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 초청으로 불교 강의를 위해 방한한 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그레이엄 프리스트 교수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한국을 찾은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 청안 스님(헝가리 원광사 주지)이 강남의 오신채 없는 채식 음식점 ‘마지’에서 5월 22일 만났다. 

오는 5월 27일 오후 4시 ‘화엄경과 인드라망’을 주제로 연세대 새천년관 701호에서 대중강연을 앞둔 그레이엄 교수가 한국의 전통 채식요리인 오신채 없는 사찰음식을 맛보고 싶다며 ‘마지’ 방문을 희망했고, 한국에 올 때마다 ‘마지’를 찾는 ‘마지 매니아’ 청안 스님의 일정이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논리학계의 거목과 논리를 초월한 초논리적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간화선의 수행자 청안 스님이 만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붓아카데미의 강남 프로젝트팀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오찬를 겸한 대화를 제안했고, 흔쾌한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그레이엄 교수는 불교에 관심이 많은 전형적인 서양 논리학자이자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 제이 가필드 교수(Jay Garfield. 현재 싱가포르大 교수), 일본의 데구치 교수(교토대) 등과 함께 인식논리학으로 불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미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식논리학 학자군의 리더 그룹에 속해 있는 학자이다. 그레이엄 교수는, 불교수행을 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불교학자로 인도-티베트 인식논리학 분야를 전공하는 가필드 교수에 비해 불교적 성향은 짙지 않지만, 방한기간 동안 연세대 언더우드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야경>을 비롯하여 용수의 <중론>, 세친의 <유식이십론과 <삼자성론>, 산타락시타의 <중관장엄경론>, <유마경>과 마명의 <대승기신론>, 지엄의 <법화현의>, 법장의 <금사자장>, 혜능의 <육조단경>을 강의하고 있을 정도로 불교 전반에 해박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그는 패러콘시스텐트 로직스(Paraconsistent Logics), 즉 ‘비정합적 논리학’의 관점이 중관 등에서 등장하는 불교안의 모순적 논리들, 예컨대 ‘공즉시색’과 같은 논리들을 해석하는데 매유 유용한 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 중관 등 불교의 그러니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등의 구조를 가진 불교적 모순 자체가 진리가 된다고 주장하는 학파다.

이는 그레이엄 교수와 함께 중관논리 분야의 대표자격인 마크 시더리츠(Mark Siderits,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주장과도 사뭇 다르다. 시더리츠 교수는 ‘말로 표현되는 모순은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라 그 이후의 깨달음이나 궁극적인 것을 볼 수 있도록 지시하는 것, 즉 경각심을 주는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의 시각으로 모순을 해석하는 학자이자 수행자다. 

그레이엄과 가필드, 시더리츠는 인식논리학적 관점에서 불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공동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불교를 해석하는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아주 친한 친구이지만 학문적으로는 에너미(적)’라며 조크를 주고받곤 한다.

그레이엄과 청안 스님의 대담은, 그레이엄이 추구하고 있는 비정합적 논리학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레이엄은 서양의 논리학에서 모순이라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모순인데, 자신이 연구하는 패러컨스텐트 로직에서는 모순이 그 자체로 진리값을 갖는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화엄이나 중관에서 발견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자신의 관심 분야를 소개했다.

그레이엄 교수의 설명에 대해 청안 스님은 그와 같은 연구 방향에 대해 일단 동의하지만 모순이란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립되는 것, 예를 들어 플러스와 마이너스, 남과 여 등과 같은 대립적인 두 가지가 상호 작용하면서 힘을 일으키는 것처럼 삶도 그렇고, 수행도 바로 거기서(모순) 의단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청안 스님은 모순이 그 자체로 진리값을 갖는다는 그레이엄의 주장에 대해서는 견해차를 분명히 했다.

“언설적(言說的)인 진리와 궁극적인 진리는 다른 것이다. 모순은 언설적 차원에서 생기는 것이다. (물컵을 들면서) 여기 있는 것을 컵이라고 이름하기로 하자. 컵을 사용해서 물을 마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사막에서 사람들이 이와 똑같은 컵을 ‘코끼리’라고 부른다면 문제가 되는가? 그렇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물을 담아먹는 컵의 작용이다. 물을 머시는 것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레이엄 교수는 언어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청안 스님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앎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거론했다. 진리라는 것이 중요하며, 서양에서는 궁극적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다음에 기능들이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견지했다.

이후 두 사람은 ‘앎이 먼저냐? 경험이 먼저냐?’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한동안 나눴다.

청안 스님은 선 수행자답게 경험, 즉 수행의 가치를 강조했다. 스님은 원숭이의 비유를 들어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청안 스님은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려서 아래 개천에 비친 달을 보고 있다가, 달을 잡으려 하는 것, 그것이 세속적 진리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달을 잡으려고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그것은 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달을 잡겠다면서 실제로 물속으로 빠지면 달은 사라져버린다며 이유는 개천에 비친 달이 진짜 달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안 스님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달을 제대로 보자는 차원이며, 언어적 표현, 즉 물에 비친 달을 가리키는 세계를 넘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레이엄 교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진리에는 세속제와 승의제가 있으며, 중관에서 보면 세속제에서 모순이 발생하는데, 언설로 표현되는 그 모순이 그 자체로 참 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레이엄의 이 같은 주장은 ‘세속제에서 언설의 모순은 언설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고, 승의제는 언설의 모순으로 승의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승의제는 언설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가필드 교수의 주장과도 다른 것이다.)

그레이엄 교수는 “세속제에서 진리가 된다면 승의제에서 진리가 되는가? 이것은 모순이다.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언설로 표현하는 것이 중관에서는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둘 다 모순이다. 결국 모순이 궁극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순을 합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순이 참 진리값을 갖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안 스님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와 같은 관점은 서양의 지성주의에서 나오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앎을 앞에 놓고, 즉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논리적 사고를 먼저 설정해 놓고 난 후에 경험을 하니까, 경험적 설명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안 스님은 경험(수행)을 말로 설명하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이며, 또한 앎을 경험으로 이해하려 하니까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스님은 경험이 나에게 어떤 작용을 해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에게 어떤 힘을 주는가를 경험하면 되는 것이며, 동양의 아이디어는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경험을 지적(知的)으로 표현하려니까 모순이 발동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레이엄 교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성 또는 종교적 경험이나 지적인 작업들로 동서양을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양에도 신비주의적인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안 스님은 “서양에서도 신비적이거나 동양적인 경험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중세에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이 처형되기도 했으며, 혹여 있다고 하더라도 특수한 것이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결국 경험, 즉 수행 부분에서 경험이 부족한(또는 없는) 그레이엄 교수가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엄 교수는 “청안 스님은 승의적 입장에서 이야기 하고, 나는 세속제적 입장에서 말하겠다”며 ‘후퇴’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이 이야기할 때는 모순이 진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세속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실상 그 스스로 그동안 동의하지 않았던 가필드 교수의 입장, 즉 수행의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물러선 것이다.

청안 스님은 그러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단도직입의 ‘선사적 풍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스님은 “나는 승의제도 세속제도 다 예스”라며, 이어 알음알이의 병폐를 잘 지적한 벽암록 ‘남전참묘’ 공안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이 겉은 서양인이나 그 속내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순발력 있게 남전의 고양이 법문을 지성과 체험의 관계를 설명하는 예로 끌어온 것이다. 

“남전보원화상이 동당과 서당 대중이 새끼 고양이로 인하여 다투는 것을 보고, 이에 새끼고양이를 들고 말하되, ‘대중이 말하면 곧 구제될 것이나 말하지 못한다면 곧 죽이리라’했다. 대중이 대꾸하지 못하자 남전화상이 드디어 고양이를 죽였다.

나중에 조주화상이 밖에서 돌아오니 남전화상이 이 일을 조주화상에게 거론하자 조주화상이 이에 신발을 벗어 머리위에 얹고 나갔다. 남전보원화상이 말하되, ‘그대가 만약 있었더라면 고양이 새끼를 구할 수 있었으리라’라고 했다.“

청안 스님은 지성을 붙잡고 있으면 고양이의 주인을 따지게 된다고 했다. 알음알이의 한계를 잘 지적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를 살리겠는가? 그게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청안 스님의 모습에서 선 수행으로 다져진 내공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중요한 것은 머리싸움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라는 경책이 스님의 표정 속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다.” 그레이엄은 청안 스님의 폭포수 같은 역설에 이렇게 반응했다. 그는 “단지 나는 한국불교에서 화엄과 선불교가 어떻게 관계되는 전통을 갖고 있는지 대해 알고 싶다. 사상적으로 화엄과 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문을 돌렸다.

그러나 청안 스님의 대답은 시니컬했다. 스님의 답변은 “나는 수행자일 뿐이고, 그런 교학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였다.

다소 의기소침했던 그레이엄 교수가 순간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가르주나(용수)는 제2의 붓다라고 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찬드라키르띠(월칭)의 이야기를 거론했다. 아주 지성적이며 철학적 깊이가 농후한 찬드라키르띠의 경우를 보면, 경험을 중시하는 스님들도 결국 지성적인 것을 중시하는 철학자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세속제적 의미의 철학자로서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며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청안 스님은 답변은 선사들이 늘  그런 것처럼 간결했다. “세속적 차원에서 말하는 것을 다 인정하겠지만, 불교에서 깨달음은 단순히 세속적인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이어 청안 스님은 놀랍게도(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한국불교의 유구한 전통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스승인 숭산 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한 후 “한국불교의 장점은 1000년이 넘는 장구한 기간 동안 역대 조사의 가르침이 면면이 이어져 온 수행전통을 가졌으며, 이런 불교전통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한국에만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자신도 이런 선맥을 잇는 숭산 스님의 선맥을 잇는 수행자라고 밝혔다.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에 대해 한국인이 아닌 벽안의 외국인 스님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을 들으니, 어깨도 으쓱거렸지만 동시에 씁쓸함도 없지 않았다. 솔직히 일본불교와 비교해 한국불교에 대해 다소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세계 불교학계의 흐름을 생각할 때 청안 스님의 이날 ‘활약’은 발군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선 수행의 가치를 한껏 고양시킨 대화를 한국인이 아닌 벽안을 한 외국인 선납자를 통해 들었다는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헝가리인인 청안 스님은 지난 1990년 불법을 만났고, 1994년 출가해 이후 6년 동안 숭산 큰스님의 지도아래 한국에서 수행했다. 1999년 8월 26일 숭산큰스님으로부터 지도법사 인가를 받았으며, 2000년부터는 주로 유럽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 2005년 헝가리에 원광사 불사를 시작했고, 2008년 첫 번째 동안거 결제를 시작했다. 출가 전에는 헝가리에서 언어학을 전공했고, 전문통역사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