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박사 특별기고] 민간전승 제다꾼 지리산 정재연 할머니를 찾다
차별화된 차맛 유지에 철저한 위생 관리로 다양한 고정고객 확보 자부심

동당리 마을 어귀의 할머니 차밭.

정재연(鄭載蓮, 1938~ 戊寅生 79세) 할머니는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에서 70여 년을 쉬지 않고 차를 만들고 있다. 동당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가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가는 길에 위치한다. 청학동 가는 길을 지나 지리산 자락에서 흐르는 중산천 계곡을 따라 덕산에서 중산리로 오르는 중턱 오른쪽이 동당리 마을이다. 덕산에서 동당리를 향하면서 첫 번째로 들어온 것은 산청의 모습 그대로라 말할 수 있다. 때 묻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자연! 청정하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곳이다.

우리 시대의 화두이기도 한 자연, 바로 그곳이 자연의 혜택을 듬뿍 받은 산골마을 산청이었다. 대원사의 참선도량, 계곡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맑고 투명한 청류에 갓끈을 씻고 싶은 깨끗함이 좋았다. 그리고 건강, 산청에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주변의 험준한 산들로 에워싸인 청정지역에서 자생되는 약초로도 유명한 곳이 아닌가? 하물며 차는 어떠랴! 하는 등식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내가 찾는 제다의 대표적인 아이콘 야생 차밭이다. 자연과 조화하며 더불어 사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에서 배우고 익힌 차살이, 구곡산 무작골 정재연 할머니의 제다 환경을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체득한 따스한 하루였다.

야생종의 건강한 차나무.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알려져 왔다. 신라 5악 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리었다. 지리산이라는 영험한 산이 있는 이유인지 중간 중간에 기도터나 굿당, 기도도량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천황할매, 산신, 용궁, 장군, 선왕, 아씨 등을 모시고 중생의 길흉화복을 빌어주는 곳이 상당히 많아 약 50여 곳이 넘을 것 같았다. 아직도 기복신앙이 민간전승이 성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었다.

차밭이 위치한 마을은 지리산 천왕봉을 옆구리에 세워 두고 바람을 막았다. 구곡산이라고 하는 산을 등에 지고 앉아 있다. 툇마루에 앉으면 지리산 지류인 높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앞 뒤 어디를 봐도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이었다. 오후 한나절 마당에서는 참새 발자국이 깝죽거리고 하루 종일 마루 깊숙이 쳐들어와 눌러 앉은 볕은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절기마저도 잊게 했다.

필자가 방문한 지난 25일은 메주를 쑤는 날이었다.

마당을 들어서는데 마침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고 있었다. 슬하에 아들 둘, 딸 셋을 두었는데 할머니를 포함해서 여섯 가구의 간장과 된장을 제공할 1년 농사였다. 첫인상으로 할머니는 산골에서 얼마나 일을 하고 사셨는지 깡마른 체구에 동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바지런하고 건강한 체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손님이 오셨다고 변변한 다기 하나 갖추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한참 큰애기 때 마시던 방식 그대로 차를 우려 마신다며 냄비에 물을 올렸다. 

끓고 있는 냄비에 차를 한 주먹 넣고 끓여 작은 망에 걸러 요즘으로 말하면 머그에 차를 내 오신다. 차는 엷은 갈색에 발효향이 나는 작설차, 할머니 발음으로는 작살차라고 한다. 할머니가 주력상품으로 하고 있는 차명이다. 지금 하동에서 주로 판매하고 있는 ‘잭살’ 차와 같은 차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그저 시집오기 전부터 친정에서 차를 만들었고 열아홉 살에 시집 와 보니 시댁에서는 시어머니가 아주 오래 전부터 차를 만들어 약으로 마시고 또 판매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친정은 현재 살고 있는 동당리에서 약 5리 정도 떨어져 있는 내대(거리미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신천리 보안마을이다. 자연부락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렇지만 거의 한동네나 마찬가지이다. 친정 마을인 보안에는 신천국민학교가 있다. 지금 동당리의 아이들은 친정 마을의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할머니는 신천국민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정어머니의 찻일과 가사를 돕다가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박종숙(朴鍾淑, 1934~2004)씨와 혼인하고 현재 살고 있는 시댁 마을인 동당마을로 들어와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당시에는 얼굴도 보지 않고 부모들이 정혼하면 시키는 대로 했던 시대라 사랑이 군대에 갔다가 휴가를 받아 집에 온 틈을 이용해 결혼해서 살았다. 6남매 중에 사랑은 장남에 장손이었다. 며칠 만에 사랑은 군대로 귀대하고 혼자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봄이 되면 시어머니의 찻일을 도왔는데 고된 시집살이에 병이 나면 늘 작살차를 마셨다. 약으로 복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대대적으로 제다를 많이 했던 때는 아니고 그저 식구들 약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목적이었다.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70여년 차를 만들어 판매해 온 민간전승의 제다꾼 정재연 할머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이거 달이라, 배가 아프다고 해도 이거 달이라, 고마 몸살이 나도 이거 달이라 해서 약으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찻일하고 밭 매고 그렇게 고된 시집살이였다. 차를 뜨겁게 푹 끓여 마시고 땀을 내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아 만병통치약쯤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땀을 빼고 몸을 갱신했다. 또 설탕을 큰 숟가락으로 하나 타서 마시면 맛있는 음료였다. 모든 병에 오로지 약은 한 가지 작살차였다. 설탕도 나중에 말이지 시집가서 당시에는 사카리라고 단맛을 내는 재료를 넣고 마셨다고 한다. 또 토종벌꿀을 한 숟가락 떠 넣고 휘 저어서 마시기도 했다.

집 뒤안의 차밭.

집 뒤꼍에 있는 차밭은 시집올 때부터 있던 차나무다. 그래서 백년수라고 한다. “만날 질어나면 비주고 비주고 해도 또 질어난다. 중간을 동강 잘라놔도 또 질어나는 기 저것이다.” 시아버지(박재광)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사랑(박종숙)이 어릴 때 토사광난을 만나 심하게 배앓이를 했는데 직접 차를 팔팔 끓여서 토종꿀을 한 술 넣어 먹여 나순(나은) 적이 있다 하였다. 며느리 안영숙(安英淑, 1965~ 乙巳生 53세)도 큰애가 네 살 때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에서는 원인을 모르고 답답해 하니 그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요새 같으면 예쁜 꽃다발도 많지만도 옛날 구식으로 갤혼할 때 차나무 저기 사철나무거든 겨울에도 시푸랗게 있응게 저걸 끈어가지고 거다가 종이로 꽃을 만들아가 달았어. 요캐 꽃다발 해가 시집갈 때 하고 그랬어”

“결혼식 할 때 드는 부케 말인가요?”

“하모 시집올 때 뒤꼍에 차나무 가지를 몽당하니 꺾어서 색지(색종이)로 꽃을 만들어가꼬 가지에 매달고 그것을 들고 혼인했지예. 다가이(산청군 삼장면 대하리 다간마을)로 시집간 시누이 시집보낼 때 내가 그거를 직접 맨들어 주었어예. 그때는 부케는 없었고 내 친구들이 갤혼할 때 선물로 해가 주는기야 꽃다발이라고”

“혹시 결혼사진을 갖고 계신가요?

“아이고 히가(휴가) 나와 갤혼 했는디 그린기 어디 있어?”

군 복무 중에 결혼을 해서 급하게 하기도 했고 사진이라는 것도 모르고 하다 보니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열아홉에 시집 왔는데 그때 치고는 노처녀에 속했다. 시집와서 열심히 한다고 했어도 시어머니에 눈에 안 차고 서툴렀는지 “나이 열아홉 살이나 쳐 묵도록 뭐 배았씨고(배웠을고)? 쌌트마는” 본인 생각으로는 안다고 하는데 늘상 그런 구박을 받으면서 시집살이를 했다. 당시에는 열세 살, 열네 살이면 시집을 갔으니 노처녀로 시집 온 며느리가 못 마땅했든 모양이다. 그런기도 안 배우고 왔다고 핀잔을 들었었다.

옛날에는 차를 저울로 달아 판매하거나 되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사실 친정에서도 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친정엄마 차 만드는 것을 돕고 어깨 너머로 배운 찻일을 기억을 더듬으며 했는데 제다법이 완전 달랐다. 친정에서는 말하자면 지금 말하는 녹차를 만들었다. 그것을 작살차(작설차)라고 했다. 그런데 시집와서 보니 시어머니는 덖지 않고 차를 발효시키는데 그것을 작살차(작설차)라고 했다. 친정어머니는 쇠솥에 차를 넣고 뜨거운 불에 덖었다. 그리고 멍석에 차를 비비는데 손을 합하여 비비다가 빨래 비비듯 비비다가 또 흩어진 차를 모다가 덕석에 비비다가 그렇게 싹싹 비볐다. 그리고는 솥에서 덖고 또 비비고 하는 과정을 서너 번하고 구들방에 말렸다.

그런데 시집 와서 차를 만든다 해서 방법이 다르지 않겠거니 했는데 친정에서의 제다법과 달랐다. 혼인을 1956년 섣달 12월 22일에 하고 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부터 찻일이 시작되었다. 당시에 시댁 마을에서는 차를 만드는 집이 딱 한 집이었다. 시아버지(박광재)와 시어머니(최재용)가 같이 작살차를 만들었는데 분명 다른 방법인데 차를 부르는 이름은 같았다. 어머님(최재용)은 주로 차를 따서 선별하고 덖고 비비는 것은 아버님(박광재) 몫이었다. 그리고 펴서 건조하는 것은 어머님이 담당했다.

어머님(최재용)은 3월 말에서 4월 한 달 동안 눈작을 땄다. 한참 주문량이 많을 때는 20명도 데리고 하고 30명도 데리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차 딸 일꾼도 마을에는 거의 없다고……. 말하자면 새끼손가락 끝 한 마디 반쯤 되는 찻잎을 따서 쇠솥(가마솥)에 덖고 차가 ‘짜작하게’ 되면 꺼내서 비볐다. ‘짜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지 짐에서(자체 김으로 차가 익게 되는 것을 표현하는 경상도 말) 차가 포옥하게 익게 되면 꺼내서 비볐다는 것이다. 덖을 때의 온도는 과학적이지 않았다. 몇 도인지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손대중으로 어느 정도의 뜨거운 온기가 올라오면 감으로 찻잎을 넣고 덖었는데 특별한 도구는 없었다. 숟가락 하나면 충분했다. 불은 주로 주변에 많은 참나무를 사용하였다. 비빌 때는 멍석에 놓고 빨래하듯이 비볐다. 진물이 나올 때까지 비벼야 풋내가 안 나고 속이 깎이지 않는 차가 된다고 배웠다. 보관은 옹기 오가리에 담아 보관하고 상음하였다.

차를 덖을 때 사용했다는 숟가락.

그런데 당시 어머님(최재용)이 차를 만들었던 방법과 지금 정재연 할머니가 제다하는 방법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상품으로서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정재연 할머니의 며느리는 말한다. 본인(정재연 할머니의 며느리  안영숙)은 1991년에 현재의 시댁 산청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시할아버지(박광재)에게 차를 배웠는데 그때 차는 덖고 비비고 말려서 포장한 작살차였다. 결혼한 해에 사랑이 집에서 직접 제다한 것이라고 차를 가져와 다기를 구입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시아버지(박종숙)가 만드는 차는 발효차였다. 차를 덖지 않았다. 차명은 작살차라고 했다. 말하자면 덖는 작살차를 만드는 방법에서 덖는 과정만 빠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순서는 거의 같았다. 그런데 채다의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말하자면 눈작을 따서 덖음차를 만들었다. 이것은 곡우차라고 했다. 그리고 또 따로 발효차는 눈작과 중작 또는 왕작이라고 부르는데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찻잎을 따서 시들리기를 하고 멍석에서 덖음차와 같은 방법으로 비벼서 그대로 구들방에 말리는 순서였다. 그런데 판매를 해보니 찾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한꺼번에 60봉지를 주문한 사람도 있었고 또 대규모 차상에서는 무게를 달아 81만 원어치를 사 가는 다원도 있었다. 덖음 과정만 빼고 만들었을 뿐인데 차는 발효차가 되고 만드는 방법은 훨씬 수월해졌으며 판매 역시 껑충 뛰어 가계에도 보탬이 되었다.

이유인 즉, 찻일을 콤비가 되어서 했던 할아버지(박광재)가 2004년 2월에 소천하시고 이어 시아버지(박종숙)가 같은 해 5월 소천하셨다. 갑자기 일손이 없어진 시어머니(정재연)는 같은 제다과정에서 덖는 과정만 빼고 차를 만들어 봤는데 기존의 방법보다 훨씬 잘 팔리는지라 발효차를 만들어 작살차라 하면서 판매를 한 것이다. 이 차는 눈작과 중작을 섞는데 더러는 눈작만 따서 만든 차를 파라고 하는 스님네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것만 팔아버리면 할머니 차 맛이 너무 안 좋아서 팔수가 없고 나중에 중작차를 또 만들어 이것을 섞어야 맛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달라고 해도 팔 수가 없었다. 눈작과 중작을 따서 만들어 놓으면 자식들이 주말을 정해 같이 와서 포장하는 일을 거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재연 할머니식 지리산 할머니 자하차가 완성된 것이다.

자하차의 완성된 차품.

포장은 한지에 담아서 한약을 포장하듯이 싸고 한지를 똘똘 말아 끈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묶어서 팔았다. 차를 만들어 수북이 쌓아 두고 혹시나 머리카락 같은 것이 섞이기라도 할까봐 엄청 조심스럽게 관리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할머니의 경영철학이다.

키로 ‘까불리기도’ 하고 또 옛날에 콩나물 기를 때 상에 콩 ‘허쳐두고’ 골라낸 것처럼 골라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선풍기로 살살 날리면 아주 쉽고 깨끗하게 처리가 가능해서 좋다. 그런데 어는 해인가? 자주 주문하는 스님이 은박지를 보내와 이것으로 일정하게 차를 담아서 포장하라고 가르쳐 주어서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방법(은박지 포장)을 가르쳐 주신 스님은 서울 쪽에 스님인데 이 봉지에 차를 넣어 두면 누기도 없고 맛이 안 변한다고 해서 이 방법은 쓰고 있다. 이렇게 한 것은 약 10년 정도 된 거 같다고 한다. 주둥이를 붙이는 기계도 스님이 알아서 주문을 해 주셨다고…….

한지로 포장해서 판매하다가 은박지포장으로 바뀌었다.

판매하는 차는 큰봉지 작은봉지 딱 2종류.

그런데 이 차를 주문해서 마시는 고정고객층이 매우 다양했다. 그리고 전국의 사찰 승려들도 주 고객층이었다. 그런데 계속 이 차를 주문해 드시는 스님 한 분이 이름을 바꾸라고 권유를 하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 스님이 지어준 차명 자하차(紫霞茶)라는 브랜드명을 붙이고 차를 판매하고 있다. 차를 만들게 된 것은 친정에서부터 거의 70년이 다 되었다. 시집와서 만든 것만 해도 만 60년이 넘었다. 평생 차를 만들어 판매하다보니 고객층은 실로 두터웠다. 주문이 들어와 택배로 나가는 것을 분석해 보면 하루 최고 10건을 보낸 적도 있다. 크게는 1건 300만 원 이상을 판매하기도 하고 최고 60봉지 또 무게를 달아 판매하기도 하였다.

장부를 정리한 할머니의 필체.(왼쪽) 차를 판매해 오면서 현재까지 장부를 꼼꼼히 정리해 보관하고 있다.

 
아주 이른 시기에 장부를 보니 1되, 6되, 12되, 16되 등 되로 재어 판매할 때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차를 주문할 때는 햇차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더러는 묵은 차를 주문하는 사람도 많다. 10년 된 거 찾는 사람도 있다. 아래는  5년 된 거 보내 주라 해서 2011년도에 맨들언 거를 보내주었다. 전에는 초파일이 가까워지면 전국의 스님네들이 그때 맞춰서 차를 보내 달라고 하는 주문이 많아 찻잎이 부족하다시피 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찾는 양이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지리산할머니차라고 사칭하고 판매하는 장사꾼도 생겼다. 한 해는 차를 발효시키기 위해 황토방을 만들어 제다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에 완성된 차를 보관하기도 했는데 그 황토방에 있는 차를 도둑을 맞아 털린 적도 있다. 할머니가 쓰던 덕석이나 차를 만들 때 쓰는 소도구 등도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없어졌다. 남은 것은 가마솥뿐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말한다. “다 도둑질 해가도 내 손은 도둑질 몬 한다.” 그래서 지금은 완성한 차를 박스에 연도를 표시하고 본채 안의 방에 보관하고 있다. 

소규모 가내수공으로 만들어 판매할 차의 보관.

더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가 차를 판매하면서 지금까지의 장부를 다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군을 보면 대학교수에서부터 사찰의 승려들, 전국에 유명한 차상들까지 매우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또 내로라하는 다례원이나 다원의 이름도 보이고 어느 절 어느 스님이라고 하면 다 알만한 유명한 스님들까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 주문처들을 살펴보니 해마다 고정고객들이 있다는 점, 전국의 내로하는 스님들이 많다는 점, 또 스님의 차를 얻어먹다가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서 주문하는 보살님들, 대학교에서 종합병원 하물며 유명 정치인에서 CEO까지 각계각층 각양각색이다. 또 택배 영수증까지 다 보관하고 있었다. 그도 그렇지만 그것이 주고객층의 정보이고 또 매년 주문하는 양이 비슷해 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보관하여 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장부와 택배로 보낸 운송장들.

몇 권의 장부 중에서 하나를 골라 주문하는 사람들의 신분이나 주문량을 살펴보았다. 두꺼운 장부에는 2004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장부 안에는 2008년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한 권의 장부에 주문처를 적어 보았더니 정말 전국적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주, 부산, 서울, 울진, 제주, 대구, 김제, 공주, 청원, 제천, 인제, 문경, 옥천, 상주, 담양, 울주, 하동, 가평, 파주, 전주, 김해, 포항, 양주, 예산, 남원, 청원, 보은, 진주, 장성, 연지, 서산, 진교, 화성, 예천, 울주, 평창, 보은, 수원, 대전, 양산, 합천, 달성, 안산, 양산, 성주, 여수, 김포, 논산, 양양, 창녕, 청도, 홍천, 영덕, 진해, 완산, 인천, 속초, 천안, 구미, 의성, 이천, 용인, 안동, 고령, 영천, 원주, 칠곡, 울산, 익산, 광양, 경산, 진안, 남양주, 창원, 화순, 청주, 거창, 의왕, 성주, 보안 등으로 정리되었다. 하물며 미국으로도 간다. 제주에서 주문하는 분이 한꺼번에 주문해서 미국으로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같은 지역이 동이 다른 경우나 서울이나 대도시 등은 주문자만 다를 뿐 중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업군으로는 미군 모 부대, 모 대학 총장, 대학 교수, 성당, 도서관, 종합병원 원장, 한의원 원장, 식물원, 다원, 휴게소, 도자기 요, 대규모 차상, 찻집, 불교대학, 사찰 종무소, 부동산 대표, 녹차 파는 할머니, 주부, 개인, 신부님, 각 사찰 스님과 보살 등이다. 살펴보지 못한 다른 장부까지를 분석하면 훨씬 더 다양한 직업군으로 분류될 것이라 사료된다. 또 간간이 독특한 이력이나 추가 주문 사항 등이 적혀 있기도 하고, 더러는 “큰 것 30봉지 작은 것 10봉지 방문하여 직접 가지고 감”, 또는 그 아래에 “나중에 택배로 추가 큰 것 10봉지 발송”이라고 적힌 쪽(page)도 있었다.

“할머니 차는 어떤 특징이 있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생각하세요?”

“내 차는 일단 맛이 좋아. 내가 그 맛을 지키려고 엄청 연구하거든 그라고 쏙이 편코, 쏙이 편해 그라니 많이들 찾지! 스님네들은 주로 차를 종일 마신께 쏙이 편해야 해 우리 집에서 만든 차는 잠이 잘 온다 해. 쏙이 편해서 잠이 잘 오거든.”

“그 비법은 어디에 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발효를 어찌 시키는데 이래 맛이 좋냐 물어? 그래서 한 해는 내 차가 떨어져서 우리 마을에 차 파는 사람 소개해서 차를 사서 보냈는데 그 사람도 내한테 차를 배웠는데 맛이 틀리다고(다르다고)해. 내 차를 알드라고!”

할머니가 주로 판매하는 것은 차(자하차)와 함께 곶감 도라지 각종 약초, 감 말랭이 등이었다. 광고는 전혀 없다. 모두가 다 입소문이 문어발처럼 뻗어 이루어진 고객들이다. 대부분 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사찰의 스님들이 광고모델이라는 것이다. 주문은 대체적으로 전화로 했다가 문자로 주소를 남긴다. 그러면 할머니는 장부에 다 옮겨 적고 주문량을 체크하였다.

천잠 주점골 차밭.

 
할머니의 차밭은 동당리 집 뒤꼍과 구곡산 무작골에 산비탈 전체가 차밭이다. 그리고 중산천과 천잠천이 합쳐지는 주점촌 위쪽 산비탈도 전체 차밭으로 일구어 놓았다. 덕산의 덕천강으로 흐르는 천잠천은 중산천으로 합쳐진다. 중산천은 덕산으로 흐르는데 그 지류의 갈림길에 차밭이 모두 위치한다.

무작골은 선산이고 주점촌은 나중에 벼농사를 포기하고 차밭으로 조성하였다. 집 뒤꼍의 차나무에서 씨를 받아 차밭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작골은 그야말로 야생 차밭이고 차나무가 층계를 이루며 질서 있게 심어져 있어 대조를 이루었다. 주점촌 맨 아래 차밭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동에서 녹차씨를 구해와 조성한 차밭이다. 주점촌은 바로 옆으로 천잠천이 흐르는데 천잠은 하늘 가운데 잠긴 동네라는 뜻이라고 한다. 구곡산 무작골은 선산으로 할머니의 시고조부모, 시증조부모(시증조부 박희영), 시부모님(박재광과 최재용)과 사랑(박종숙)의 묘소가 있다. 묘소의 월운(月暈)이 전체 차나무로 되어 있어 차를 좋아한 어른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부모님과 사랑양반의 묘소.

더욱이 선산인 구곡산 무작골은 덕산중학교 바로 뒤 산천재로 연결되는 덕산구곡의 일부인 셈이다. 덕산구곡은 퇴계 이황(1501~1570)의 도산구곡을 빗대어 덕산구곡을 만들어 영남의 남명학파를 계승하였다는 지명이다. 할머니의 시댁에서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지리산 일대와 구곡산 일대 또 지리산 지류인 마을 앞산 일대의 찻잎을 따러 다녔다고 한다. 구곡산 무작골 차밭도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앞산에도 대나무가 많았는데 그 아래가 온통 차밭이 야생으로 있어 천혜의 요지였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최재용)는 어디서 제다를 배웠을까요?”라는 물음에는 본시 시어머니의 고향도 내대, 거리미였으나 나중에 곡점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 동네에는 보은암이라는 큰 절이 있었고, 거주하는 스님들만도 300명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을 보면 사찰에서 제다법을 배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신라의 최치원이 살던 고운동하고도 가깝고, 인근에는 야생차로 유명한 지역인 불계와 반천이 가까웠다고 한다. 또 하동(청학동)과는 30여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아주 오래 전부터 차와 인연이 많은 지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정재연 할머니의 시어머니(최재용)가 차를 좋아하여 늘 음용하였다고 하고, 그 시어머니의 시아버지(박희영)도 차를 좋아했다고 하니 민간에서 차를 음용하기로는 내력이 있는 가계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며느리(안영숙)의 증언에 따르면 조상대대로 가정상비용으로 마셨다는 이야기를 증조할아버지(박광재)한테 들은 기억이 있다는 얘기까지 들려주었다. 며느리 역시도 차가 만병통치약 정도로 사용되었다는 귀띔이다.

채다방법을 설명하는 지리산 정재연 할머니.

정재연 할머니는 제다법의 전수를 큰며느리와 큰딸에게 물려주어 지금은 마산에서 살다가 동네로 이사를 온 큰딸(朴明子, 1959~)과 사위(정상용, 1955~)와 같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박종숙)가 돌아가시고 난 후로는 제다철이 되면 객지로 나간 자녀들이 찻잎 따는 일을 거들고 큰딸이 할머니를 도와 차를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차나무의 생태는 뿌리 아래쪽 줄기의 굵기는 약 3미리, 어긋나기의 간격은 아래쪽은 약 5.5센티에서 위쪽은 약 5미리, 3미리 간격이다. 잎의 모양은 둥근 타원형으로 아래쪽 잎의 길이는 9센티, 위쪽 잎의 길이는 약 2센티, 그리고 눈작의 형태를 띠고 있다. 너비는 약 4.5센티고, 잎 가장자리의 톱니바퀴는 잎줄기 부분이 3미리 정도이다. 잎이 난 자리에 차꽃이 하나씩 달려 있고 차꽃이 떨어진 자리에 차씨방이 하나씩 맺어 있다. 전체적으로 잎이 두텁고 건강해 보이며, 차나무의 키는 필자(키 162센티)가 섰을 때 허리쯤 닿는 것이 가장 키가 크고, 작은 것은 종아리 중간쯤으로 측정되었다. 대부분의 차나무는 구곡산 무작골 차나무가 가장 키가 작고, 동네 어귀의 차밭은 키가 좀 큰 것들이었다. 그리고 집 뒤꼍의 차나무는 키가 큰 허리쯤 닿는 큰 것들이 뒤꼍 울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