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기자협회(이하 불기협)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책 『한국의 대종사들』 때문에 조계종 원로의원 스님들이 화가 나 ‘책 전량을 폐기하라’고 했고, 조계종 총무원장이 대노하는 등 종단 집행부가 벌집을 쑤신 듯 요란하다는 한 인터넷 언론의 보도를 읽고, 이 책에 글을 쓴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동시에 ‘이 일이 과연 온 종단이 벌집 쑤신 듯 시끌벅적할 만큼의 일인가’라는 의아함도 금할 수가 없다. 원로의원의 상좌와 문중까지 들고 일어난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뭔가 절집의 풍토가 잘못 가고 있다는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27명의 불기협 소속 기자들이 대종사 30명을 인터뷰해 사진과 함께 엮은 노작이다. 엊그제 책을 받아보면서, 그런대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 졌는지 황당하기만 하다.
불교언론의 상황이 극도로 어려운 현실에서 힘겹게 불기협을 이끌고 있는 집행부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불교계의 최고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종사들의 삶과 수행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세워 이뤄낸 결실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인터넷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해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조목조목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책 제목을 ‘대종사’가 아니라 ‘대종사들’이라고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들’이라는 표현이 불경한 표현이라는 것을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처음 알았다. ‘대종사들’이란 표현이 어째서 그리 문제가 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위인들, 성현들’ 등의 말도 다 불경한 것이 된다. 트집에 지나지 않는다.
또 표지 디자인의 큰스님 30분의 얼굴 사진이 너무 작은 데다, 잘리고 얼굴 크기도 제각각인 점도 원로의원 스님의 화를 부추겼다는 것인데, 글쎄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불교계 디자인의 수준은 십년 이십년 전으로 후퇴할지 모른다. 스님의 얼굴을 작게 처리해 표지 디자인으로 활용한 것은 새로운 시도로 외려 신선해 보인다. 얼굴이 잘린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 역시 디자인의 기본을 모르는 데서 온 소치에 지나지 않는다. 편집상에 있어서 얼굴사진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트리밍)은 편집 디자인에서 아주 일상적인 것이다.
원로 30명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점도 납득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조계종의 법통을 상징하는 종정스님과 원로회의 의장스님을 앞에 모셨고, 명사(비구니)스님과 태고종의 종정 스님을 뒷부분에 배치한 것으로 볼 때 이 역시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대종사 스님들이면 이미 서열이나 순서 따위는 무의미한 무애의 경계에 오른 분들일 것이고, 더더군다나 그런 문제를 갖고 진심(嗔心)을 내는 분은 안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외려 대종사 스님들이라면 자신을 책의 맨 뒷부분에 배치해달라고 서로 원하지 않았을까.
일부 대종사 스님들이 누락된 것은 가능한 모든 스님들을 인터뷰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렇게 된 연유를 불기협 집행부로부터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불기협은 이 책의 서문에서 “여러 사정으로 대종사 스님 전체를 담지 못한 점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라고 적고 있지 않은가.
또 30인에 포함된 설정 스님의 경우 모든 행정 절차는 끝났지만 종정 스님으로부터 법계를 수지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 논란거리가 된다는 내용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모든 행정절차가 끝났다면 이미 대종사인 것이고, 더구나 설정 스님은 덕숭총림의 방장이시지 않는가.
명사(대종사에 해당하는 비구니 품계) 스님을 포함한 것을 원로회의에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보도도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 또한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태고종 종정 혜초스님을 30인 가운데 포함한 것도 일부 대종사 스님들이 불만을 갖고 있고, 특히 직전 총무원장 스님이 태고종 스님이 포함된 것에 강하게 반발하며, ‘그럴거면 나는 싣지 말라’고 했다는 보도내용은 사실이라면 지극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불기협 집행부에 확인해보니 사전에 원로회의 의장스님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해를 구했고 의장 스님도 양해를 했다고 한다. 더욱이 불기협에는 조계종 소속 언론사만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불교계 주요종단의 매체들이 고루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것을 갖고 문제를 삼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또 일부 내용에 오자나 잘못된 내용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경천동지할 내용이 아니라면 정오표를 활용하거나 재판을 찍을 때 바로잡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전량 폐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종단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책을 펴냈으므로 이 문제에 출판사의 관리를 맡은 포교원이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난센스다. 그 메카니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닌가.
불기협의 안직수 회장은 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곧 불기협 전체회의를 열어 책을 회수하고 수정판을 내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은 수정판이 나왔을 때에 벌어질 광경이다. 비구니 명사 스님도 빼고, 태고종 종정스님도 뺀, 그리고 마치 군대에서 짬밥수를 가리듯이 엄격하게 서열을 세워 출간된 책이 모습이 과연 향기로울까.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세밑의 계절에, 절집 식구들의 마음 씀씀이가 갈수록 사나워지는 것 같아 무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