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회정이라는 승려가 금강산에 들어와서 10년을 작정하고 불교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문을 닫아걸고 열심히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문득 밖에 내다보니, 뜨락에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꽃구름을 이루었는데 호랑나비는 쌍쌍이 짝을 지어 날아들었다.

 “벌써 또 봄이 왔나. 아, 나는 아직도 3년을 이 산속에 있어야 하는가? 제기랄… 공부고 뭐고 걷어치울까 봐…” 회정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가 공부를 시작했던 때로부터 7년이 되던 해의 봄이었다. 봄바람이 불고 일만 꽃이 만발하니 마음 또한 산란하여 이렇듯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짜증을 내며 처음 다진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음이 이처럼 흔들리자 그는 졸음이 와서 글을 읽다 말고 낮잠에 들었다 꿈에 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희정은 너무도 반갑고 황홀해진 나머지 불교의 계율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성현은 같은 성씨를 아내로 삼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래 성명은 어떻게 부르오?” 하고 회정이 물으니, 그 여자는 ‘제 이름은 보덕이라고 부릅니다. 어찌 초면에 이렇게 무례하게 사랑을 고백하옵니까?’ 하고는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회정은 쫓아가며 그에게 재삼 사랑을 간청하였다.

“훗날 만폭동에서 만나 뵈옵게 될 것이니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덕은 이렇게 한마디 말만 남기고는 어디론가 영영 사라졌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회정은 이상한 꿈이기도 하였거니와 꿈에 본 그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여서 좀처럼 잊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거 꿈도 이상 하군”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밖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목동의 피리소리가 더욱 구성지게 들려왔다.

 회정은 글 생각은 아예 잊어버리고 꿈에 본 보덕각시 생각만 하면서 그와 꿈에서 약속했던 만폭동을 향해 무작정 떠났다. 금강문을 지나 개울가로 한참 올라가니 사방이 경치는 점점 더 아름다웠다. 금강대를 왼 편에 바라보며 얼마간 걸어가던 회정은 개울 한복판의 큰 바위 돌에 누군가 수건을 걸어 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북한 국보급 제98호 보덕암.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만폭동 표훈사 근처 보덕굴 절벽에 있는 암자이다.

 (웬 사람이 여기에 왔을까?) 개울가를 살펴보니, 아래 쪽 너럭바위 위에 맑은 물이 고인 돌확에서 어떤 여인이 머리를 감고 있었다. 회정이 발길을 멈추고 서서 살펴보니, 그 여자는 분명 꿈에서 본 보덕각시가 틀림없었다. 그는 너무 기뻐 어찌할 줄 몰랐으나 한편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하였다. 보덕각시는 칠칠 검은 머리를 다 감고 나서는 얼굴에 약간의 소박한 화장을 하고 수건을  걷어 가지고 가려고 하였다. 회정은 이때라고 생각하고 ‘보덕각시’ 하고 부르며 달려갔다.

그러나 그 여자는 본체만체 하고 수건을 걷어 가지고 태연하게 개울을 따라 올라 가는 것이었다. 회정은 미친 듯이 뒤 쫓아 가며‘보덕각시’하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 걸음으로 얼마쯤 올라가더니, 큰 바위 돌을 돌아선 후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회정은 묵묵히 서서 그가 없어진 쪽만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줄도 모르고 한 담소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회정은 문득 보덕각시의 그림자가 물위에 비친 것을 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으나 그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귀신에 홀렸나?) 하고 그는 넋을 잃고 사람처럼 집에 돌아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웠다. 그날 밤 꿈에 보덕각시가 나타나서 “성현은 여자를 곱다고만 생각해도 죄를 짓는다고 했는데 하물며 10년을 작정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외람된 생각을 하고야 어찌 뜻을 이룰 수 있으랴?”고 하며 꾸짖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대가 지금까지 공부를 했다고 할진대 내가 글 안 짝을 지을 테니 바깥  짝을 지어보시라. 그 글에 도가 텄으면 그대의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대를 내가 모시게 되면”이라는 글 안짝을 제시한 후 여기에 바깥짝을 채우라고 하며 종이와 먹을 내 놓았다. 회정은 그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얼른 쓰기를 “반드시 부귀 영화하리라”고 써 주었다.

 보덕각시는 아무 말 없이 밖에 나가더니 회초리를 가지고 들어와서 하는 말이 “그게 무슨 글 읽는 선비의 글인가? ‘그대를 내가 모시게 되면’에는 마땅히 ‘10년 공부는 허사로 되리’라고 글 짝을 채워야 선비답지 않은가. 지금까지 헛글을 배웠소.” 하고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는데 사정이 없었다.

회정은 그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는 이날 아침 보덕각시의 모습이 비췄던 담소(영아지)를 찾아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어디선지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날개를 너울거리더니 골짜기를 따라 오르다가 법기봉아래 높은 절벽에 있는 작은 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상스럽게 생각한 그는 저 굴에 한번 올라 가보자고 결심하고 풀뿌리, 나뭇가지와 돌부리를 붙잡으며 벼랑을 따라 올라갔다.

 겨우 굴 있는데 까지 가 닿았는데 굴속을 들여다보니, 파랑새는 종적도 없었다.  다만 작은 부처 하나가 앉아 있고 그 옆에 불경 책들이 쌓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위를 눈여겨보니, 옛날에 사람들이 올라왔던 자취들과 쇠못을 박았던 자리들이 나있었다.

 그 제서야 그는 관음보살이 바로 자기를 이곳까지 인도해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여기에다 작은 암자 하나를 짓고 살면서 잡생각을 버리고 굴속에 있는 불경 책들을 탐독하였다. 그리하여 회정은 당시에 이름난 학자 승려가 되었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 법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