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요즈음 이 나라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곳, 전체 검사장의 62.5%를 그곳 출신들이 차지한다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생들 몇 명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국민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우병우와 전 검사장 진경준이 저지른 일들 때문에 그 대단한 ‘서울대 법대’의 위상에도 치명타致命打를 입히고 체면을 크게 구기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곳 출신이라면 동문들이 일어나 “더 이상 서울 법대의 명예를 추락시키지 말고, 동문회에서 자진 탈퇴하라. 그렇지 않으면 제명하겠다!”고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해보게 됩니다. (다행히도 저는 그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우병우와 진경준을 ‘청백리淸白吏’라고 하면 될까요? 하긴 두 사람의 가족들이나 그들에게 직간접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청백리’가 아니라 ‘구국의 영웅’이나 ‘세상을 구하실 분’ 정도의 명예를 드리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국민들이 동의해줄까요.
그런데 저는 갑자기 이 두 사람에게 ‘청백리’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보다 수십 년 먼저 그 대단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어느 인사가 모 방송이 하는 특별 강연 프로그램에서 ‘지성인’을 대표하여 첫 테이프를 끊고 마지막 강연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아, 그러면 우병우와 진경준을 청백리라고 해도 되겠네. ……”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던 것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곱 달 동안 진행될 이 프로그램의 첫 강연에서 그 인사는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갈등과 대립을 풀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고 하더군요. 그렇죠.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갖고 세상을 보면, 불가佛家에서 하는 표현대로 여실지견如實知見’하면 갈등과 대립이 생겨날 리가 없지요. 이 인사의 말만 보면, 맞습니다. 그의 살아온 모습이 그렇습니다. 말과 글로는 이렇게 ‘딱 맞는데’, 실제 삶과 행위에서는 그와 반대의 모습을 숱하게 보여 왔습니다.
그 인사가 마지막 강연에서는 ‘불교사회인은 사회책임 운동에 왜 앞장서야 하는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설립자의 뜻은 사라지고 그곳을 사유화私有化해서 개인과 가족의 영달榮達을 위한 일에만 매진邁進하고 있는 그대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라고요.
신심 깊은 독지가篤志家가 한국 불교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희사한 돈을 재원으로 설립된 재단의 최고 책임자가 된 뒤로 그가 재단을 완전히 사유화하여 발생한 문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규모도 큰데,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쓸 때에는 자신이 대단한 불교 지성인인 척 하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붓다의 제자’라도 되는 것처럼 꾸며댑니다. 순진한 불자들은 이 거짓에 속아 그 인물을 존경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이비似而非 지성인이 활개 치게 놓아두는 것은 불교 전체를 위해서 큰 문제입니다. 히틀러가 등장하여 권력을 잡기까지 독일 국민들이나 지식인 ‧ 종교인들이 ‘설마 …’ 하면서 그를 묵인하지 않았다면, 아니 권력을 잡고 난 뒤에라도 히틀러의 실체를 그야말로 ‘여실지견’ 했다면 그에게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잃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왔듯이, 그 인사가 ‘불교계 지성’이라는 엉터리 타이틀을 갖고 불법佛法과 불교계 그리고 세상을 우롱하는데도 모른 척 할뿐 아니라 그에게 TV에 방영되는 특강의 기회를 만들어준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렇게 되면 그 방송사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신임 사장이 잘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 중 하나인데, 요즈음 그 문제 있는 인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역시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 파렴치破廉恥한 인사가 ‘불교 지성인’이라며 다섯 차례에 걸쳐 하게 될 TV 특강을 실제로 방영하게 된다면, 저는 차라리 “우병우 ‧ 진경준이 청백리淸白吏, 아니 불세출不世出의 구국구세救國救世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믿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최소한 ‘지성인인 척’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우병우와 진경준을 청백리라고 믿고 싶다는 이 역설逆說을 말하는 심정이 찢어집니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