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과 ‘문화융성’이 ‘숫자 놀음’으로 가능한가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기획재정부 로고 타입
이제 그 이름이 언론에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큰 힘[권력]을 가졌고 그 힘 때문에 이상한 일에 휘말려 그 힘도 잃게 되고 신문과 방송 등의 선정적인 기사에 그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 인물이 있었다.
그 인사가 재정경제부[財經部] 예산실장으로 있을 때에, 지금은 헐려 버린 옛 한국일보 사옥 꼭대기 층에 있었던 송현클럽에서 열린 조찬 모임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불교 신앙심이 깊다고 알려졌던 그 인사를 활용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 그를 초청해 조계종 일반직 간부 직원들과 신도회 등의 실무자들 앞에서 특강을 하고 대화를 하는 자리였다.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재경부 시절이나 기획재정부[기재부]로 바뀐 오늘도 예산실장이라는 자리는 다른 부처의 차관보다 훨씬 큰 힘을 갖는 자리이다 보니, 심지어 큰소리 쳐대는 국회의원들까지도 지역구 민원을 부탁하느라 그에게는 ‘아부’(?)를 하는 핵심 보직이다. 그 ‘큰 힘’을 가진 그 인사가 특강을 하면서 “우리 같은 재경부 관료들에게 국가를 맡기면 확 바꿀 수 있다. 국방부도, 교육부도 우리에게 맡기면 완전히 탈바꿈할 것이다. …….”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강연이 끝난 뒤 몇 사람이 “불교 신앙심은 어떠냐?” “참선은 하느냐? ……” 등등 별 중요하지 않은 신변 잡담을 묻고 그가 답을 하면서 참석자들 중에는 “역시 신심이 대단한 사람이야. 이런 인사가 불교계, 조계종에 큰 일을 해주지 않겠어. …” 하는 기대에 찬 사람들이 많았다. 이 분위기에 내가 찬물을 끼얹었다. “실장님, 미안하지만 어디에 사십니까?” 뜬금없는 이 물음에 어리둥절해 하던 그가 “과천에 삽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재경부 간부들 중에서 강북 지역에 사는 이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높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재경부 간부들을 포함해서 서민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이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오산, 오해가 오히려 나라를 망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숫자 놀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오만함이 더 큰 문제 같습니다.”라고 말을 마무리하면서 그날 조찬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을 것은 물으나 마나였다.
그날의 그 인사, 재경부 예산실장이 나중에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이 되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다가 ‘신정아 사건’에 말려들어 ‘높은 자리’와 ‘막강 권력’을 잃고 망신까지 당했다. 내 생각에 그 인사가 불교계에 얽혀들지 않았다면, 그냥 순수한 붓다의 제자로 경전을 읽고 보살행을 하면서 살았으면 부총리가 아니라 국무총리까지 올라가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심지어 어떤 문필가 승려는 그를 일컬어 ‘불심대신佛心大臣’이라면서 그를 잃은 안타까움을 신문에 쓰기까지 했다.)
한때 그 기재부(옛 재경부 포함) 출신들 중에서 교육부 장관도 나오고, 국방부 차관도 하고 그랬지만 오늘날처럼 그들이 거의 전 부처를 장악하는 일은 없었다. 어제(8/16) 단행한 소폭 개각을 보도하는 소식에 따르면, 이제 기재부 출신이 ‘환경부까지 접수’해서 ‘기재부 출신 장관(장관급 포함)이 5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중심 국정 기조’를 반영한 인사인 것으로 해석하는데, 이게 과연 잘한 일일까?
그렇지 않아도, ‘기재부가 나라를 망친다’는 볼멘소리가 일반 국민들뿐 아니라 다른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지고 있고 그에 대한 호응도 점차로 거세지고 있는 판에 이런 식으로 가면, ‘기재부의 지나친 독주로 타 부처의 불만도 커질 것’이라는 언론의 예상이 괜한 기우는 아닐 것이다. ‘타 부처들의 불만’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앞에서 예로 든 예산실장 출신 인사의 “우리가 하면 국방부든 교육부든 확 바꿀 수 있다”는 그 오만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어떻게 국정을 제대로 운영해 나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믿는 ‘숫자數字 맹신주의자盲信主義者’들이 환경부 장관도 하고 국토부 장관도 하고 산자부 장관도 하며 국무조정실장도 하면,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행복’과 ‘문화융성’도 모두 숫자 놀음으로만 해결해보려고 하지 않겠는가.
군사독재 시절에는 “육법당陸法黨이 국정을 망친다”는 말이 유행했다. 육사와 서울법대 출신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현실을 질타한 유행어였지만, 차라리 육법당이 법재당法財黨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검사 출신이 연거푸 국무총리를 맡고, 현직 판검사와 전직 판검사들의 어두운 과거와 현재가 드러나면서 ‘법당法黨’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갈 데까지 가고 있는데, 이제는 기재부 출신들의 ‘재당財黨’이 또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 것만 같다. 그들이 가져올 어두움은 ‘법당’들이 가져온 것보다도 훨씬 넓고 깊게 그리고 오래도록 갈 것이다. 아,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