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면 불자들이 불보살님들 전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기도삼매에 빠진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지극하기에 경건한 마음이 일게 마련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보살님께 연신 절을 하며 저토록 간구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불보살님들께서 간곡한 기도에 감응하시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불보살님들께서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교감을 나누기를 바라는 것일 터이다.

기도의 성취는 이처럼 불보살님과의 만남에서 이뤄진다. 친견이라고도 하고 감응이라고 하는 불보살님과의 만남처럼 환희롭고 희유한 체험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불교 작가의 지극한 정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살을 친견할 기회가 마련됐으니 반갑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자들에게 잘 알려진 정찬주 작가가 한국과 중국에서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김지장 스님을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직접 만나는 것과 같은 감동이 가득 담긴 소설로 완성해 우리들 앞에 내 놓은 것이다. 정찬주 작가가 아니었으면 그저 막연한 인물로 남았을 김지장 스님, 즉 지장왕보살은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덕만으로 우리 곁에 성큼 오셨고, 마침내 친견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중생을 다 구제한 후에 성불하시겠다고 원을 세우신 분이 지장보살입니다. 지장신앙이야말로 미래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지장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일찍이 신라 왕자 김지장 스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보살입니다.”

중국 지장신앙의 본산인 구화산의 한 노승이 했다는 이 말은 중국 불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김지장 스님의 위치가 어디쯤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천년 세월의 간극을 넘어 책을 타고서 우리 곁에 모습을 나투신 김지장 스님은 불교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정찬주의 해박한 불교지식과 상상력, 그리고 특유의 담백하고 미려한 문장으로 인해 따뜻한 숨결이 느껴질 만큼의 생동감으로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주고 계신다. 이 소설책의 이름은 『소설 김지장』(한걸음더)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의 많은 역사서적과 고문헌을 바탕으로 김지장 스님의 중국 구도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신라왕자 출신 김교각 스님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김지장 스님은 출가 후 당나라로 건너가 정진하다가 세수 99세로 입적한 고승이다.

지장보살이 되겠다며 구화산으로 들어가 용맹정진한 김지장 스님은 자신의 서원대로 지장보살이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중국사람들로부터 지장보살로 추앙받고 있다. 또한 김지장 스님이 머물던 구화산은 중국불교 4대 명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요즘도 스님을 지장왕보살로 여기는 수십만 참배객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었다.

이 소설 출간을 계기로 지난 11월 20일 경주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는 중국에서 조성한 김지장보살상 봉안식이 봉행됐다. 1200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했던 김지장 보살이 실제로 고향땅인 서라벌에 돌아온 것이니,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이 소설은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일깨우는 김지장 스님의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어느 해던가, 작가 정찬주는 구화산 순롓길에 김지장 스님의 등신불을 친견하고는 스님의 일대기를 다뤄보고 싶다는 마음을 냈다. 이후 창작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쳤고,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집필에 들어갔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 김지장 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았고, 그 과정에서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김지장 보살의 생생한 삶을 발굴, 재현해낼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완성해 법정 스님께 보여드렸을 때, 스님께서는 “소설 속의 화자가 신라 왕자 김지장 스님을 추적하는 첫 장부터 단숨에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어 잘 읽힌다.”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무엇보다 진리를 찾고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스님의 치열한 열정과 자애가 넘쳐나는 스님의 인간적인 심성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가더라도 인간이 끝내 추구해야 할 덕목이 있다면 바로 이상(理想)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자비심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정찬주 작가의 후기 일부분이다. 후기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이 소설을 썼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소설적 재미 이외에도 많은 사료적 가치가 있는 기록들이 등장한다. 말이 소설이지 잊혀져 있던 김지장 스님의 삶과 구도역정을 복원해낸 성스러운 작업이었기에 어쩌면 실제 이야기와 진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지장 스님이 불가에 귀의하는 장면부터 오대산에서의 혹독한 수행, 구도를 위해 중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벌어지는 해적과의 결투, 중국 승려들과의 만남, 중국 구화산 동굴에서의 수행, 구화산 일대가 차나무와 절로 뒤덮여 연화불국을 이루는 과정, 중국 황제로부터 이례적으로 지장이성금인(地藏利成金引)을 하사받는 일화, 속가 어머니와의 재회, 99세의 나이로 자신이 태어난 날에 입적하기까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게다가 지장 스님은 신라 흥덕왕때 사신 김대렴이 중국에서 차씨를 가져왔다는 기록보다도 백여 년 앞서서 신라의 금지차 씨를 중국 구화산에 심고 가꾸었다는 기록을 찾아냄으로써 김지장 스님이 우리나라 차의 비조이자 다신임을 입증해보이고 있다. 금지차란 김씨성을 가진 이가 다스리는 땅에서 난 차라는 의미다.

작가에게 불연을 맺어준 법정 스님이 이 소설을 다 읽고 작가에게 물었다는 질문이, 화두처럼 뇌리에 남는다. 그 질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마친다.

“구화산에 지장 스님이 심은 금지차가 지금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