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동국대 학명세미나실서 즉문즉답 형식 진행

철학 및 선과 명상 관계부터 아름다움과 예술 질문 이어져 

 

 

 

 

 

“모든 것은 진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모든 것은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환생을 믿나요?”

 

“불교는 철학인가요, 아니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한 특별한 종교인가요?”

 

한국을 찾은 프랑스 예술인 20명이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으로부터 한국의 선(禪)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12일 동국대학교 문화관 혁명세미나실에서 열린 ‘수불 스님, 프랑스 예술인과 선의 세계 대담’ 행사에서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세계현대미술전에 참가 중인 이들은 화가 김근태 씨와 파리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안은희 관장의 도움으로 대담이 마련되자 안국선원장이자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인 수불 스님에게 선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대담은 자유로운 질문에 즉시 답을 하는 즉문즉답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통역은 문연진 씨가 맡았다.

 

 

 

 

수불 스님은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스스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던진 뒤 “무엇이 눈을 통해 보게 하는 것인지 진실을 깨닫기 전에 알 수 없으나, 종교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며 본격적인 대담에 들어갔다. 

 

이에 프랑스 예술인들은 불교의 기본 교리는 물론 철학, 죽음과의 관계, 선과 명상 등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고, 수불 스님은 즉각 답을 내놓으며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스님은 불교와 환생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불교에서는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서 “환생을 믿기도, 믿지 않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것이 믿음의 증거이나, 실제 근본 마음 깨달음의 자리에서는 윤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이 죽음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냐’는 질문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불교에서는 죽음이 본래 없기에 고의 원인의 이치를 안다면 보다 편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불 스님은 명상에 대한 질문에 ‘명상(meditation)’과 ‘선(zen)’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면서 명상에 대해 흙탕물의 비유를 들어 “흙탕물을 놔두면 위에는 맑은 물이 뜨고, 밑에는 불순물이 가라앉는데 다시 흔들면 처음으로 되돌아가 가라앉히는 행위가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질문자들이 예술가들인 만큼 아름다움과 예술, 색깔 등을 소재로 한 질문과 대답도 오갔다.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명상’하는 데 대해 수불 스님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이라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을 내려놨을 때, 더럽고 깨끗한 것을 내려놨을 때 오는 깨끗함, 순수함”이라고 설명했다.

 

‘명상하거나 기도할 때 머리 속에 자주 나타나는 색깔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불 스님은 “각자 다르겠지만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두고, 없애려고도 쫓아가려고도 하지 말고 흐름에 맡기라”고 조언했다. 

 

선호하는 색깔에 대한 물음에 스님은 “좋다 하면 다 좋고 안 좋다고 하면 다 안 좋다고 얘기하면, 불교식으로 얘기한다고 할 것 같다”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코발트색을 조금 좋아한다”고 답했다.

 

 

 

 

 

 

 

 

스님은 승복색인 회색에 대해 한 화가가 ‘세잔이 가장 어려워했던 색’이라고 말하자 “모든 것이 모아진 색으로 모든 것이 귀결되는 것 같다”고 답했고, 이에 화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은 ‘선이 예술가의 고통을 줄이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신적 가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선의 바탕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선을 위해서는 올바른 안내를 해줄 수 있는 눈 밝은 스승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과 선불교에서의 시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예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분명히 있으며, 시대별로 변화가 계속 이뤄지고 있으나, 종교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나눠지기 이전의 근본모습을 온몸으로 체험해 깨달음을 증득하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종교 간, 혹은 종교 내의 갈등에 대해서는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면서 “정상적 종교는 모든 종교를 이해하려는 눈을 떠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종교와 철학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철학이나 과학보다 못한 종교는 도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하 대담 전문.

 

 

 

 

 

 

 

 

 

잘 오셨다. 어떠한 질문이라도 자유롭게 말씀하신다면, 성실히 응하겠다. 종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와 같이 예술도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방향도 따로 있을 것이다. 종교가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 하는데, 또 다른 카테고리에 가두는 것과 같은 느낌도 있다. 예술 쪽에서 부자유스러움을 자유롭게 하는 움직임이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제가 먼저 질문을 던져 보겠다. 자기 눈을 자기가 스스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죽은 사람은 볼 수가 없고, 살아 있는 나는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눈이 보는 것은 아니다.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눈을 통해 보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정신, 생명, 영혼, 마음이라고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진실을 깨닫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종교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또 다른 차원의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 대담을 하는 것이 어떨까.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하겠다.

◇진실에 대해 말씀을 하고 계신데, 모든 것은 진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은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진실이라고도, 가짜라고도 얘기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낸 원인 제공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 제공자를 찾아 알려 하더라도 찾는다고 찾아지겠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고 해서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알지 알고서는 그 근원을 볼 수 없기에 도(道)와 선(禪)의 입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시작과 끝이 동시라고 얘기한다.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필연의 움직임이 생겨서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 누구에 의해 움직여지는 모습도 아니다. 그냥 움직여진 것이다. 그 움직임은 우리가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적 공간적으로 어느 정도 흘러야 할지도 모를 정도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변해간다고 얘기한다.

◇대화가 현재와 미래의 폭력을 멈추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대회는 해야 한다. 대화가 안 되는 대화도 있을 수 있다. 대화를 하려는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잘 하는 대화다. 또 다른 대화의 이면은 침묵이다. 침묵 속에서 뭔가 정신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대화가 꼭 필요하다. 침묵의 대화라고 할까, 침묵 속의 대화라고 할까. 아마 그런 것은 예술가들한테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 종교인들에게도 그것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철학인가, 아니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한 특별한 종교인가.

철학과 종교는 차이가 있다. 철학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철학적 가치가 세상을 지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종교란 가치가 만들어진 이후 인류의 정신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가치관을 먼저 얘기할 때 진리를 얘기한다.

 

역사는 계속 흘러가면서 변화하면서 발전한다. 어떤 철학이 머물 때도 또 다른 철학이 오기 때문에 엄청난 불확실성 시대가 아니냐고 착각할지 몰라도 정확히 흘러간다는 게 제 생각이다. 앞으로 철학이나 과학보다 못한 종교는 도태될 것이다. 그보다 앞서가는 철학이나 과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르침은 세상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불교가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등 다른 종교와 다른 입장은?

불교에서는 죽으면 끝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불교에서는 끝이라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한다. 죽으면 끝이면 종교를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종교를 왜 믿어야 하나. 지금까지 변해왔듯 변해간다. 어떻게 변해갈지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는 대충은 짐작하겠지만, 죽고 난 뒤의 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과를 얘기한다. 원인이 결과고 결과가 원인이다. 이것이 계속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근본 실상은 한 번도 태어나거나 변하거나 없어진 적이 없다고 얘기한다.

◇불교에서는 환생을 믿는가.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한다. 믿는다는 건, 내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실제 근본 마음 깨달음의 자리에서는 윤회는 없다. 근본 자리는 그렇지만 거기에서 한 발 벌어지면 천차만별로 수없는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근본으로 돌아갈 길을 놓쳤다고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만났을 때 진리에 대한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달음에 대한 입장은.
깨달음에도 여러 종류의 깨달음이 있다. 완벽한 깨달음이 있는 반면에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 깨달았다고 해서 깨달음이 다 똑같을 수 없다. 깨닫기 전에 정신적 벽에 마주하는 기회를 가질 때가 있다. 한계를 극복하려고 할 때 느껴지는 한계점이랄까, 뭔가 안타까움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깨졌을 때 통쾌하고 시원하겠지만, 깨지지 않고 나아가지 못할 때에는 굉장히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정신적인 벽이 깨진 후 오는 환희랄까, 뭔가 앞서는 가치관을 느낄 때, 이는 맛본 사람이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에 제가 감히 뭐라고 말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러나 승려의 입장에서 선을 알기에 선과 예술의 교감, 교류를 통해 또 다른 정신적 가치관을 엿보고 한층 더 발전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 이런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다. 질문 많이 해 달라. 저도 많이 배우겠다.

◇예술이 죽음에 대해 가진 절망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예술도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음악도 들을 때 가슴을 치는 반응을 느낄 수 있으며,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어느 순간 제 가슴을 때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이것이 아마 울림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게 만드는 또 다른 차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교에서는 죽음은 본래 없다고 한다. 그 얘기는 생사가 본래 없다, 난 것도 죽는 것도 본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 환희고 그림자라고 얘기를 한다.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가장 두렵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든지 죽기 싫어하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겐 있다. 물론 그것이 기대감이 될 수 있지만, 공포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다 극복하고 나면 그런 것이 무의미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지에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론적 근거를 가질 수 있으면, 이치를 알고 있지 않을 때보다 편안할 수 있다.

 

고의 원인을 알게 되면 도와 통한다고 불교에서 얘기했다. 고를 어떻게 극복해 이겨낼 수 있느냐, 고가 왜 생겼느냐, 고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고를 해결한 뒤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등등을 불교에서는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태어나는 것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고 싶다고 마음대로 태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어쩔 수 없이 태어나는 경우가 대다수겠다. 어떻게 태어났든,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약속,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 테두리에서 못 벗어나고 있으나 좀 더 앞서간 분들은 종교와 철학을 잡고 예술을 통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거듭나려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입장이 아닌가. 그런 입장을 존중함으로써 함께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삶과 죽음, 영혼에 대해 명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명상도 필요하다. 메디테이션(meditation)과 젠(zen)은 조금 다르다. 메디테이션의 얘기를 하기 위해 흙탕물의 예를 들겠다. 흙탕물을 가라앉히면 위에는 맑은 물이 뜨고, 밑에는 불순물이 가라앉는다. 고요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흔들면 바로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시 또 가라앉히는 행위가 반복된다. 그러나 흔들어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과는 차이가 큰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삶은 혼돈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명상을 할 때 삶과 영혼은 어떤 위치를 정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다.
아름다움만 계속 추구하는 건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까지도 내려놨을 때, 집착을 내렸을 때 오는 깨끗함, 순수함이다. 우리는 더러운 것을 없애고 맑게 만드는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종교에서는 더러운 것도 내려놓고 깨끗한 것도 내려놨을 때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순수함을 깨끗하다고 얘기한다.

 

◇모든 건 혼돈상태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혼돈, 즉 카오스는 사물들의 새로운 질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그런데 명상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하는 거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고, 시간도 없고 명상을 하는 기회가 부족하지 않을까.

가난한 자와 부자의 개념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는 여유가 없고 물질적 부가 없는 자를 가난한 사람, 시간적 여유가 많고 물질적 부가 있는 사람을 부자로 얘기한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가난한 자는 다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은 짐이 많다는 얘기다. 정신적 가치의 가난함과 물질적 가치의 가난함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가난함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물질적으로는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생활이 편하니까 그만큼 좋은 거고, 정신적으로는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오히려 부자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면 좋다고 늘 얘기를 한다.

 

나눠줄 수 있는 부자가 더 많이 가져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부자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나눠주지도 못하고 자기 혼자만 잔뜩 가지면 그런 부자가 무슨 소용 있겠나.  

 

 

 

◇역사 속 위대한 예술가가 고통을 겪고 결국 비극에 치닫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변화를 이끌었던 선이란 것이 예술가의 고통을 줄이고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
정신적 가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선의 바탕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 선을 알고 난 뒤 입장과 몰랐을 때의 입장을 둘로 나눴을 때 알았을 때의 저의 입장은 훨씬 더 알아갈수록 행복해지는 것이지만, 모르면 그만큼 부자연스럽고 불행해지지 않았을까. 다만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선도 그렇다. 그렇기에 선을 하기 위해서는 눈 밝은 스승, 올바른 안내를 해줄 수 있는 안내자가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스님에게 있어서 단순히 사고하는 것과 명상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혜를 눈 뜨고 사고하는 것과 지혜를 눈 뜨지 못하고 사고하거나 명상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밝음이 어둠을 비춰 밝아지는 경우를 지혜라고 착각하는 경우와 밝고 어두움을 동시에 비출 수 있는 힘을 가진 지혜로 눈 뜬 것과는 차이가 크다.

◇현재 올림픽 뮤지엄에서 우리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가 봤나.

꼭 가보고 싶다. 여기 오신 분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호기심이 많다.

◇이념적 부분보다 현실적 질문을 드리겠다. 오늘날 사회에서 특정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없애고자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를 들어 종교의 입장에서 죽음의 방식으로 성자가 되겠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종교 간의 갈등을 일으키거나 종교 내에서 어떤 입장을 펼치는 데 대해서는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 종교는 모든 종교를 이해하려는 눈을 떠야 한다. 자기 종교만이 절대적이고 상대방의 갈등은 멀리해도 좋다는 입장 때문에 갈등이 많이 생기고 싸움이 발생하는 것 같다.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파리의 니스 테러는 안타깝다.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저 역시 파리 드골 공항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일이 발생해 30분 간 공항에 갇히기도 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테러가 일어난다고 해도 성숙한 국민들의 힘은 꺾을 수가 없구나 생각했다. 그런 힘들이 승화돼 세계를 올바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스님이 히말라야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면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는데 이것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진실이라는 입장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순수한 입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라는 거다.

 

가식적이라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착각 속에서 이렇게 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입장에서 자기도 모르는 욕심을 갖춰 그 같은 모습을 띠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그런 시간을 보낸 뒤 세상과 더불어 하는 입장을 더 크게 중요시하다는 입장이다. 혼자만의 수행도 중요하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수행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연단 위에 연꽃 대신 보라색 꽃들을 배치한 까닭은?

나도 여기 와서 알았다. 그런 데 세밀하게 배려하고 신경 쓰고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눈에 거슬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오늘 저는 인연 따라 이런 꽃이 있구나 하는 것을 지금 오히려 자세히 보게 됐다. 앞에 유명한 화가 얼굴 한 분 한 분 기억한다고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기에 평생을 그림을 그린 훌륭한 분들을 대하면서 존경을 다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다. 평생을 미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세상에 어떤 정신을 알리려는 높은 뜻을 감으로는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명상하거나 기도할 때 머리 속에 자주 나타나는 색깔은 무엇인가?

각자 다르겠다. 그렇지만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두고, 없애려고도 쫓아가려고도 하지 말고 흐름에 맡겨라.

◇정신적 깊이를 자아내는 선호하는 색깔이 있나.

글쎄.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짚으라니 안 나타난다. 좋다 하면 다 좋고 안 좋다고 하면 다 안 좋다고 얘기하면, 또 불교식으로 얘기한다고 할 것 같다. 그 중 하나만 짚으면 하늘의 푸른색, 즉 청색, 코발트색을 조금 좋아하는 것 같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 같아서 그렇다.

 

 

 

 

 

◇인도에서 뵈었던 스님은 붉은 계통의 가사를 입었는데 스님은 회색을 입고 있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려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한 입장에서 가사를 가져왔는데 수하지 않았다.

◇세잔(1839~1906)이란 프랑스 화가에 따르면, 그에게 가장 어려운 빛깔이 그 (승복과) 같은 회색이었다.

회색은 모든 것이 모아진 색이다. 어찌 보면 죽음을 앞둔 색이랄까. 굉장히 어렵다.

◇어떤 색을 내려다 망쳤을 때 회색이 나타난다.

모든 것이 회색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웃음).

◇맞는 말이다. 제가 하루 종일 작업 후 색을 팔레트에 모아보면 회색이 나타난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 색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는 밝은 회색도, 따뜻한 회색도, 차가운 회색도 있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화가 세잔이 그 가르침을 잘 이해했을 것 같다.

세잔이 그린 아르산이란 장소에 두 번 갔다. 그림을 오랫동안 봤다. 그림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느낌을 받았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종교를 믿는 사람보다 종교적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미술만 계속해서도 종교적인 사람보다 더 종교적으로 잘 알 수 있다.

◇방금 말씀하신 산은 생트빅투아르산이다.

그 산을 많이 그렸다. 그 도시에서 제가 이틀을 잤다.

 

◇예술에서의 시간에 대한 인식, 선불교에서의 과거, 현재, 인식이 어떤 것인지 들려 달라.

예술에서는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분명히 있다. 시대별로 변화가 계속 이뤄지고 있고, 지금도 철학이나 과학의 변화처럼 미술도 빠르게 변해가는 느낌도 받는다. 개개인은 평생이나 큰 변화가 없다고 할 지 몰라도 보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실감을 한다. 미술관에 가 보면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 시간이란 굉장히 중요하고, 또 그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시간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예술은 시간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종교 입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그런 작업을 끊임없이 추구․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나눠지기 이전의 근본 모습을 어떻게 온몸으로 체험해 깨달음을 증득하느냐, 그런 것들이 주목적이다. 시간도 공간도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는, 내면화의 싸움 속에서 결정적으로 깨달음을 이끄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데 뜻을 많이 두고 있기에 도와 술이 차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명상은 생각의 흐름에 따라 가게 된다. 생각의 흐름이 남아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마음이 기쁘다고 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지 않을까.

깨달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눈뜬 차이는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느끼기가 힘들다. 그런 체험을 통해 말하고 떠들어도 명상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명상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입장의 차이를 좀 더 선을 통해 접근하면 깨달음의 가치관을 느끼지 않겠나.

 

선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새가 하루 종일 허공을 날아도 허공에 없다. 하루 종일 대화했는데 대화한 적이 없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뭔가 걸림이 없다는 얘기다. 자기 마음이든, 상대 마음이든 뭔가 걸림이 없을 수 있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스님을 만나보았다. 그때 깨달은 점은 모든 스님들이 기쁨이라는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것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승려들의 기본은 선함이다. 남을 해코지 하지 말라는 것, 남과 함께 하며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이 기본이기에 나쁜 마음을 품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착한 행동을 해라가 아니라 착한 행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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