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근 기고] ‘헬조선과 선(禪)’ 주제 현각의 강연을 듣고

“참선은 ‘존재’와 ‘생각’, 두 개의 초점을 왕복할 때에만 의미”

하버드 출신 벽안의 납자 현각스님의 '헬조선과 선'을 주제로 한 조계사 청년회 초청법회 내용이 화제다. '조계종 쓴소리' 법응스님이 비판적 기고를 보내온 데 이어 이른바 '깨달음 논쟁'에도 참여했던 김왕근 <붓다로살자> 편집장도 글을 보내왔다. 김왕근 편집장은 특히 현각스님의 강연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이 글이 연초 한국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김왕근 편집장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헬조선’이라는 말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거대한 의심이다. 이 ‘큰 의심’이 인생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벽안(碧眼)의 스님 현각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선(禪)’은 ‘큰 의심’이다.”라고 덧붙였다. ‘헬조선’도 의심이고 ‘선(禪)’도 의심이라면 질문은 이것이다. “‘헬조선’이라는 화두를 들고 있는 사람은 따로 참선을 할 필요가 없나?”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깨달음은 이해다”라고 강연했다. 이는 기존의 간화선 중심 불교에 대한 준열한 비판이다. “깨달음은 어떤 ‘경험’, ‘신비체험’이 아니다”라는 말이고, “참선을 통해서 부처가 되겠다는 망상으로부터 벗어나 ‘자비행’을 실천하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때 ‘참선’의 의미는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면, 그리고 이에 기반해서 자비심을 내고 ‘자비행’을 실천하면, 그러면 참선은 필요 없나? ‘헬조선과 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는 이라면 ‘참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말해줄 것 같았다. “깨달음은 이해다”라는 말과 ‘간화선’을 그가 화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016년 3월5일 오후4시 조계사로 간 것은, ‘헬조선과 선’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참선(參禪)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

현각 스님의 강연은 참신했다. 그는 자신도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자살을 시도할 만큼” 강한 의심이 있었다고 했다. 독일에서도 현재 120만 명에 달하는 유입 난민 때문에 미래에 대한 강한 의심이 있다고 했다. 의심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 했다. 현실에 대한 강한 의심, 이는 인간의 기본 조건이며 미래를 개혁할 힘이 된다.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겨움’, ‘역겨움’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는 ‘헬조선’이라는 말로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헬조선’이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렇다. 그런데 스님은 그 ‘혐오’의 단어에서 ‘희망’을 보아냈다.

‘헬조선’이란 말은 지금까지 ‘밖’을 향한 언어였다.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 모양인가?”, “당신들은 왜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이런 나라에 사느니 차라리 이민가겠다” 라는 힐난의 단어였다. 그러나 현각 덕분에 ‘헬조선’은 ‘내면’을 향한 단어, 성찰의 단어가 됐으며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줄 가능성이 됐다. 앞으로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화두’를 생각하고 ‘성찰’의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현각의 강연은 이처럼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참선’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질문하고 싶었다. ‘헬조선’의 현실을 깨닫고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가”를 숙고하며 그런 현실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그것이 곧 ‘참선’인가? 그러나 현각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갖고, 운동할 때 그러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호흡에 집중하라. 그러면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헬조선’의 현실을 성찰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 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호흡’이나 하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현각의 강연 제목은 ‘헬조선과 선(禪)’이었지만, 둘의 연결점은 명료하지 않았다.

‘조계사 청년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내 질문은 청년들의 질문에 밀려났고, 표출되지 못했다. 그러니 내 질문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게 됐다. 나는 그 답을 ‘프로이트 무의식 이론의 재구성자’라고 평가되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게서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인간의 무의식은, 즉 욕망은 ‘언어’로 구성돼 있다. ‘명품 백’을 들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 언어로 구성된 문명이 없었으면 나타나지 않았을 욕망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서원(誓願)도, ‘언어’를 매개로 한 욕망이다.

라캉은 이렇게 언어로 표현되는 세계를 ‘상징계’라고 정의하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상징계라는 구조 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상징계에 갇히는 그것이 곧 우리 세속의 사회이며 나의 삶이다. 상징계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병’을 의미한다. 금지 없는 세상, 욕망의 게임이 없는 곳, 잃어버린 한 조각이 없는 완전함, 주이상스(근원적인 ‘열반’에의 소망)로 가득 찬 실재계와의 조우, 바로 이 상태의 다른 이름이 정신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징계라는 불완전한 구조와 그 속의 불확실함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고 추구하며 그것에 따라 살 수 있게 만드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캉은 인간의 마음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는 케플러의 타원에 비유한다. 인간에게는 하나의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초점이 있을 뿐이다. 라캉에게 있어서 존재와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 라캉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로 바꾼다. 라캉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의심에서 확신으로 나아가는 영적 존재의 지향성에 대해 언급할 때 그가 말의 기능을 폄하했다고 주장하며, 말에는 ‘말하는 사람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고 설명한다. (라캉에 대한 이상의 논의는 김서영, ‘프로이트로의 복귀’ [‘마음과 철학(서양편 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중 ‘라캉’ 편]를 참조했음 ) 인간은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타자(大他者)’의 말을 대신하는, 즉 ‘사회적 담론’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허무한 존재다. 이를 극복하려면 확신에서 의심으로 초점을 이동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나는 수많은 잡다한 생각으로 느끼는 허무감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 명상에 잠기거나 참선해야 한다. 현각은 “‘믿음’은 성직자의 일이고 ‘의심’은 수행자의 일이다”라면서 ‘의심’을 강조한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애국가 4절의 가사는 수행자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잃어버린 ‘존재’를 되찾는 행위가 ‘참선’이며 이에 따라 도착하는 세계가 ‘열반’이다. 그러나 ‘상징계’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는 ‘정신병’이다. ‘참선’은 ‘존재’와 ‘생각’, 두 개의 초점을 왕복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존재’로 돌아오는 것은 ‘상징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라캉’을 수단으로 분석한 현각의 가르침이다. 또한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이 주창하는 바 “‘미래에 부처되기’가 아니라 ‘지금 부처로 존재하기’”로서의 참선이다.

현각은 조계종이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사부대중 백인대중공사’에 외국인 스님 단 한명도 부르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었다. “한국 불교는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외부의 지적(知的) DNA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현각이 대중공사에 공헌했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또한 ‘깨달음 논쟁’에 대해서도 그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왕근. ‘붓다로살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