월 8일 오후 5시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법회 형식의 출판기념회를 마련했다. 혜인, 혜국, 법타 스님 등 쟁쟁한 일타 큰스님의 제자들과 대원성 보살 등 큰스님과 막역한 인연을 가진 재가의 불제자들이 정찬주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고는, 스승의 진면목을 여법하게 그려냈으니 문도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 또한 불가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인연』의 일독을 권한다. 부처님오신날, 우리 곁에 관음의 화신으로 오셨던 ‘일타불’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