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佛紀)를 잘못 사용하는 문제는 고질병처럼 질기다. 이젠 바로 사용할 때도 되었는데 영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불교계 전반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불기는 알다시피 부처님의 열반을 기점으로 한다. 탄생 시점이 아니라 입적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는 불교의 기초상식에 속하지만 여전히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열기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를 즈음,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전히 많은 절에서 불기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였다. 그는 다시 한 번 환기를 시킬 필요가 있다는 걱정과 함께 불기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일부 사찰과 스님들을 원망했다.
‘불기 2553년’의 의미는 올해가 불기로 2553년이란 의미다. 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2553년째 되는 해란 뜻이다. 따라서 ‘봉축 불기 2553년 부처님오신날’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부처님 탄신 2553년을 맞이하여…’라든지, ‘오늘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지 2553주년이 되는 해’ 등의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꼭 부처님께서 태어나신지 몇 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면 불기 2553년에 부처님께서 재세(在世)했던 기간인 80년을 보태 사용하는 것이 옳다. ‘2553+80’은 ‘2633’이므로 ‘오늘은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지 2633년째 되는 날’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기에 대한 이런저런 이견이 상존하고 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 것인데, 이나마 우리나라는 WFB에서 정한 불기보다 1년을 빠르게 잘못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불기에 부처님의 재세기간을 더하는 수고를 하기 보다는 그냥 ‘오늘은 불기 2553년 부처님오신날’, ‘불기 2553년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합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그 종교를 창시한 교주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한 바를 따라 하고자 하는 것인데, 정작 그 종교의 불기를 잘못 사용하거나 교주의 일대기를 건성으로 넘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자는 불교를 믿는 사람인데,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부처님이 어떤 삶을 살아가신 분인가를 제대로 모른다면 불자의 자격이 없거나 모자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기를 부처님 탄신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안다면, 아직도 부처님이 설산에서 고행을 했다고 알고 있다면, 또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있다면, 그는 불자로서 기본이 덜 된 사람이다. 출·재가를 불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