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위·교육분과위 주최 ‘현대사회와 승가상’ 세미나서 직선제 놓고 ‘논쟁’
허정스님 ‘민감한 발표’에 시선집중…“완역 초기불전 인터넷 공유” 제의도

조계종 교육원 교육위원회와 중앙종회 교육분과위원회가 주관한 ‘현대사회와 승가상’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가 7월 7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이자랑 동국대 HK교수와 허정 스님(교육위원회 위원)의 발제와 덕문 스님(통도사 율학승가대학원 학장), 원철 스님(포교원 포교연구실장), 오인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김성철 동국대 교수 등의 열띤 토론으로 진행됐다.

발제에 나선 이자랑 교수는 ‘승가가 승가로 존재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요건은 자정능력의 확보’라는 대전제와 함께 발제에 나섰다. 이 교수는 “상가(saṃgha)라는 원어의 의미가 보여주듯이, 승가는 어떤 특정한 목적 성취를 위해 ‘함께’ 운영해가는 집단”이라며 “그렇다면 먼저 이 ‘특정한 목적’에 대해 구성원 간에 명확한 인식의 공유가 이루어져야 승가가 나아갈 뱃머리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자랑 교수는 “‘규범’을 확보하는 일은 곧 ‘여법(如法)’의 기준을 확보하는 일, 다시 말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며 칠불쇠퇴법의 제3항에서 ‘비구들이 아직 제정되지 않은 것을 제정하지 않고, 이미 제정된 것은 파기하지 않고, 제정된 대로 학처(學處)를 계승하고 행동하는 한 승가에는 번영만이 기대되며 쇠퇴는 없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승가를 형성하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전제한 이 교수는 “도중에 갖가지 악행으로 일탈하는 자도 생길 수 있으며, 구성원 간에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규범의 확보는 이런 상황을 미리 방지할 수도 있으며, 이미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하지만 만약 규범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면 마치 대해에서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혼란을 겪는 선원처럼 승가의 구성원 역시 혼란을 겪다 결국 승가가 와해되어 버리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승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점이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은 이상, 이상적인 승가상의 확립은 승가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확보해주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여법한 행동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구성원 모두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간도 노력도 상당히 걸릴 지난한 작업이 될 수 있지만, 이 기본을 무시하는 한 승가다운 승가상은 확립하지 못하며 이런 기반 위에서 승가의 일원으로 우뚝 선 구성원들로 승가가 형성될 때, 그 승가는 자정능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자정능력을 확보한 승가는 내적으로는 화합과 청정과 평등을 실현하는 이상적인 종교 공동체로 존속․발전할 수 있으며, 외적으로도 일반인으로부터 존경받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며 “수행도 교화도 승가가 자정능력을 잃지 않을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개인보다 승가 차원에서 실현될 때 그 의미는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어 허정 스님의 발제가 이어졌다. 허정 스님의 발제는 민감한 성격의 주제도 주제이려니와 스님이 총무원장 직선제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허정 스님의 발제에 대해 토론자들의 질문이 집중된 것도 허정 스님의 발제가 주는 시의성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허정 스님은 ‘미래지향적인 승가상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육화경법의 2가지 핵심인 함께 바른 견해를 갖는 일과 함께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는 일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허정 스님은 함께 바른 견해를 갖는 일은 교육원의 교육체계에서 살폈고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는 일은 사찰운영과 승려복지 등에서 살폈다.

허정 스님은 조계종의 교육체계가 지난 2009에 현응 스님이 교육원장이 되고 부터 혁명적이라 할 만큼 변화한 점을 거론하고, 변화의 핵심은 불교를 쉽고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교육체계를 바꾸어서 시대에 부흥하는 승가가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고 분석한 후,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승가상은 교육체계만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현재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정 스님은 특히 “얼마 전에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서 어렵게 의견을 모은 직선제 요구를 무시하는 종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현 종단 집행부와 중앙종회를 겨냥했다.

“대중의 뜻을 받아들이는 종회가 아니라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종회의 모습을 보였다. ‘함께 바른 견해를 갖는 일’도 ‘함께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는 일’ 없이는 승가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함께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는 일’의 우선 과제는 종단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법을 대중이 원하는 직선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선제는 오래전부터 대중들이 염원해온 종도들의 요청이고 시대의 요청이다.”

허정 스님은 “직선제는 대중공사와 갈마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에 부합하며, 전체 구성원의 견해 반영, 선출과정의 청정성, 선출 후 종단의 화합, 제도 실현 가능성 등에서 다른 선거법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허정 스님은 “승가화합과 공동체 회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께 바른 견해를 갖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견해의 문제는 다시 소유의 문제로, 소유의 문제는 다시 선거의 문제로 관점이 이동해 간다”며 “이러한 관점의 이동은 부처님시대와 현재 시대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는, 자등명 법등명의 길을 가는 우리는, 누가 반대한다고 혹은 누가 못 가게 한다고 가던 길을 포기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허정 스님은 또 “조계종에서 배포한 한글 삼귀의에서는 귀의승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해석하여 ‘승가’를 ‘스님들’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것은 4인 이상이 되어야 승가라고 부를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정 스님은 “이대로 종회를 통과하여 정착이 되면 일반인들에게 혼란을 야기하므로 시급히 정리되어야 한다”며 “‘거룩한 승보님께 귀의합니다’ 혹은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번역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허정 스님은 또 ‘우리말로 번역된 초기경전의 판권을 종단이 사서 경전 전체를 인터넷에 올려 놓아야 한다’거나 ‘직업수좌화, 하나의 수행법 고집으로 인한 배타적인 문제, 대중공양 부담으로 선원에 방부를 들이기 어려워지는 문제’ 등에 대한 대책이 세워져야 하며, 승려복지 해결을 위해 각 사찰의 분담금을 현재의 10배 정도 올려서 시행하는 문제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덕문 스님은 ‘현행 승가교육제도 가운데 계율교육과 관련해서 시급히 보완해야 할 구체적인 견해’와 ‘조계종에서 시행하는 결계 포살에서 구족계 포살을 하지 않고 보살계 포살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이자랑 교수는 “조계종의 승가교육제도는 동국대 불교대학보다도 더 커리큘럼이 잘 되어 있다”며 “그러나 이런 훌륭한 커리큘럼에도 불구하고 조계종도로서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은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이어 “조계종에서 구조계 포살을 하지 않고 보살계 포살을 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라며 “사분율이든 범망계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해서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철 스님은 최근 종단 흐름에 대한 허정 스님의 강한 비판을 의식해 허정 스님을 ‘조계종의 등에’라고 비유한 뒤, “불교관의 일치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선종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간화선 수행을 ‘쇄국정책’에 비유하고 있다”면서 “여러 가지 수행법을 동일 가치의 잣대 위에 두고 스스로 알아서 선택하는 자기 모순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허정 스님 발제가 범하는 가장 큰 허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허정 스님은 “간화선을 하든 위빠사나를 하든 불교관을 같을 수 있다. 수행법이 다르면 불교관도 다를 것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며 “(나의) 발제 내용이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는 구체적인 질문보다는 이념, 교육, 제도의 문제 등 몇 가지로 분류해서 미래의 승가상을 제안하는 것으로 토론을 대신했다.

김 교수는 ‘이념의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공사를 통한 토론으로 불교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좁히며, 삼귀의의 귀의승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에서 ‘거룩한 승보님께 귀의합니다’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식 교육 도입, 초기불전 우리말 번역본 인터넷 공유, 승가고시에서 설법능력 평가, 종책 아이디어와 경험을 공유하는 발표식 연수교육 신설, 선원에서 간화선 이외의 수행 용인하고 다양한 안거제도 정착, 해제기간 동안 사회봉사 체험 등을 제시했다. ‘제도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승가내 사유재산 철폐와 시주물의 균등 분배, 범계행위에 대해 신속한 처벌, 승려노후복지 정착, 종단지도자 직접 선출 등을 거론했다.

김 교수는 “‘초기불전 우리말 번역본 인터넷 공유’와 ‘발표식 연수 교육, 토론식 교육’ 제안은 종책 결정권자의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세미나의 열띤 토론은 발제자와 토론자 간이 아닌 발제자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자랑 교수는 “허정 스님의 발제를 살펴보며 많은 것을 배웠고 동감한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허정 스님이 주장하고 있는 총무원장 직선제는 율장의 만장일치 정신을 위배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만장일치제도가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제도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승가의 여법하고 이상적인 여법화합갈마 정신인 만장일치 정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허정 스님은 “그렇다면 이 교수는 현행 321명이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제도가 만장일치제도를 중시하는 승가의 갈마제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한 후 “직선제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구성원의 의사를 효율적으로 물어보고 구성원은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투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정 스님은 “총무원장 직선제는 승가내 아주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면 승가의 소임자를 정하는 문제이므로 만장일치든 투표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결과에 승복한다는 약속을 하고 진행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자랑 교수는 '현실적으로 만장일치제를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 정신은 승가에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고, 더 노력을 해서 지켜가야 할 가치가 있는 규범이며 따라서 직선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라는 취지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재반박에 나선 허정 스님은 "그렇다면 현재 스님들이 개인 통장을 가지고 있는 문제 등 율장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승가가 도저히 존속할 수 없게 된다"며 "종단의 소임자를 뽑기 위해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 직선제이며, 이것이 갈마정신에 가장 가까운 제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