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배희정 기자)
11월 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물살이 거셌고, 울타리에 묶여있는 노란 추모리본도 거칠게 나부꼈다. 방파제 위로 사람들의 발걸음도 바람처럼 바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영가들의 천도를 기원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수륙재(水陸齋)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주최, 조계종긴급재난구호봉사단과 진도불교사암연합회, 백양사·화엄사·송광사·대흥사·금산사·선운사 등 호남 6개 본사가 주관한 의식이다.
2시 30분 대금과 피리, 아쟁 등의 구슬픈 여는 소리로 추모음악회가 시작됐다. 지전춤을 추는 김태린 씨의 손자락에 잡혀 있는 종이가 허공에서 펄럭였다.
조계종긴급재난구호봉사단 본부장 법일 스님과 원웅스님, 법전 스님, 선일 스님이 단상 위에 올라 구호활동 경과를 보고하자(관련 기사 있음, 기사 참조) 팽목항에서 220여 일 동안의 구호활동을 펼친 불교계에 화답하듯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지전춤 추는 김태린 씨(왼쪽)와 '미안하다 아이들아 용사하지마라 대한민국' 추모시를 발표하는 김경윤 씨.
이어 양은선 씨의 ‘하얀나비’란 구슬픈 노랫가락이 팽목항 내에 울려퍼지자 유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엄숙함이 감돌았다. 이때 희생자 가족 대표 단원고 2학년 9반 이예지 양의 엄마 엄지영 씨가 푸른 물결을 뒤로 하고 단상에 올랐다. “불교계의 220여 일간의 지원에 감사한다”고 운을 뗀 그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228일째인데 9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자를 찾게끔 세월호가 인양되도록 불교계가 함께해 달라”는 호소가 단호했다.
이어 예정된 식순에 없던 세계불교도우의회(WFB) 부회장 진월 스님이 영가의 왕생극락을 빌며 “학교에서 정법과 정의를 가르쳐 왔으나 미흡한 결과에 한탄했다”면서 안전한 세상을 이루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김경윤 시인(교사)이 ‘미안하다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대한민국!’이란 추모시를 낭독하자 법석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기우는 배 안에서 물 샌 바닥에서/ 너희가 마지막 보낸 카카오톡/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해!”/“누나, 사랑해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아, 열입곱 생대같은 아이들아/정말 미안하다, 부끄럽다/너희들 앞에서 어른인 게 부끄럽다”고 용서하지마라“란 시를 읽어 내려가자 희생자가족들은 흐느꼈다. 한동안 바다만 바라보는 이도, 고개를 푹 숙인 이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도 눈물 흘린 지 6개월이 지났건만 슬픔은 매한가지였다.
이예지 양의 엄마 엄지영 씨가 불교계에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진상 규명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좌) 추모시를 듣고 슬퍼하는 희생자가족들(우)
11월 29일 진도 팽목항에서 봉행된 수륙재. 세월호 희생자의 고혼을 위로하고 천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무용가 전연순 씨가 영산회상 춤을 추며 허공에 하얀 천을 흩날리자 희생자들을 향한 그리움은 더해만 갔다. 조계종 사회부장 정문 스님이 대독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추모사와 수륙재문이 발표되며 안타깝게 죽어간 300여 명의 영혼을 천도하는 수륙재의식이 본격 시작되자 희생자 가족들의 이목은 의식에 집중됐다. 차와 꽃을 바치기 위해 단상 위에 오르자 희생자가족들은 고개를 숙이며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진도군 팽목항에는 희생자 가족 외에도 많은 이들이 참석해 추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참사를 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함께 위로했다. 팽목항을 찾은 한 수녀는 “종교를 떠나 함께 슬퍼하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일이라 참가했다”면서 다른 수녀와 수륙재 진행 중인 수륙재 주위를 맴돌았다.
대흥사 한듬다인회(회장 이경자)를 통해 자원봉사를 나온 박숙현 씨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엄마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다”면서 위로의 뜻을 전했다. 사건이 터지고 봉사를 해온 용인 화운사 국제불교학교 다경 스님은 “진실은 밝혀지니 절망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했다.
참사 시작 후 팽목항에서 6개월 간 살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어온 이상임 씨는 “가슴 아파서 못 내려온다고 버티다 팽목항에 내려오니 보도내용과 현실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고, 그 이후 돌아갈 수가 없었다”면서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안타까워했다.
종일 무거운 분위기가 흐른 팽목항을 찾은 이들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안타깝고 슬프다”고 입을 모았다. 6개월이 지났건만 슬픈 감정은 여전했다. 새찬 바람 사이로 수륙재가 진행되고 있었고 ‘잊지 않겠습니다’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추모의 노란 리본과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관련 기사, 관련 화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