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觸)이 왔다’는 말을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듣는다. 한 때 한 코믹 탤런트의 유행어 ‘감(感) 잡았다’와 같은 의미의 유행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이 ‘촉’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 아마도 ‘막연하게 어떤 느낌이나 예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는 의미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촉’은 그렇게 간단한 말이 아니다. 이 단어 하나에 심오한 철학과 논리가 담겨 있다. 촉은 불교의 근본교설이라고 할 수 있는 12연기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불교의 세계관, 인식론, 존재론을 포괄하는 매우 복잡한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호법(다르마팔라)’이라는 저명한 유식논사가 집필한 <성유식론>에서 밝힌 촉의 정의는 “촉은 삼화이고 변이를 분별하는 것이니, 심과 심소들을 경에 촉대하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하고, 수, 상, 사 등에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을 작업으로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뭔 말인지 잘 와 닿지가 않는다. 아비달마 구사론을 공부하지 않은 이에게 이 용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알아듣기 어렵다. 좀 더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어보자.
여기 활짝 핀 장미꽃 한 송이가 있다고 하자. 장미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境)으로서의 장미가 있어야 하고 반드시 눈(眼)이라는 근(根)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장미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 장미를 보는 순간 장미의 형상(相)이 인식되고, 이어 장미가 참 아름답다는 느낌(受)이 일어나고 꺾고 싶다는 생각(思)이 일어난다. 수, 상, 사의 세 가지는 그런데 흩어지지 않는 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의 촉의 체성이다.
우리는 흔히 붓다의 위대성을 우주적 진리를 발견한 데서, 거대 담론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작 붓다의 위대성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 인식에 대한 세밀한 고민이며, 일상에서 철학적의 눈과 사유를 갖게 하는 데 있다. 그냥 우리가 대상을 보고 느끼는 것을 보고 붓다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근과 경을 통해 인식되며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어떻게 하나하나 파악되고 통합되는가를 분석했다.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와 중국화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이런 미세한 분석과 통찰의 특성이 뭉뚱그려진 경향이 없지 않은 것은 따라서 적잖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2연기에서 ‘촉’에 대한 설명을 근·경·식의 셋이 접촉하는 것, 즉 3자의 화합이 ‘촉’ 정도로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서양의 철학에서는 각각의 것을 정치하게 보고 철학적으로 사유한 반면 불교는 그렇지 못하다고. 예를 들어 후설의 수용성에서 현상을 보는 눈이 탁월하고,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으로, 즉 주관적 시간으로 사물을 보는 것으로 미세한 것을 철학적으로 조명을 하고 있는데 불교는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붓다가 이미 2600년 전에 이런 것들을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통찰했다는 점이다. 붓다는 대상(물질)을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어떤 과정에서 일어나고 집착하는가를 끊임없이 파악하고 분석했다. 붓다는 중생이 욕심(망)을 버리는 과정을 막연하게 본 것이 아니라 이런 것에 끄달리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보는 방법을 확연하게 제시함으로써 삼독의 소멸과 열반의 증득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규기의 <성유식론> 해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박인성 동국대 교수와 토론자 안환기 박사.
박인성 교수(동국대 불교학부)가 이와 관련한 논문 ‘변행심소 촉(觸)에 대한 규기의 해석’을 발표했다. 오랜 만에 만나는 격조와 깊이를 가진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 논문에서 ‘호기’ 있게도 중국 유식의 대표격인 규기의 실수를 지적하고 나섰다. 박 교수는 호법이 <성유식론> 제8아뢰야식을 다루는 한 대문에서 촉에 대한 설명을 먼저 제시했다.
“촉은 삼화이고 변이를 분별하는 것이니 심과 심소를 경에 촉대하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하며, 수, 상, 사 등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을 작업으로 한다. ⓵근과 경과 식은 서로 수순하기에 삼화(三和)라고 한다. ⓶촉이 저것들[근과 경과 식]에 의지해서 발생하고 저것들을 화합하기에 저것들이라고 말한다. ⓷셋이 화합하는 위(位)에서 모두 심소들을 (셋에) 수순해서 발생하게 하는 공능이 있기에 변이라고 한다. ⓸촉은 저것들과 유사하게 일어나기에 분별이라고 한다.”
즉 첫째 근과 경과 식의 삼화, 둘째 삼화의 인과 과인 촉(觸), 셋째 변이, 넷째 변이의 분별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진술들은 ‘심과 심소를 경에 촉대하게 한다’는 촉의 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논의들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호법의 진술이라고 강조했다.
호법이 본 촉의 체성과 작업에 대해 “근 경 식의 화합을 논하는 부분에서 이 화합을 상호 수순함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근과 경과 식은 각각 자체를 이루면서 부단히 교섭하고 또 부단히 교섭하면서 서로 자체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 박 교수는 “촉은 삼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삼화의 원인이며, 촉이 삼화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유부나 또는 경(량)부에도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발생한 촉이 다시 삼화의 원인이 되어 삼화를 공고하게 한다는 것이 호법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런데 규기는 이 부분에서 호법의 진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촉은) 심소를 (셋에) 수순해서 발생하게 하는 공능과 유사하기에, 수 등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을 작업으로 한다’는, 촉의 작업을 논하기 시작하는 후반부의 초입에서 하는 호법의 말은 앞서 논한 네 가지 진술 중 오직 ‘변이의 분별’에 의거해서만 촉의 작업을 설명하는 것인데도, 규기는 이 진술과 앞의 세 진술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 ‘심과 심소를 경에 촉대하게 한다’는 촉의 본래적인 공능을 ‘또 다른 공능’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다시 말해 이 ‘또 다른 공능’이야말로 바로 촉의 본래적인 공능인데도 불구하고 규기는 이를 추가적인 공능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안식이 촉과 함께 일어날 때 심인 안식과 심소인 촉은 모두 안근을 동일한 근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일어난다”며 “안식이 이 붉은 색깔을 볼 때 심인 안식은 적색을, 심소인 안촉은 적색의 가의, 불가의 등의 상을 직관하고, 이 때 안식과 안촉은 각각 하나의 자체(自體)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작의(作意)와 함께 각각의 대상으로 향하는 심과 심소들을 동일한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심과 심소 각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심을 발생하게 하는 근과 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과 경과 근 이 셋이 화합할 때 발생하는 촉에 있는 것”이라며 “심이 근과 경에 의지해서 발생하자마자 이 셋이 화합해서 촉이 발생했을 때 심소들도 발생하면서 이 심과 심소들을 한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규기는 ‘촉은 삼화이고 변이를 분별하는 것이니 심과 심소를 경에 촉대하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한다’는 촉에 대한 호법의 정의를 삼화, 촉의 인과 과인 삼화, 변이, 변이의 분별 등의 순으로 서술해 갈 때, ‘변이의 분별’로서의 촉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고, 변이의 분별을 영사(領似)로 이해하면서 촉을 근과 경과 식 셋이 화합할 때 일어나는 변이와 유사하게 수용하는 심소로 보아, 즉 변이의 분별로서 촉을 설명하는 곳으로 집중했기 때문에, 애초의 촉의 체성에 대한 정의 ‘모든 심과 심소들을 경에 촉대하게 한다’는 것을 올바르게 설명해낼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논평에 나선 안환기 박사(서울대 강사)는 “박 교수의 논문은 매우 세밀한 분석을 요하는 ‘촉’에 대해 논의했으며, 특히 새로운 관점에서 촉에 대해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며 “현대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인지과정, 지식의 형성과정 등을 조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안 박사는 그러나 이 논문이 <성유식론> 및 <성유식론술기>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논문의 의도를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 규기를 비판하면서도 논의를 위한 문헌적 근거가 거의 규기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논문은 비판이라기보다는 규기가 말하는 ‘변이’의 개념으로 규기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안 박사는 “촉의 체성을 변이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고자 했던 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이런 논의가 호법의 의도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발표자의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전으로 간주하고 있는 규기의 <성유식론술기>를 직접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불교를 연구해오면서 (발표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불교전통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주제로 열린 이날 불교학연구회의 가을 논문발표회에서는 김성욱 UCLA 박사의 ‘삼처전심의 한국적 기원과 그 적용’, 임승택 경북대 교수의 ‘무아·윤회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박서연 박사(동국대)의 ‘한역 <대방광불화엄경입법계품>과 한문 <화엄경속입법계품>의 비교연구’가 각각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