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승가대학장 원철 스님이『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펴냈다.
‘수도승’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일반적으로 산사에서 수행중인 스님을 연상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수도승이 있다. ‘수도(首都)승’이 그 예다. 서울에 사는 스님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인 원철 스님(사진) 역시 수도(首都)승이었다. 포교원 신도국장, 총무원 기획국장과 재정국장,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등의 보직을 맡아 종로구 견지동에서 보낸 시간이 7년이다.
3년 전 서울을 떠나 속리산을 거쳐 가야산에 안착한 원철 스님(해인사승가대학 학장)이 손에 잡히는 책 한권을 들고 다시 서울에 나타났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는 글쓰기라는 노출 증세(?)를 다분히 드러낸 스님의 산문집이다.
“알고 보면 산다는 것은 결국 드러냄과 감춤의 반복이다. 출근이 드러냄이라면 퇴근은 감춤이다. 화장이 노출을 위한 것이라면 민낯은 은둔을 위한 것이다. 피부를 밤새 쉬게 해줘야 화장발이 잘 받는 것처럼 퇴근 후 제대로 은둔해야 이튿날 자기역량을 마음껏 노출시킬 수 있다.”(4~5쪽, 산다는 것은 결국 드러냄과 감춤의 반복)
스님은 과다 노출이라는 지인의 조언 덕분에 도시에서도 산에 사는 것처럼 살려고 애를 쓰다가 어느 날 은둔과 노출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고운 최치원 선생처럼 은둔을 꿈꾸는 이를 만나다면 위와 같은 말을 해주겠단다.
책 제목 설명을 해달라는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집’은 집[家]이란 의미도 있지만 가야 할 본래 자리, 자신의 본래면목, 깨달음의 길을 뜻합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있든, 남미에 있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게 느껴지지 않잖아요. 깨달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서 출발해도 결코 멀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을 잇는 문장가라는 평을 듣기도하는 스님은 나름대로의 글쓰기 원칙이 있다. 일찍 자고 글쓰기는 새벽에 한다. 쓰기 전에 우선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쉼과 중도(中道)의 잣대로 쓴다. 이번 책 역시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쉼과 중도(中道)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떤 사안을 바라보면서 진영논리에 함몰될 때가 많습니다. 경계해야 할 일이지요. 존재론적으로 같이 봐야 합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둘 다를 봐야 합니다. 그 다음은 선택의 문제이지요.”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간에 딱 맞는 글이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다.
“조선시대 계종학명 선사가 신년을 맞이하며 남긴 선시는 이 모든 자질구레한 주절거림에 찬물을 확 끼얹는다. 그리고 ‘제발 헛소리들 그만하라’는 매몰찬 일갈을 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296쪽, 어제의 해가 오늘 새해로 뜨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음미해야 할 글들이 가득하다. ‘여는 글’을 포함해 모두 64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