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민중이 행복한 그날까지
정원 비구 지음, 도서출판 말
216쪽, 1만원

2017년 1월 7일.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이하는 그날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가한 정원 스님은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했다. 당시를 목격한 시민의 증언과 현장 사진에 따르면, 정원 스님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중에도 가부좌를 튼 자세로 염송을 하고,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고 한다.
이 책은 정원 스님의 유언과 일기 등 페이스북에 남긴 글과 유작시, 법성게 강의록, 추모시와 추모사 등을 엮은 것으로, 스님의 49재를 맞아 기획 출판됐다.
앞부분에 실린 발간사는 스님의 속가 동생인 한경대 행정학과 서상원 교수가 썼다. 3월 7일 교계기자들과 만난 서 교수는 "정원 스님은 부친이 40대의 나이에 일찍 돌아가신 것에 충격을 받고, 1977년 합천 해인사로 출가했다."며 스님의 생애를 전했다.
스님은 1980년 법주사 강원에서 공부하던 중 광주항쟁과 10.27 법난이 발생하자 서울에서 불교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다. 6월항쟁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의식이 높았던 스님은 2003년께 경기도 가평의 현등사에서 기도를 하다 강렬한 체험을 하고, 중생의 아픔을 함께 느끼기 시작한다. 그 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 광우병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투쟁 참여 등의 사회운동에 동참해왔다. 2008년 불교 종단의 부패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조계종에 승적을 반납한 스님은 결정적으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민중을 외면하는 권력에 대해 극심한 분노와 고통, 좌절감에 휩싸인다.
정원 스님은 소신공양 직전인 2016년 12월 25일의 일기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
“하나의 꽃이 떨어져 수 만의 열매를 맺는다면 떨어진 꽃은 하나가 아니리.” (113쪽)
책에 실린 ‘투쟁시’는 2015년 12월 26일부터 2016년 1월 7일 사이에 페이스북에서 연재한 21편의 시를 옮긴 것이다. 형식적으로 퇴고를 거치지 않았고,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측면은 있지만 스님의 솔직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초고 상태의 시를 그대로 실었다.
유작시는 2004년 발표한 시집 『새벽으로 가는 길』에서 12편을 골라 실은 것이다. 정원 스님은 『문예사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했고, 2002년 <스포츠서울>에서 주최한 한국 인터넷 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됐다.
이 시집의 서문에서 정원 스님은 “실상 원효나 경허도 아니면서 저잣거리에서 한동안 만행을 한 까닭에 시편들이 세속의 심성들을 헤아리고 있는 것들이 많음을 고백한다.”라고 쓰고 있다. 젊은 시절 스님의 인간적 고뇌와 솔직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정원 스님은 살아남은 자에게, 광장의 촛불시민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벗들이여 그동안 행복했소. 고마웠소. (…) 민중이 승리하길,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 (27쪽)
그리고 그가 몸담았던 한국불교에도 뼈있는 말을 전했다.
“불교는 민중을 진정으로 사랑하라! 민중, 중생을 사랑하지 않는 불교는 가짜다. 수행자는 민중 속에서 붓다를 실현하라!” (29쪽)

정원 스님의 속가 동생 서상원 교수(오른쪽)와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박교일 상임대표가 3월 7일 광화문 정원 스님 분향소에서 유고집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