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94년 불교개혁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이하 94개혁실천비대위)가 출범한다. ‘94개혁실천비대위’ 출범을 기해 불교사회정책연구소 법응스님이 응원의 글(시)을 보내왔다. 법응 스님은 이 시를 지난 94년 발표됐던 ‘대한불교조계종 개혁선언문’을 기초로 해서 작성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그들이 다시 “불교개혁”을 외칩니다!

21년 전 천지를 깨우듯 커다란 외침이 있었으니,
<대한불교조계종 개혁회의>가 ‘종단개혁’을 선언한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
은둔의 관행과 병폐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어용불교를 청산하고, 종권 다툼과 주지자리 다툼의 현장을 치워야 한다,
불교개혁은 시대적 당위이며 우리의 사명이다,
새로움을 위해 몸부림치자,
혹한과 한풍을 이겨내고 승가 본연의 청정 가풍을 일으켜 세우자,
반야의 검을 치켜들고 장엄하게 불교개혁의 대열로 나서자,
금강역사의 힘으로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자!

아! 그런데 보이지 않습니다.
들리지도 않습니다.
오늘의 종단은 그날의 외침을 아예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개혁정신은 희석되고 망각되었습니다.
개혁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끝내 보수화 되고 기득권화 한다는 세간의 논리가
절집가풍에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해 왔습니다.

그렇게 외쳤건만 새로움은 한사코 거부되었습니다.
시대적 요청은 때마다 관습적으로 호명될 뿐 실천되지 않았습니다.
청정 가풍은 이미 오래 전에 오염되었으며 어용불교는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사바의 고통에 눈감고 귀 닫은 채 은둔의 관행 또한 여전하였고
그토록 끊어내고자 했던 병폐의 굴레는
세월을 먹은 콘크리트처럼 도리어 더욱 단단해지고 말았습니다.

문수의 지혜검은 녹이 슬고
보현의 행원은 멈추었으며,
관음의 자비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과 분노, 자괴감에 빠져 허덕이는 때
다시 그날의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자고,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고,
간절했던 그날의 정신을 새로이 다듬어 기쁘게 실천해가자고,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증명하자고 분연히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94년 불교개혁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입니다.

혁신과 불교중흥의 시대적 소명을 완성해 나가고자,
대중의 의지를 모아 금강역사의 힘으로 모였습니다.

모두는 이들을 위해 서원의 향을 사루고, 동참의 촛불을 켜고, 성취의 절을 올립시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
문수보살의 지혜가, 보현보살의 행원이, 관음보살의 자비가 넘쳐흐르며,
천백억화신 부처님께서 나투시도록 합시다.

21년 전 4월 10일에 온 세상을 향해 선언한 ‘대한불교조계종 개혁선언문’이
다시 귓전을 때리고 가슴이 뛰도록 합시다.

파사현정! 우리 불교와 조계종을 멋있고 아름답게 장엄해 나갑시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94년 종단개혁 선언문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사회주의 이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질서와 가치체계로 이룩되는 새로운 문명을 열망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변화와 흐름은 종교계에도 기존의 양식으로는 더 이상 세계속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양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새로운 문명의 길로 나아감에 종교이 진리와 깨달음이 활로를 열어주길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은둔의 관행과 병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와 독재정권 하에서 굴절되어온 불교는 급기야 어용불교로 전락되었고, 저급한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는 교단으로 스며들어 청정가풍을 무너뜨렸으며, 청정수행의 절집가풍은 어느덧 종권다툼과 주지다툼의 현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불교적 세태의 흐름으로는 더 이상 이 땅에 희망을 줄 수 없으며 불교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가 개혁되어야 함은 이 시대의 당위이며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지금 우리가 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단순히 교단의 정화만이 아니요, 종단의 구조적인 변화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개혁이란 바로 이 세계에 새로운 삶의 가치, 새로운 삶의 질서를 제시하기 위한 몸부림이며, 이 사바세계를 청정한 수행 도량으로 만들기 위한 깨달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교단을 이 사바세계에 대안을 갖게 하는 하나의 모델로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 내에 낡은 가치관과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여 승가 본연의 청정한 가풍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아울러 교단의 온갖 구조적 병폐, 제도적 모순을 척결하고 이 땅을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보살의 향기로 물결치게 해야 한다.

불교도여!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을 만큼 불교교단의 치부가 대중에게 낱낱이 드러났다. 겨울의 혹한을 이겨낸 씨앗만이 봄에 꽃을 피우듯, 한풍의 이 혼란과 격동이야말로 개혁의 희망이다.

이제 우리는 떠나야 한다.
반야의 검을 치켜들고 장엄하게 불교개혁의 대열로 나서야 한다.
불교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보살의 길로 나서는 일임을 4부대중 여러분에게 선언하노니, 금강역사의 힘으로 불교개혁을 위해 고난의 길을 떠납시다.

불기 2538(1994)년 4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개혁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