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펴내

 큰 병을 앓고 사찰음식으로 치유한 뒤 전문가의 길 걸어

‘사찰음식 명장’. 지난해 11월 30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수십 년 사찰음식을 알리고 만들어온 선재 스님에게 1호 위촉장을 전하면서 알려진 용어이다. 총무원장 스님이 사찰음식의 세계화와 체계화를 위해 더욱 애써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보아 사찰음식 분야의 1인자임을 인정하는 자리였음이 분명하다.

1월 4일 새 책 출간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선재 스님은 진정한 사찰음식 명장은 산중 절에서 사찰음식의 정신을 실천하고 그 음식을 드시며 수행하는 스님들이라며 겸손해 했다.

“제가 명장이란 칭호를 받게 된 것은, 산중 스님들이 드시는 사찰음식에 대한 정신과 의미가 세상 속에서 변질되지 않도록 바르게 전하여, 모든 생명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되라는 뜻일 겁니다.”

이날 스님이 들고 나온 책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이다. 30년 넘게 ‘음식 수행자’로 살면서 그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묶은 것이다. ‘삶의 근본으로서의 음식이란 무엇인가’, ‘몸과 마음과 음식은 어떤 관계인가’, ‘수행자의 음식이 현대인에게 왜 절실한가’ 등과 같이  인문학적 성찰을 머금은 내용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한국인이 사계절 꼭 먹어야 하는 사찰음식 51가지’ 등 일상에서 당장 해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레시피를 담았다. 스님은 자연과 인간, 음식과 생명의 가치, 곧 모든 생명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음식은 곧 생명, 먹는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사찰음식 논문 최초 집필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둔 선재 스님은 고교시절 수원 용주사 수련회에서 정무 스님의 부모은중경 법문을 듣고 출가를 꿈꾸게 된다. 그 뒤 용주사 수원포교당에서 청년회활동을 하며 구경삼아 가본 화성 신흥사로의 출가를 위해 부모님을 설득했다. 몇 년이 지난 스물다섯의 나이에 마침내 어린이 청소년포교 선두주자인 성일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다.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행자 시절 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는 일에서부터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역사는 시작된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의 심성이 먹는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스님을 보면서 스님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경전을 뒤져나갔다. 경전에는 음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부터 조리법, 음식 손질과 보관법, 양념, 주방 설치법, 먹는 법까지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스님 70여 명의 공양 당번을 자청해 욕심을 버리게 하고 자비가 담긴 음식, 속을 편하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력을 키우는 음식, 부처님 법을 따른 음식을 만들기 위해 모든 지혜를 그러모았다. 그리고 그때 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찰음식 문화 연구> 라는 이 분야 최초의 논문을 집필했다.

곳곳에서 밀려드는 아이들 수련교육을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잠이 부족하고, 정작 자신은 끼니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몸은 점점 약해져갔다. 가눌 길 없는 몸을 이끌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간경화라는 진단을 내렸다. 1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몸을 사찰음식 실험 대상으로

‘이대로 수행이 끝나버리는 것인가,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르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앞이 깜깜해졌다. 스님은 자신이 쓴 논문을 다시 펼쳐보며 생명이 살아 있을 1년간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철저히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모든 병을 음식으로 치료한다고 쓰여 있었다. 음식이 곧 약이라고 했다. 여기서 약이 되는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 제철 음식, 때에 맞는 음식, 깨끗한 음식 등 부처님 법에 맞는 음식이다.

주위 사람들이 간에 좋다며 권하는 온갖 약초와 영양제 등을 거절한 채 오직 음식과 일상의 습관을 바꿔보기로 했다. 모든 가공식품을 끊고, 간장,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먹었다. 아침은 가볍고 맑게, 점심은 든든하게 먹되 나물을 들기름에 찍어 먹기도 했다. 저녁은 아침보다는 많게 점심보다는 적게 먹었고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제철에 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고 충분히 쉬며 명상과 염불로 마음을 다스렸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점점 몸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불효만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를 때 어머니는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가끔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머니의 부음을 접했다. 몇날 며칠 법당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 ‘관세음보살님’을 불렀다. 그렇게 며칠, 신기하게도 가슴에 막혀 있던 무엇이 스르르 풀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놀래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간에 항체가 생겼다고, 이런 경우는 천 명 중에 한 명도 안 된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재 스님의 두 번 째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타계한 어머니 가피로 두 번째의 삶 영위

‘어머니가 준 귀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은 또 하나의 화두가 됐고, 몸으로 겪으며 알게 된 사찰음식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자는데 마음이 모아졌다. 1995년 3월 불교TV에서 사찰음식을 소개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사찰음식과 함께 선재스님의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체험관, 기업, 학교, 종교기관 등 국내 강연만 4천여 회를 넘었다. 세계슬로푸드대회와 세계 3대 요리학교인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 등 해외에서의 강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전 세계 유명요리사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고 있다. 또 사찰김치 대중화, 학교급식에 전통 장 쓰기, 초등학교에 장독대 만들어주기 운동, 어린이 미각교실, 바른 식생활을 위한 어린이뮤지컬 〈그거 알아요. 음식은 생명!〉 제작 등 사찰음식 대중화와 어린이 음식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스님의 사찰음식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찰음식에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하고 어떤 음식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요리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찰음식은 수행자에게 깨달음에 닿도록 돕는 지혜의 음식이라는 것. 수행자들이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려 고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은 공감했다. 수행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삶을 잘살 수 있는 지혜였기 때문이었다.

“식(食)은 한마디로 바로 삶입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몸이 아파서, 일이 안 돼서 상담을 하러 온 이들에게 부처님은 먼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선재 스님은 오늘도 만나는 이들마다 마음으로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글 선재, 불광출판사
378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