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연재 『나의 행자시절』 개정증보판

한국 불교 백년사 생생하게 담아

스님의 첫마음
박원자 지음, 뜨란
348쪽, 1만5000원

108산사 순례로 널리 알려진 전 서울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 소년 시절에 형수님의 손을 잡고 길게 이어진 오솔길을 걷고 걸어 도선사에 들어왔다. 형수님의 손을 놓는 순간부터 고행은 시작됐다. (23쪽, ‘한 생각 돌이키면 고마울 뿐이다’)

탄허 스님의 상좌로 금강선원장인 혜거 스님은 속가 외삼촌인 김지견 박사의 영향을 받아 열여섯의 어느 날 삼척 영은사로 출가했다. 출가하자마자 공부 복이 있어 탄허 스님의 화엄경강의를 들었고, 그것은 평생의 자양분이 됐다. (35쪽, ‘더없이 치열하고 환희로운 시절’)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장 일진 스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각자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에 ‘조용하고 깨끗한 산중의 스님이 되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말했다. 혈육 이상의 선지식인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그 뒤 고교를 졸업하고 두 달 뒤 용인 화운사에서 삭발을 했다. (64쪽, ‘첫마음, 첫걸음으로’)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고교 1학년 끝 무렵, 대흥사 아랫마을에서 참선 공부하는 선생님이 전해준 『육조단경』을 감동 깊게 읽은 뒤 아예 짐을 싸들고 대흥사로 갔다. 은사 지운 스님을 만나 행자가 되어 절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교를 졸업한 다음날 정식으로 출가하기 위해 해인사로 갔다. (69쪽, ‘다시 태어나도 수행자가 되리라’)

남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터. 삭발염의(削髮染衣)한 스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지만 묻지 못하는 게 있다. 출가 동기다. ‘쓸데없이 그런 건 알아서 뭐 할거냐’는 핀잔을 감수할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스님 인터뷰 전문의 박원자 작가(사진)가 이를 대신해줬다.

작가는 20대에 불교에 입문한 뒤 25년 동안 글쓰기와 수행을 함께 해왔다. 그중 10여 년 이상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스님들의 초발심 시절을 인터뷰해 월간 〈해인〉에 기사를 연재했다. 쉽게 듣지 못할 출가자의 내밀하고 실제적인 삶의 풍경에 독자들은 뜨거운 애정을 쏟아냈다. 스님들은 비록 고된 절집 생활에 몸이 고되고 잠이 부족해도 출가자가 되었다는 기쁨에 마음만은 더없이 행복했다며 즐겁게 회고했다. 기사를 읽고 출가를 꿈꾸다가 실제로 입산한 예도 있고, 노스님의 어린 시절에 눈시울을 붉혔다는 수녀님도 있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교수의 낭독으로 강의실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큰 관심 속에 연재된 백여 명의 행자시절을 모아 십 수 년 전 처음 책으로 펴냈다. 그동안 여러 스님이 자신의 육성을 남긴 채 안타깝게 세연을 다했다. 그때 만난 중진 스님은 원로 스님이 되었다. 출가의 환희를 차분하게 들려주었던 젊은 스님들은 이제 한국 불교계의 중추가 되어 선원장으로, 승가대학장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주지 스님으로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시간이 꽤 흘러 저자는 이전의 원고를 꺼내 꼼꼼히 손보고, 해인사 방장 법전 스님, 금강굴 불필 스님, 운문사 회주 명성 스님, 내소사 선원장 철산 스님 등 몇몇 스님들을 추가로 인터뷰해 새롭게 책을 구성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말미에 인물 및 용어 설명도 덧붙였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우선 48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 담긴 마흔여덟 가지 초발심 풍경과 치열한 구도 여정은 그대로가 살아 숨 쉬는 법문과 같다. 게으르고 무지한 영혼에 밝은 등불이 되어 삶의 주인으로 다시 한 번 새롭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귀한 스승이다.

또한 책에는 1900년대 초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 동안의 한국 불교 수행사, 절집의 풍속과 수행 문화, 솔직 담백한 일상생활, 고승들의 수행법 등이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노스님들의 회고를 통해 만암, 한암, 금오, 청담, 성철, 해안, 청화, 일타, 동산 스님 등 한국 불교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수많은 선지식의 언행과 수행담이 흥미롭게 되살아나 근현대 불교 역사 자료로서의 가치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