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가 길상사 요사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2003년 4월 당시 사진이다. [덕조 스님 제공]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법정·최인호 지음, 여백
192쪽, 12,000원

최인호 : 스님께선 어느 책에서나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174쪽)

법정 스님 :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우주의 질서처럼, 늙거나 죽는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176쪽)

2003년 4월 어느 날 소설가 최인호와 법정 스님은 성북동 길상사 요사채에서 마주 앉았다. 네 시간에 걸친 대담에서 두 사람은 행복과 사랑, 삶과 죽음, 시대정신과 고독 등 11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법정 스님은 7년 뒤 자신의 말대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육신의 껍질을 벗었다. 2010년 3월 11일(양력)이었다.

최인호는 그 당시 뜻밖의 병과 2년에 걸친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는 병상에서 텔레비전으로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숨어들 듯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다. 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을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문상을 마쳤다. 길상사 경내를 걷다가 낯이 익은 요사채의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기억을 더듬던 그에게 그곳이 7년 전 법정과 함께 네 시간에 걸쳐 대담을 나누었던 장소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월간 《샘터》 지령 400호 기념으로 마련된 대담 자리였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는 12년 전 바로 그때 그곳에서 두 사람이 한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최인호는 생전에 법정 스님의 기일에 맞추어 이 책을 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병이 깊어져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2013년 9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병이 깊은 중에도 반드시 법정 스님의 입적 시기를 전후해 책을 펴내라는 유지를 남겼고, 그의 뜻은 법정 스님의 5주기를 앞두고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월간 《샘터》에 각기 다른 소재로 인기 연재물을 쓰면서 시작된 첫 만남 이후 30년 동안 두 사람은 열 번 남짓 만났을 뿐이다. 최인호는 ‘들어가는 글’에서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소설 『길 없는 길』을 쓰게 된 최초의 원동력은 법정 스님이 뿌려 준 화두의 씨앗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숙세(宿世)의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법정 스님을 문상하기 위해 길상사를 찾은 그날 최인호는 담장 너머 우거진 덤불에 핀 노란 꽃을 발견했다. 봄을 맞이하는 꽃 영춘화였다. 순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금언이 떠올랐다.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최인호는 속으로 외쳤다. ‘잘 가십쇼, 큰형님. 법정이란 허수아비의 허물은 벗어 버리고 지지 않는 꽃으로 성불하십시오’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