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궁극적인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내기 위해 수많은 불전텍스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범어, 빨리어, 티베트어, 한문 등의 고전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배경아 박사(동국대 강사)

“현재 일본과 유럽에서 범어와 티베트 원전에 대한 문헌 해석 그리고 연구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연구자까지도 그러한 문헌교정이나 사본 연구에 매달려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받아들여 그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철학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 -권서용 박사(부산대 강사)

“불전 텍스트의 연구는 고전어들의 독해를 전제로 하고 그 고전어들로 이루어진 개념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한다. 각각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개념들의 조합들로 이루어진 불전 내용 역시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철학의 영역은 물론이고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배경아 박사

“원효스님이 범어원전과 티베트원전을 통달했기 때문에 그러한 방대한 철학적 체계가 생산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원효스님은 그 당시 학문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당대 불교의 연구성과를 충분히 흡수하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하고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사유체계를 구축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권서용 박사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 원효스님도 훌륭한 문헌학자라고 할 수 있다. 권 선생님께서 원전연구가 왜 중요하고, 문헌학 연구가 왜 중요하지 않은가를 모르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 불교학계가 사실 70~80년대에 일본불교학계에 예속된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런가? 일본에서 연구된 2차 원고를 들여와서 자기 것처럼 활동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전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산스크리트 원전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산스크리트 원전이 이미 세계화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만일 산스크리트 원전을 공부하지 않고 영역한 것을 들여온다면 일본에 예속된 것처럼 영어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산스크리트 원전을 우리가 바로 한글로 번역할 수 있다면 한국적 불교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불교가 가진 힘과 한국적 문화의 배경이 반영된 한국불교학을 전개할 수 있다.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독창적이고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배경아 박사

“배경아 선생님께서는 불교인식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1언어로 범어와 티베트, 빨리어, 한문 공부가 필수적이고 아울러 제2외국어로는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그것을 마스트하여 불교인식논리학의 본류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거제도 시골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이제 공부를 접어야 할 지경이다.” -권서용 박사

“문헌학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보고 있는 일각의 관행이 있는데, 일본이 문헌학 연구를 하고는 하지만, 일본어로도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가 한문중심에서 일본이 최초로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임으로써 동아시아 불교전통이 일본어 중심으로 전환되는 경향도 생겨났다. 또 일본이 산스크리트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불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범어 원전을 직접 연구함으로써 중국불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불교를 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일본 불교학에서 인식론 분야는 굉장한 발전을 이룩했다. 현재 일본의 경우 일본의 학부생이 일본어 연구자료만 열심히 공부해도 상당한 수준까지 오를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어 있다. 그 기반은 원전을 번역하는 데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어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의 독자적인 불교철학 정립을 위해 원전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배경아 박사

배경아 박사(일본 류코쿠대 박사/ 동국대 불교학부 강사)과 권서용 박사(부산대 철학과 강사)가 배경아 박사의 ‘한국 동아시아 불교학의 연구동향과 과제-불교학의 연구방법론: 불교인식론논리학을 중심으로’ 발제문을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대화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내용은 매우 첨예했다. 원전연구가 왜 중요한가? 원전연구가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언어를 다 독파해야 하는가? 라는 것을 놓고 두 학자 간의 공방은 역설적으로 원전연구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서로의 주장과 논지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두 ‘비교적’ 젊은 불교학자 사이의 논쟁적 토론은 성과를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주장이 모두 각자의 독창적 소신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들을 대변한 일종의 대리 토론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두 학자의 ‘원전 연구’ 관련 토론은 지난 9월 12일(토) 개최된 세계불교학연구소(소장) 개소기념 제1차 학술대회에서 이루어졌다.

제1발제로 발표된 배경아 박사의 논문은 원전 연구가 어느 정도까지 필요한가에 대한 학자들 간의 견해차와 함께 최근 세계 불교학계의 연구동향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문불전의 종주국 중국은 1950년에 티베트를 점령하였고 그 이후 티베트 사원에 보존되어 있던 양질의 범어사본을 입수하면서 사본연구와 인도불교연구의 직접적인 계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 이 계기 이후에 중국의 사본연구가 매우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 방대한 분량의 범어사본을 입수한 중국이 최근 그 중에 몇 편만을 유럽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편집하면서, 불교논리학은 주로 비엔나대학의 학자들과, 불교탄트라는 함부르크대학의 학자들과 연계하여 진행하면서 사본연구에 상당한 실력을 갖춘 예샤용과 루홍 등의 젊은 학자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 등을 소개했다. 배 박사는 중국이 20년 내에 유럽의 도움 없이 중국 스스로 인도불교를 연구해나갈 수 있으며 엄청난 연구 성과를 발표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배 경아 박사는 한국의 사본연구 과제와 관련하여 “범어사본 연구는 지금까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후 “중국의 티베트 소장 사본을 놓고 거의 사본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럽과 일본의 학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은 범어사본을 입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도 한국은 사본에 대한 관심도 적고 사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공유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배 박사는 “한국불교학계의 빈약한 원전 번역 및 연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교 원전을 읽을 수 있는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연구자가 많이 배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불교 인식논리학의 경우 우선적으로 범어와 티베트어의 독해력이 요구되며 그중에서도 범어 독해력은 사본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이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계불교학연구소 개소기념 제1차 학술대회에서는 김한상 박사(스리랑카 켈라니야대/ 동국대 강사)가 ‘인도·동남아시아 불교학 연구동향과 과제: 스리랑카 빨리·불교학의 동향과 전망’을, 이민성 선생(독일 보훔대 박사과정)이 ‘유럽 불교학 연구동향과 과제’를, 문진건 박사(미국 CIIS/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상담심리학과 초빙교수)가 ‘미주 불교학 연구 동향과 과제’를 각각 발표했다.

개소식에서 세계불교학연구소 소장 고영섭 교수는 개소 학술대회 기조강연 성격의 발제를 통해 “국제화 세계화 시대의 가장 큰 관건은 상호 소통의 문제”라며 “우리 학문이 국내외의 성과와 어떻게 소통하고 그를 바탕으로 어떻게 연구를 심화시켜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영섭 소장은 또 “국학과 한국학의 성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불교학 자체의 연구 논저를 공유하고 연구를 심화하는 노력이 요청되며, 세계불교학연구소가 그런 역할을 해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