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전통사찰에서 담은 30여 점 전시

노재학 개인전, 5월 4~8일 불일미술관

통도사 영산전 천정을 담은 작품 <화엄의 빛- 3>

불교미술사진작가 노재학은 2003년부터 10여 년간 전국의 절집을 다니며 사찰천정에 보장한 문양세계를 영상으로 담았다. 통도사 대웅전, 범어사 대웅전, 봉정사 대웅전, 천은사 극락보전, 내소사 대웅보전 등 20여 전통사찰의 불전건물 천정의 문양세계를 담은 작품 30여 점을 골랐다. 이 작품들은 5월 4일~8일 서울 삼청동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찰천정, 화엄의 빛 展』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하늘을 향해 열린 건축구조로 사찰천정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천정(天井)’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하늘을 차단하고 가로막은 것(천장:天障)이 아니라, 하늘세계를 바라보는 통로로서의 우물(천정:天井)로 여긴 까닭이다. 하늘을 관측하는 첨성대의 맨 윗 층이 ‘우물 井’자의 틀을 마련한 이치와 같다고 본 것이다.

그 때 대웅전 등 불전건물은 시공이 무한히 확장된 법계우주로 설정된다. 그래서 사찰천정은 조형 예술가들에 의해 영산회상의 공간으로, 극락정토로, 갠지즈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중중무진한 삼천대천세계의 불국토로 장엄됐다. 그 세계는 불보살의 세계이며, 진리법이 결집한 경전의 세계이며, 예경과 공양의 세계이며, 또 용과 봉황, 태극, 넝쿨문 등 신령한 기운과 생명력이 충만한 현묘함의 세계다.

본질적으로 절집천정은 진리법이 구현된 광명편조의 화엄의 세계다. 단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조형언어를 취했을 따름이다. 천정에 또 하나의 팔만대장경이 갈무리 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10여 년간의 사진작업을 통해 그 천정의 세계를 대중들이 낱낱이 체험할 수 있도록 지상으로 내렸다. 절집천정의 문양세계에 대한 최초의 작업이고, 최초의 전시회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작품들은 절집천정에서 수 백 년 동안 내밀한 은유처럼 세세생생 간직해 온 고색창연한 빛들이다. 단순히 오래된 빛이 아니라, 불국토의 방편반야로 경영한 화엄의 빛임을 사진은 말하고 있다.

작가는 절집천정의 사진작업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고색창연한 문양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은 대개가 대웅전이나 극락전, 약사전, 원통전 등 그 사찰의 핵심 전각들이다. 그 곳은 항상 신도들로 붐비며, 기도와 예경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서 사진작업이 대단히 조심스럽다. 불전건물에서 ‘사진촬영 금지’의 안내판을 보는 것은 다반사의 일이다. 비록 사찰의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참배객들의 예경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기에 선뜻 카메라를 꺼내기가 망설여진다. 사진작업 환경에도 제약이 잇따른다. 사시사철 천정이 연등으로 가려져 있는 곳이 많다. 실내천정은 자연의 빛이 닿지 않아 대단히 어둡다. 조형이나 문양의 형태조차 가늠하기 힘든 곳도 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작가는 순전히 수공업적인 방식을 택했다. 오직 발품을 팔아 가고 또 가는 방법이다. 가고 또 가고 수십, 수 백 차례 찾아가서 모든 문양들을 속속들이 파악해두고, 미리 사진작업 순서와 구도, 조리개 값, 셔터속도, 호흡 등을 시물레이션 수준으로 몸에 익혀 두었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면 재빨리 포착했다.

 “오랫동안 천정을 보며 사진 작업하는 과정에 목과 어깨 통증이 심해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렸죠. 그 과정에서 경전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큰 가피를 입게 됐습니다.”

작가는 천정의 문양세계를 해독하기 위해 부산시립도서관을 삶에 길이 나도록 드나들며 불교경전과 미술사학, 건축, 미학론의 책들을 탐독했다. 그 때 비로소 절집천정 문양이 경전의 세계이며, 불보살의 세계이며, 공양과 예경, 화엄의 세계임을 알았다.

“사진 속 모든 빛은 삼사백 년 전 옛사람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남긴 빛입니다. 내가 담은 사진의 피사체는 오직 사람의 마음일 뿐이죠.”

문의 = 02--733-5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