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도, 입학식도 총장 없이 대행체제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딱한 모습을 최근 조계종립 중앙승가대학교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나란다’를 추구하는 이 대학의 총장 자리를 놓고 정치적 흥정이 있었다는 소문과, 일종의 거래 시도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안타까운 것은 총장 선출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모습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이 이어지면 대학의 위상은 추락하게 마련이고, 면학분위기 또한 흐트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다 인천(人天)의 스승을 배출하는 대학이자, 학문과 수행의 전당이어야 할 종립대학의 총장 자리까지 정치적 흥정대상이 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교수협의회에서 추천한 스님과 총동문회에서 추천한 스님이 총장 자리를 놓고 팽팽한 경합을 하고 있고, 특히 동문회에서 동문회 추천 후보를 적극 미는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의아한 것이 총동문회의 행보이다. 총동문회는 조용히 학교발전을 위해 재정적 후원을 하거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모아 전하는 것에 그 역할을 한정해야 마땅한 것인데도, 이 처럼 총장 선출에 깊이 간여하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총동문회가 총장 후보를 내는 것도 이상하고, 그 후보를 이사회에서 후보로 받아들이는 시스템은 더 요상한 일이다. 총장 선출은 학교에 맡길 일이지 동문들이 나서서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며, 설사 간여를 한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수준에 그쳐야 할 것이다.
왜 대학의 총장을 선출하는 일에 동문회가 후보를 내고, 또 운동을 하고 다니는 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학 설립과정에서 동문들의 원력이 컸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그것을 근거로 총장 선출에 노골적으로 간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적 공치사에 불과하다. 동문회는 자중해야 마땅하다.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선출을 위한 학교법인 승가학원 이사회 장면. 지난 1월 30일 열린 제97차 이사회는 총장선출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끝났다.
특히 총장 선출권을 갖고 있는 학교법인 승가학원 이사회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원칙을 갖고, 정치적 이해를 배격해 오직 대학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적합한 분을 총장으로 모시지 못하고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이사장인 조계종 총무원장의 행보는 모호한 면이 없지 않다. 종단 일각에서 공공연하게 돌고 있는 소문, 즉 '총장 자리 약속설'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막상 소문의 당사자가 후보가 되는 현실을 목도하며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 설이 맞다면 종립대학의 총장자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여부에 대한 이사장의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학교의 총장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학교의 행정 수반을 선출하는 자리가 아니다. 총장이 어떤 분이 되느냐에 따라 학교의 이미지와 학교의 학사전반에 큰 변화가 따르기 때문이다. 총장은 결코 정치력이나 행정능력으로 뽑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능력은 총장이 갖춰야할 할 부분적 요건에 지나지 않는다.
총장은 교수, 교직원, 학생 등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수용·조정하면서 대학의 목적을 추구해가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중앙승가대학교는 인천(人天) 스승, 즉 스님을 양성하는 중차대한 교육목표를 가진 대학이 아닌가.
이번 중앙승가대학교의 총장은, 대학의 발전과 변화에 대한 분명한 방향감각과 비전을 창출하고, 대학의 조직체계를 하나의 협동적 문화 공동체로 재구성해 내며, 구성원들의 의식변화와 전문화를 추구하고, 조직의 민주적·자율적·개방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으며, 특히 대학 경영에 국제적 감각과 미래 지향적 체제를 갖추게 하는 안목의 소유자를 모셔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