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니, 청와대 안에 있는 석불상(石佛像)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 석불상이 세상의 화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장로 대통령으로 역시 종교편향 논란을 빚었던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이 불상을 치워버렸다는 등의 소문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 졌고, 이를 해명하는 차원에서 언론에 공개하는 소동을 벌인 바 있다. 그런데 이명박 장로가 청와대 주인으로 들어간 지 8개월 만에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종교편향의 논란 속에 이 석불상이 또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번의 경우 개신교 쪽에서 청와대 불상 이야기를 꺼낸 점이다.
장로대통령이 등장할 때마다 오직 청와대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처’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니, 이 불상의 처지도 참으로 딱하게 됐다. 또한 제 종교의 성보인 불상조차 편히 모시지 못하는 오늘을 사는 이 땅의 불자들 마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불상의 청와대 존치에 문제를 삼고 나선 단체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기도시민연대(PUP·이하 기도시민연대)’라는 곳이다. 기도시민연대는 지난 25일 낸 성명을 통해 “청와대 관저 뒤 100m 지점에 있는 불상은 특정종교의 상징물로서, (불상을 청와대에 두는 것은) 불교계 편향적이므로 원래 위치인 경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만약 (불상의 청와대) 유지를 원한다면 종교평등 입장에서 천주교의 성모상이나 개신교의 십자가 예수상도 함께 들어 와야 한다고 믿는데 이에 대한 불교계의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정색을 하고 답을 하자니 구차한 느낌이 들고, 안 하자니 이들의 주장에 마치 일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또 답을 할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간명하게나마 언급한다면, 청와대가 그곳에 설치되기 이전부터 있어온 불상이니 불상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불교에 편향적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따라서 불상이 있으므로 청와대 안에 십자가나 예수상, 성모상을 함께 설치해야 종교적 형평성이 있다는 주장은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선 당시 개신교 일각에서 거론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교회를 세우기로 했다'는 약속이 단순히 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의 현실화 조짐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 안 녹지원 입구에 모셔진 이 석불은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원래는 경상북도 경주의 옛 절터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조선총독부 관저를 신축하면서 옮겨졌다. 석굴암 부처님과 양식이 비슷해 8~9세기의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되고, 앉은키는 110㎝다. 얼굴은 풍만하고 나발(螺髮)과 육계(肉髻)가 있으며, 눈 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다.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코는 원만하며 두툼한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만 감싸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에 주름이 소매 끝과 발목까지 표현되었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指印)이다. 하대석과 중대석은 사라지고 상대석만 남아 있다. 상호가 잘생긴 남자처럼 준수하다고 해서 ‘미남불’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불상은 지난 1974년 1월 15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 노태우정권 때 청와대관저를 신축하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100m 정도 올라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경주 남산에 있었거나, 경주 유덕사(有德寺)에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가 지난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해 <연합뉴스>에서 불상이 있던 장소가 경주남산도, 유덕사도 아닌 이거사(移車寺)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연합뉴스>는 유덕사라는 주장의 근거는 신문기자 출신 미술평론가이자 문화재 사가(史家)인 이구열 씨의 1973년 저서인 '한국문화재비화'와 그 재판인 '한국문화재 수난사'(돌베개.1996)이고, 남산이라는 추정은 경주라는 원래 자리를 떠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대체로 남산에서 나온 것인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러나 어느 것도 본래장소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는 경주 지역사에 정통한 이 지역 출신 신라사 연구자 이근직 박사(문화재청 전문위원)의 발언을 근거로 이 불상의 본래 소유터가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移車寺)터라고 보도했다. 이거사는 성덕왕릉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사찰의 존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시대 기록에 보인다. 이에 의하면 성덕왕이 재위 35년(736)만에 죽자 시호를 성덕(聖德)이라 하고 이거사(移車寺) 남쪽에 장사지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연합뉴스>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이 청와대 불상이 있던 곳인지를 단정적으로 말할 곳은 아직 없다. 이 불상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황수영 박사의 <일제기 문화재 피해자료>(1973년 1월 25일 간)에 나온 기록이 사실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여기서 청와대 안 석조여래좌상에 대한 황수영 박사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황수영 박사는 이 불상을 ‘경주석불(총독관저)’이라는 제목의 기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경주석조석가여래상(1920) 고보권5(古譜券五 해설5에 의함). 경주 모처에 있었던 것. 지금은 옮겨져 조선총독의 관저에 있다. 당대의 것으로 양식, 수법 또한 가작이라 부르기에 족하다. 편자주: 속칭 「美男佛」이라고 호칭되었다는 바 현재 청와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에는 이 불상의 좌대를 찾기 위해 관계자를 경주에 파견한 기록도 ‘복명서(復命書)’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총독관저에 있는 석불의 대좌가 경주박물관정(庭)에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 이것의 조사 및 가져오기 위하여 경주에 출장을 명받고 8월 3일 출발 8월 6일 귀임하였다. 따라서 좌(左)에 조사의 상황을 복명함. 소화13년(1939) 8월 7일 기수(技手) 小川敬吉, 총무국장 전(殿)
내친 김에 더 자세히 당시 조사를 위해 파견된 기수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경주박물관정에 소재하는 석좌는 총독관저에 있는 석불의 대좌라고 전하여졌으나 조사의 결과 명도와 같이 상원하팔각조(上圓下八角造)로서 소형이다. 석불과 크기, 형식 등 일치하지 않고 별물(別物)이다. 어떤 오전(誤傳)일 것이다.
2. 관저에 있는 석불은 대정2년경 사내(寺內·데라우치)총독이 경주를 순시하였을 시 본 석불을 보고 또 보고 재삼 들여다보고 숙시(熟視)한 일이 있다. 당시 경주의 금융조합이사 소평(小平)씨는 총독의 마음에 든 석불로 생각하여 곧 이것을 경성관저로 운반한 것이라고 한다.
3. 소평씨는 지금 경주에 살지 않으며 동씨에서 전문(傳聞)하였다고 하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본 석불은 원래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慶州郡 內東面 道只里)의 유덕사지에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고로 불좌석은 보이지 않으며 다만 전답 중에 폐탑, 주초(柱礎) 등이 산란함을 볼 뿐임.
4. 그리고 우석불(右 石佛)에 적당한 불좌(佛座)를 구하려 타사지(他寺址)를 조사하였으나 적당한 불좌를 얻지 못함.
5. 요컨대 불좌가 경주박물관에 소재한다는 것은 오전으로서, 소재하는 불좌는 타(他)의 것이다. 우(右) 복명함
이상의 기록만 보더라도, 개신교 일각에서 주장하는 청와대 안에 불상이 있으므로 불교편향이고 종교편향이라는 주장은 억지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것에 근거한 청와대 안 예수상이나 십자가 설치 주장은 구상유치(口尙乳臭)의 전형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 안의 미남불을 청와대에 그대로 놔 둘 것인가의 문제다. 기독교인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와 관계없이, 일제강점기에 총독 한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청와대 뒷산으로 옮겨진 석불상을 본래의 자리인 경주로 돌려보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명분이 있다. 또한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 국민 전체의 자산인 만큼 모든 본래의 장소로 옮겨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혹여 본래 석불상이 있던 장소를 찾지 못한다면, 관계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가장 바람직한 장소를 정하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문화재를 문화재로 보지 못하고, 특정종교의 상징물로 간주해서 함부로 말하거나 폄훼하는 언동에 대해서는 준엄한 국민적 단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청와대 안 석불상은 특정종교의 성물인 동시에 자랑스럽고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전통과 문화를 부정하고 폐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 아울러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쓰이는 예산을 특정종교 지원금과 구분하지 못하는 저열한 인식수준에도 사회적 경종을 울릴 방안이 정부차원에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이번 기회에 청와대에서 어떤 종교적 행위도 없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성이 있다. 또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교회를 세우기로 약속했다는 식의 말이 다시는 돌아다니지 않도록, 청와대로 목사를 초청해 기도를 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또 청와대나 정부의 요직에 현직 목사를 임명하는 일이 없도록 청와대에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불교계 또한 11월 1일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경북범불교도대회에서 어떤 이유로든 청와대에 있는 부처님(불상)을 편히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해 불제자로서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