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을 며칠 앞둔 지난 7월 24일, 기자는 낯선 중년의 여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른바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 성지’가 만들어지는 곳,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산 191-1번지의 밭 1080평을 소유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이름을 진주석(57)이라고 밝혔다.
이 여인은 지난 12년 간 천진암 성지 추진 측으로부터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박해를 받고 있다며, 자신의 이런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기자를 찾다가 20여 년 전 ‘천진암 내 영통사의 핍박 기사’를 취재 했다가 곤욕을 치른 기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랜 수소문 끝에 연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때 광화문서 피켓시위
진주석 씨는 전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고발하기 위해 1인 시위를 결심하고, 미리 종로경찰서에 신고까지 마쳤다고 말했다. 만일 1인 시위를 못하게 하면 한강대교에 오르겠다며 단호한 의지를 경찰에게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천진암 쪽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오래 전에 절도 쫓겨났고, 마을 사람들도 다 떠났지만, 자신만은 죽을 때까지, 아니 자식 대까지 대대로 퇴촌면 우산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소유지인 밭에 농막을 지어놓고, 아예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 씨는 천주교 쪽에서 밭으로 오는 길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 농막을 짓기 위해 3천만 원을 들여 헬기까지 동원했다며 기막힌 자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는 조만간 한 번 꼭 방문을 해달라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는 실제로 교황 방문 중에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감행했다. 시위는 8월 14일 방문 일부터 시작하여 16일까지 이어졌다. 16일 시복식이 있었던 날에는 ‘천진암 관련 호소문’이라는 제목을 전단지 수천 장을 만들어 천주교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배포하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기막힌 사정을 알리기도 했다.
전단지에는 천진암 성지공사를 주관해온 신부의 폭언 내용과 함께 천진암 상류에 있는 토지주들이 겪고 있는 핍박내용이 담겨 있다. 전단지에 따르면, 현재 천진암 일대에서는 법과 절차도 없고, 국공유지를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불법건축물을 짓고 있는데도 관할 행정기관은 애써 못 본 척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더 기 막힌 사연은 천진암 일대 우산리를 지나는 국도(길, 우산리 603번지)의 초입부분 일부(약 30~40미터 추정)를 광주시가 ‘폐도’가 됐다는 명분으로 대체도로 없이, 진 씨와 천진암측이 소송이 진행 중이던 10년 전쯤 천진암 측에 팔아, 진씨를 포함해 상류에 땅이 있는 토지주들이 통행을 자유로이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
진 씨는 전단지에서 “천주교가 천진암이라는 절터를 성지화하면서 무법천지, 무소불위의 괴물 같은 힘으로 공권력과 행정기관을 농락하고 민간인을 박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교황 성하! 지금 천주교는 천진암이라는 마피아 척결이 시급하다”며 “가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하고 있다.
억울한 사정을 봇물처럼 쏟아내는 진주석 씨.
교황에 편지 전달하기 위해 해미까지 달려가
광화문의 1인 시위에서 교황과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자 진 씨는 8월 17일 충남 해미까지 내려가 교황과의 접촉을 재차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자 그는 교황이 탄 카 페레이드 차량을 향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를 던졌다. 하늘이 도왔는지, 편지는 교황이 타고 있는 차량 안으로 떨어졌다. 진 씨는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황으로부터 어떤 답변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진주석 씨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는 ‘천진암 성지’가 진주석 씨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핍박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이 편지에서 진 씨는 ‘고소고발, 폭력배 동원 살해위협, 교통사고 위장해 죽이겠다, 자식들 싹쓸이하여 씨를 말린다’ 등의 천진암 측이 사용했다는 섬뜩한 용어들을 나열하면서 천진암 측의 ‘만행’을 교황에게 고발하고 있다.
진씨 소유 1080평 밭 둘레에는 전기철조망이…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 가능한 교황 방한 전에 찾아가보겠다고 말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교황 방문이 끝난 후인 지난 8월 말에야 천진암으로 향했다. 8월 28일, 천진암에는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뙤약볕이 내리 쬈다. 진주석 씨의 밭을 찾아 올라가는 평일이라서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진 씨의 밭은 천진암 내 우측 깊은 산기슭,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바로 아래 위치해 있었다. 천진암 측이 성지로 조성하고 있는 중심지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의 밭은 흉측하게도 둘레에 뺑 돌려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길을 가로지른 철문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미리 통화가 되지 않았다면, 사실상 방문이 어려운 곳이었다. 길이란 본래 공공영역일진대,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자유롭게 걸어갈 수 없는 길이 존재하고 있다니…. 진 씨로부터 전화를 통해 들었던 믿기지 않았던 내용들이 조금씩 피부로 ‘실감나게’ 느껴졌다.
진주석씨의 밭은 천주교 수원대교구가 추진 중인 천진암 성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진 씨는 철조망을 뚫고 도착한 기자를 보자마자, 자신의 현재 당하고 있는 온갖 핍박내용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내 땅이 있고, 그곳을 가는 길이 버젓이 뚫려 있는데, 그곳을 갈 수 없는 현실, 이 기막힌 일이 법원의 판결내용이라면 납득이 되겠느냐고 긴 한숨과 함께 하소연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내쫓으려는 천진암 측의 의도”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이 천진암을 나가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2년 간 천진암측으로부터 온갖 핍박 받았다”
“10여 년 이상, 12년을 고생했습니다. 온갖 송사에 시달리면서 벌금도 물었고, 내 전과가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돕니다. 그러나 꿈쩍 안 합니다. 절도 마을주민들도 핍박에 못 견디고 다 쫓겨나갔지만 나는 절대로 쫓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천진암 측의 만행과 횡포를 세상에 널리 알릴 것입니다. 잘못된 것, 억울한 것 다 바로잡고 말 것입니다.”
진 씨는, 천진암 측이 우산리 산 안에 조상의 묘가 있는 한 집안의 벌초도 못하게 막고 있는 사례도 전했다. 그 사람들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조상의 무덤이 있는 땅을 경매로 내놓았다고 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무법천지 천진암 일대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며 그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진 씨는 이어 퇴촌면에서 그에게 보내온 7월 2일자 공문을 꺼내 펼쳤다. 공문의 제목은 ‘농지불법 원상복구 촉구 통지’서 였다. 진 씨가 밭 1080평 내에 지은 하우스 내 농막이 농지의 전용허가 및 협의 없이 지어진 불법건물이니, 농지법 제42조 원상회복 규정에 의해 8월 1일까지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진 씨는 이 공문은 천진암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지어놓은 건물들은 마리아상 뒤에 지은 작은 건물을 뺀 나머지가 다 불법건물이면서 이 작은 농막을 불법이라며 관에 철거 신고를 하다니요. 그래서 저도 천주교 쪽을 상대로 진정서를 냈어요. 그쪽 건물들도 다 불법건축물이 아니냐고요. 그러니까 이제는 조용합니다.”
진 씨는 현재 천진암 내에 들어서 있는 천주교 건축물 대부분이 다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국가 땅에 건물을 짓고, 논밭에 길을 내고 포장을 했으니까, 다 법 위반이니, 천진암 측이야말로 불법집단”이라고 반박했다.
진씨 농막 철거통보에 “천진암 건물 대부분이 불법” ‘맞진정’
진씨가 지난 6월 11일자로 ‘재단법인 천주교수원교구유지대단’을 상대로 퇴촌면사무소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천진암)의 불법행위가 있어 진정하니 철저히 조사하여 법의 절차에 의해 엄중히 처분해달라”며 천진암 측이 저지른 ‘불법행위’들이 적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퇴촌면사무소에는 “처리 중”이라는 답변 외에 현재까지 묵묵부답인 상태라고 그는 전했다.
진정서에 기재된 천진암 측의 불법행위는 먼저 ‘농지인데 타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토지’(일부 도로로 이용하기 위해 시멘트 포장)로는 우산리 393전, 396-2전, 401답 등 20여 개에 가까운 전, 답, 임야의 주소가 망라되어 있었으며, 건축행위를 할 수 없는 국유지인 구거부지 위에 지은 지상의 건축물로는 우산리 564구, 수산리 393전에 있고, 구거부지와 임야와 답 지상의 건축물도 우산리 산142임 지상, 우산리 401답 지상, 우산리 565구거 지상 등에 시공되었고, 우산리 422-1전에 건축되어 있는 건축물과 우산리 388-14, 우산리 430번지 지상에 있는 건축물, 하천과 구거부지 무단점유와 관련해서는 우산리 564구, 565구, 583천 586구 444천 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의 눈에 든 티끌을 보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제 눈에 든 대들보부터 빼내라는 것이었다. 진 씨는 천진암 측에서 행한 이 같은 수많은 ‘불법행위’에 대해 눈감고 있는 퇴촌면사무소와 광주시청 등을 찾아가 거칠게 항의도 해보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입만 다물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천진암 측에서 행한 불법건축물과 시공을 본래대로 원상복귀(철거)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밭 안에 설치한 농막을 거둬내겠다고 통보했다”는 진 씨는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곳은 저주받은 땅…이젠 나도 나를 말릴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천진암 측의 횡포가) 심각한 정도가 아닙니다. 여기는 북한보다 더한 곳이에요. 저주받은 땅입니다. 여기는…”
진 씨는 이제 자신도 스스로를 말릴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것 같다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분노와 슬픔을 담고 있는 웃음이었다.
“우리나라 너무 웃기잖아요. 정부가 종교단체에게 왜 이렇게 벌벌 떠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너무 웃기는 일 아니에요? 버젓이 뚫린 길을 나만 못 다니게 해요. 글쎄 법원에서 그렇게 판결을 했다니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기들은 다 불법건물이면서 내 작은 농막을 불법이라고 철거신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수원교구를 피진정인으로 해서 천진암 측 건물들도 다 불법건물이라고 진정서를 내니까 뭔 영문인지 몰라도 조용해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천진암 측이 지은 건물들 거의 불법건물들이에요. 국가 땅에 건물을 짓고, 논밭에 길을 내고 포장을 했으니까요. 마땅히 철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당합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이 나라가. 웃기는 나라잖아요. 내가 아니라 천진암 그들이야말로 진짜 불법집단이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는 진주석 씨. 그러나 이제는 더 못 참겠단다. 9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각오로 들어왔다는 그는 자신을 “사소한 이익보다는 명분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천진암 쪽에서 소장에서 자신의 땅 1080평을 ‘알 박기’ 운운하면서 ‘돈을 보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이라고 매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것은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천진암 마피아’ 척결 안 되면 바티칸까지 찾아갈 것”
“절이고 주민들이고 다 내쫓았지만 나는 다릅니다. 핵폭탄이라도 있으면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그들이 사람이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크고 작은 재판을 20차례 정도 한 것 같아요. 천진암 안으로는 발걸음을 못하도록 대법원 판결을 했는데 저는 이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리다니요. 저는 이곳을 죽는 날까지, 아니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겨서라도 몇 백 년, 몇 천 년이라도 지킬 겁니다. 12년 동안 그 엄청난 박해를 받고도 견뎠는데 무엇이 겁나겠습니까. 저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싸우다싸우다 안 되면 로마 바티칸을 찾아 가겠다”는 진주석 씨. 실제로 그는 바티칸에 가서 해야할 일, 가지고 갈 준비물 등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만일 자신이 로마로 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신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아마도 세계적인 이슈가 벌어질 것이라며 슬픈 웃음을 들이마셨다.
그의 서글픈 미소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어쩌면 그가 전생에 천주교 신자들을 돌보았다는 이유로 천진암이 폐사될 때 무참히 죽임을 당한 스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려오는 동안 몇 차례나 뒤를 돌아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