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갈 자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 정도는 가릴 줄 아는 분이었으면…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보름 쯤 지나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새로 추대하는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12월 5일 예정) 특별한 이변이 없으면 현직 종정이 재임까지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에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다른 특출한 인물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현 종정이 지난 여러 해 동안 엉뚱한 짓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이에 도전하는 인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조계종 종정이라는 자리는 본래 실질 권한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성철스님은 서울에 올라와 종정 취임식을 갖는 자체를 거부함으로서 상징적 의미를 잘 살린 분이다. 그 뒤로는 개인 카리스마로나 선 수행 경력으로나, 세상 흐름을 제대로 읽고서 자신의 ‘설 자리’와 ‘앉을 자리’, 그리고 ‘갈 자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바르게 보여준 분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종정’이 바깥세상은 둘째 치고 불교 집안, 아니 조계종 안에서도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그 책임은 누구보다도 종정 자신이라는 것이다.

전 종정 도림법전스님

직전 종정인 도림법전(道林法傳) 스님은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묵묵히 수행 정진해온 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분이었지만, 가야산 해인사 방장이 된 뒤 ‘입 안의 혀’가 되어 달콤한 말로 방장을 현혹하여 주지가 되고 나중에 스님께서 종정으로 취임하신 뒤에는 예경실장까지 된 인사가 저지르는 온갖 추한 일들과 비리 때문에 해인총림 방장과 조계종 종정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었다. 이 못된 인사는 스님의 열반 이후에도 갖가지 비(非)불교 ‧ 반(反)불교적인 방법으로 다단계 판매업을 하거나 위패 장사 등등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후임 해인 방장 선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래도 도림법전 스님은 임기 말에는 위에 말한 그 못된 인사 때문에 작은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종정으로서는 큰 잘못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못된 인사가 이번에는 불법도박 자금 수십억 원을 받아서 처리해주고(대웅전 불사 비용으로 썼다고 하지만, 이 말을 100% 믿기는 어렵다), 그 범죄자를 숨겨주었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구속 수감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문제 많은 인사를 끌어안고, 아니 그 인사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던 법전스님을 돌아보면 나는 도대체 최고의 간화선 수행자라는 분들에 대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가까이 있는 사기꾼이나 문제아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세상을 구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더 큰 난센스가 어디 있겠는가.

전임 종정스님은 현재 종정스님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현재 종정 진제법원(眞際法源)스님은, 오로지 종정이 되고 싶어서 살아온 분처럼 느껴지는 행동을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으로 안다. 불법(佛法)에 하나도 맞지 않는 ‘참 나’를 찾으라는 말만 가는 곳마다 외치고 있다. 종정이 되기 전에 미국 뉴욕에 가서 신학자 폴 니터와 대담을 하고 온 뒤로는 “내가 세계적인 종교학자들을 제압하고 왔다”고 자랑하지만, “망신스러운 자리”였다는 것이 그 자리에 참석했던 교포 불자들의 전언이다. 

그건 그렇다 치자. 이 어른은 당신이 ‘가야 할 자리’ ‧ ‘가도 될 자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구분할 줄 모른다. 누구의 꼬임에 넘어간 것인지는 몰라도, 한국 가톨릭이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경기도 하남시 천진암 성당에도 다녀온 기록이 있다. 이런 움직임이 저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모르기에 그렇게 하였을 것이라 믿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이해해줄 수는 없다. 실제로 천주교 천진암 성지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 순례오신 불교 조계종 종정 진제 예하 일행." 그러니 개인 진제법원이 아닌 조계종 종정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해줄 수 없다.
 

천진암 성당 방문까지는 그래도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부산 해운대 LCT공사 기공식에 가서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종정이라는 자리가 이런 데에 가서 박수 치는 사람에게 맞는지?
  
이처럼 천방지축으로 오가는 모습을 보니, 입을 열면 “참 나를 찾으라!”고 하고 심지어 정부 예산 수 억 원을 받고 광화문 광장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참 나 쇼’를 펼치더니 막상 자신의 ‘참 나’는 찾지 못한 것 같다.
  
12월 5일에 열리는 조계종 종정 추대위원회에서는 ‘수행력 높은 선사’는 안 되어도 좋으니 제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갈 자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 정도는 가릴 줄 아는 분을 다음 종정으로 모셔주면 좋겠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