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주지 응묵)는 오는 10월 25일(일) 약사전 철조여래좌상(신라말 조성, 보물 제41호) 후불탱화 봉안법회와 탱화에 대한 대화마당을 연다.
‘지리산생명평화의 춤’이라는 제목의 이 후불탱화(가로 690cm x 세로 184cm)는, 한국불교 회화의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식과 기법을 사용하여 불교세계관에 나오는 수미산을 지리산으로 형상화하였고, 지리산의 역사와 마음을 담았다.
재료는 전통한지(닥종이)에 수묵과 채색(담채, 석채, 분채, 아크릴 등)을 했으며 이호신 화백이 그렸다.
이날 행사는 봉안불공 및 봉안의식에 이어 실상사 조실 월주 스님의 격려 법어, 이호신 화백에 대한 감사패 전달, 회주 도법 스님의 법문 순으로 진행된다.
천경우 작가의 ‘하늘이거나 땅이거나’ 퍼포먼스에 이어 2부 행사로 대화마당이 ‘지리산과 실상사, 그리고 탱화이야기’를 주제로 설법전에서 열린다.
‘실상사 탱화의 의미’에 대해 안상수 교수(실상사불사 공동추진위원장)가, 탱화해설은 작업을 한 이호신 화백이 진행하며, 오후 2시부터는 윤범모 교수(전 한국큐레이터협회장)가 ‘실상사 탱화를 통해 본 종교와 예술’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고, 안상수교수(전 홍익대 교수)와 도법스님(실상사 회주), 김준기 미술평론가, 지리산프로젝트 참여작가 및 큐레이터 등이 토론에 나선다.
*실상사 약사전과 약사여래불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이 땅의 허리를 이루며 가로질러 뻗어온 백두대간이 지리산에서 끝나며 또아리를 튼 곳에 실상사가 자리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세간에는 예로부터 도선국사의 비기를 빌어 실상사를 이 땅, 이 민족의 흥망을 담당하는 절로 여겨왔다.
약사전에 모셔진 불상(보물 제41호)은 9세기에 들어 조성하기 시작한 철불 가운데 비교적 초기에 모셔진 불상이다. 세간에서는 이 불상을 두고도 역시 이 땅을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학자들은 제각각 근거를 들어‘아미타불’이니, ‘노사나불’이니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세간에서 무슨 의미를 더한들, 부처님이 무슨 이름으로 불린들 무슨 대수이랴! 병이 들어도 변변하게 치료해줄 의사도, 약도 없는 깊은 산골에서 중생들이 마지막 의지하여 아픔을 빌어 달랠 곳은 오직 부처님뿐이었을 것이다. 저마다 몸과 마음의 아픔을 안고 와서 고통을 호소하고, 낫기를 빌며 지극하게 오체투지하니 어찌 불보살의 감응과 가피가 없었겠는가! 이로써 언제부터인지 이 부처님은 중생의 병고를 씻어주는 ‘약사여래불’로 불렸다.
지금의 전각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995년부터 시작된 발굴에 의하면, 약사여래불이 자리한 곳에 전각이 처음 자리잡은 것은 불상이 조성된 시기보다 상당기간 뒤의 일이다. 이 점을 들어 이 불상이 보광전의 주불로 모셔져 있다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유와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불상이 언제부터 약사여래불로 불리었고, 이 전각에 <약사전>이라는 현판을 걸었는지 알지 못한다. 실상사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현 약사전 부지 위에 처음으로 건물이 선 것은 고려 초기이다. 그리고 다른 기록에 의하면 조선 세조 14년(1468년) 화재로 대가람의 전각이 모두 전소된 뒤 가람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기에 이 불상 역시 오랜 세월 들판에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약사전 해체시 드러난 약사전 종도리에 쓰여있는 상량문에 "噫 藥師鐵佛 獨坐土野中 순치 16년 기해 칠월 초3일 중창(효종 10년 1659년)", "강희 40년 신사 유월 초7일 약사법당 삼중창(숙종 27년 1701년)"이라는 내용이 보이는 바, 중창 이전 들판에 계실 때도 이 불상이 약사불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각 안 좌우 화반벽에는 1700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악비천도’ 벽화가 있으며, 어간문의 꽃문살은 수준 높은 장인의 솜씨가 엿보인다.
한편, 1883년 함양의 유생 양재묵 일당의 방화로 실상사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없어질 때도 건재하던 이 전각이 흰개미에 의해 기둥이 약해져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래서 2012년 4월부터 문화재청의 지원과 감독 아래 해체보수 공사가 시작되어 2014년 1월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