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하게 변하지만, 그 속에 일정한 법칙이 작용
제 3장 (4)
연기의 진리
1. 법칙성의 존재
모든 것이 무상변이하고 있지만 그들 속에는 일정한 법칙이 상주하여
그에 입각해서 그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한 것 속에 상주하는 이 법칙의 존재야말로 더욱 중요하며 불교의
현실 관찰은 삼법인설에 의해서 다시 이 법칙성의 관찰로 전개되고 있다.
1) 인과율
십이처에 입각해서 주체적 인간(六根)과 객관적 대상(六境) 사이에는
어떤 법칙이 존재하는가 살펴보면 인간은 능동적 작용을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런 작용이 가해지면 대상은 그에 상응한
필연적인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주체적 인간과 객체적 대상 사이에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한다
인간의 의지적 원인(hetu)이 되어, 대상의 필연적 반응이 결과(phala)로서
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그런 의지적 작용을 ‘업(業)(karma)‚이라고 부르고 이에 대한
대상의 필연적 반응을 보(報)‚라고 부른다
업인(業因)과보(果(報)라는 성구는 이렇게 해서 성립하게 된다.
2) 인연 화합
생멸변화하는 사물에 있어서 그 ‘변화’라는 현상을 살펴보면 하나의
예로 보면 우유가 치즈 버터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면 치즈나 버터로
발효조건을 갖춰 주는 동력인(動力因)과 또 하나의 조건 우유라는
것은 질료인(質料因)이 필요하다
사물의 변화에는 이렇게 원인과 연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갖추어짐을 인과 연의 화합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원인은 직접적이고 연은 간접적이라는 입장에서
‘친인소연(親因疏緣)’이라는 말을 한다.
3) 상의상관성
인연화합에 의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면 그 결과는 다시
그를 발생시킨 원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결과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원인이 되고 연이 되어 다른 존재에
관계하게 된다는 말이다
“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써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
(잡아함 권15) 그리하여 이것을 ‘연기‚ 또는 상의상관성의
기본 공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절대적 자존자는
이 세상의 어디에도 있을 수가 없다.
거대한 천체로 부터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면서 우주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4) 법주법계
모든 것이 무상하지만 덮어놓고 무상한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사물의 생멸변화에는 인연 화합의 조건이,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상의상관성이 있다.
멸해버린 것과 새로 발생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멸한 것과 생한 것은 다 같이 똑같은 법칙성을 나타내고 있다.
무상한 속에 일정한 법칙이 상주하고 있어 각 존재에는
그런 법칙이 머물고 있다고. 이것을 우리는 ‘ 법주(法住)(dharma-sthiti)‚라는
말로 표현한다 (잡아함 권12)
또 모든 존재는 법칙을 요소로 해서 성립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이 산소와 수소로 되어 있듯이 모든 존재는
법칙을 요소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경전에선 이 뜻이 ‘법계(法界)‚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잡아함 권12)
‘계‚는 구성 요소나 층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모든 존재가 본래 법칙을 그의 성품으로 삼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모든 존재는 그런 법성을 지닌 ‘법(dharma)‚
그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일체를 ‘제법(諸法)(sarva-dharma)‚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인 존재 속에서 마침내 상주의 법성(法性)을 발견한 것이다.
상일 ‧ 주재의 성질을 가져야말 할 그 참다운 나란, 바로 무상한 존재 속에 상주하는
이 법칙성이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