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점은 정화(淨化)이고 정화(淨化)가 곧 세계화다  

현각 스님이 떠났다. 올 것이 온 거다. 언젠가 신문기사에 오른 현각 스님의 기고에 반박하는 한국불교 옹호 글(맨 아래 주소 링크)도 썼던 사람으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현각 스님의 뜻과 진심은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개인적으로도 꽤 오랜 시간 나의 화두였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한국불교의 장점과 단점 가운데 -단점은 가리고- 좋은 면들만 조명하고 선양하는 일이 지금까지 보아 왔고 겪어왔던 한국불교의 세계화이다. 이것은 한국불교에도 세계불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불교 세계화의 잘못된 방향이다. 나 역시 이 점에는 반성이 많이 된다.

현각 스님의 이번 결단에는 많은 고뇌가 따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할 수 있는 말들을 이번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점에 있어서 깊은 존경심을 보내며 현각 스님으로 투사되었던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방향 역시 근본적으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상을 버리고 여실지견하는 데에서 시작했어야 했다. 그동안 한국불교 세계화라는 명제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그냥 맹목적이진 않았는지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어떠한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고 어떠한 기여를 해야 하고 또한 우리는 어떠한 도움과 배움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가지고 이런 일들에 임했어야 한다.

한국불교를 세계화하려면 세계화할만한 내용물이 좋아야 한다. 형식 말고 내용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동안은 한국불교의 내용보다 한국불교의 형식에 치우친 세계화를 추구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예를 들자면 참으로 많다.

내용이 뭐냐고? 천 년 전에 살았던 원효와 지눌의 사상이나, 대부분의 사찰에선 엄두도 낼 수 없는 귀한 사찰음식이나, 수십 년 수련을 해야 그릴 수 있는 탱화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세계화용으로 따로 제작된 영상이나 화보 그런 것들 말고- 우리들의 진정한 본모습과 같은 것들이 바로 우리가 가감 없이 세계에 내보여야 할 한국불교의 ‘내용’이다.

나는 티벳불교에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목숨도 근근이 부지하는 티벳불교가 세계화를 위해 그렇게 힘쓴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세계화는 저절로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되고 있다. 세계화의 대상인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 일을 하고 있다. 세계화의 주체는 그냥 평상시대로 기도하고 수행할 뿐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불교 세계화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구산 스님의 송광사 국제선원, 숭산 스님의 화계사와 관음스쿨, 그리고 원명 스님의 연등국제선원 등이 한국불교 세계화의 본산들이었다. 송광사 국제선원과 연등국제선원은 수장이셨던 큰스님들이 너무 일찍 입적하시는 바람에 명맥을 잇지 못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현각 스님을 배출한 숭산 스님의 유지는 무상사 개원을 통해 계승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을 통해서 참으로 아쉽게 되었다.

“조계종의 외국인 스님은 데코레이션”이라는 표현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데코레이션으로 치면 가장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였던 밀리언셀러 현각 스님의 이번 선언은 말하자면 한국불교 세계화라는 구호가 공염불이었음을 확인하는 중대한 사태이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한국불교가 있고 세계가 존재하는 한 누가 시키거나 밀어붙이지 않아도 저절로 그리고 영원히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게 단지 바람직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이다. 싸드와 위안부와 세월호 등등의 이슈로 온 사회가 횡횡한 가운데 한국불교 세계화라는 명제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비중 있는 어젠다로 여겨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만행』의 필자 현각 스님으로 인해 부각되었던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다시 현각 스님으로 인해서 원점에서 새로운 방향과 목표를 모색해야 하게 되었다.

기본은 정화(淨化)다. 나의 정화, 한국불교의 정화. 세계화의 출발점은 정화이고 정화가 곧 세계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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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미디어붓다>의 게재 요청에 따라 일부 수정해 보내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