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15대 중앙종회의원 선거는 끝났지만 이번 선거는 조계종 선거사상 우려할만한 오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할 총무원 총무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석연찮은 행보 때문이다. 이는 국가로 따지면 선거 관련부처와 기관의 ‘관권개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총무부는 승적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총무원의 핵심 부서로 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서다. 총무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관련 행정 처리에 관한한 종법과 공식서류에 의거해 공평무사한 행정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총무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는 그렇지가 못했다.
몇 가지의 께름칙한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이중 특히 은해사 교구에서 출마한 법일 스님(대전사 주지)과 관련하여 ‘구족계 수계에 대한 증빙자료 없음’이라는 총무부장의 전결회신으로 ‘후보자격이 없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나오도록 한 것은 아주 잘못된 선거행정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승적원본이나 수계확인서 등 종단의 공적 서류에 근거하지 않고 총무부장의 전결회신에 의지해, 그것도 표결이라는 납득하기 힘든 절차로, ‘자격 없음’의 결정을 내린 선거관리위원들도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상당수가 쫓기듯 사표를 던지고 떠났다고 그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려 책임회피라는 업보가 추가될 뿐이라는 것을 인과의 가르침을 믿는 분들이니 잘 알 것으로 본다.
법일 스님이 ‘11월 12일까지 구족계 수계증빙자료를 제출하라’는 총무부의 요구에 답해 제출한 소명자료를 보면, 총무부의 선거관련 행정 처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년에 분한신고를 마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승려증을 교부받았음에도, 또 지난해 8월 열릴 예정이었던 특별수계산림 당시 신청을 했을 때에도 계단위원장 고산 스님이 ‘이미 종회의원 등의 교역직 소임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으로 비구계를 수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답을 한 사실이 있는데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구족계 수계에 대한 증빙자료 없음’이라는 통보를 한 것은 문제다.
81년 단일계단 이전의 수계사실 입증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로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 스님과 법장 스님도 문제가 되어 법적 소송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법원은 ‘비구계를 수지하지 아니하면 취임할 수 없는 절의 주지나 종회의원 등을 역임한 것과, 80년 이전에는 종단내부질서가 제대로 확립되지 아니하여 불기의 적용, 비구계 수지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혼란이 있다는 점을 들어 구족계 수지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이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종단에서는 이미 지난 1981년 9월 4일자로 공포한 개정승려법 부칙 제2조에서 ‘개정승려법 시행 당시의 비구, 비구니계, 사미, 사미니계 수지자와 종회의원과 기타 재직 종무원은 본 법에 의하여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이는 단일계단 이전에 여러 본사에서 이루어진 비구계 수지를 모두 합법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법일 스님은 이 법에 의거해, 수계사실의 합법성이 인정된 경우에 해당된다. 총무부의 통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으로 종단의 한 중진 스님이 졸지에 피선거권을 박탈당했고, 해당교구의 종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후보 선택권을 제한당하는 결과를 초래했음이 이 개정승려법의 부칙을 통해 명백해졌다.
더 가관인 것은 법일 스님이 자신에 대한 선관위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행정심판을 10월 26일 호계원에 청구하고, 3일 뒤인 29일에 총무부가 법일 스님에게 ‘수계확인서’를 발부한 사실이다. 10월 29일자로 발급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명의의 수계확인서에는 법일 스님이 ‘1980년 10월 15일 해인사에서 일타 화상에게 비구계를 수계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총무부가 중앙선관위에서 수계사실 확인 요청을 했을 때, 왜 이 수계확인서를 제출하지 않고 전결회신을 했는지 답해야 한다. 우연히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고의인지 알 수 없지만, 총무부가 해명해야 하는 사안임이 분명해 보인다.
제11대, 12. 14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한 스님이, 승적원본이나 수계확인서, 개정승려법 부칙 조항 등 여러 가지 증빙자료가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비구계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총무부장의 전결회신으로 인해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투표를 하는 종도들은 후보선택권을 빼앗긴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행위다.
총무원장은 종무행정의 수반으로서 마땅히 이 문제를 조사하고, 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 총무원 집행부가 '관권선거를 한 집행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것은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좋다. 책임질 일에는 책임을 묻고, 잘못된 선거행정으로 피선거권과 후보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치러진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종회의원 선거는 원천 무효이므로 다시 치러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선례로 인해 앞으로 종단은 더 큰 혼란을 맞을 것이 분명하다.
선거는 끝났지만, 이제부터는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처리에 나서야 한다. 세속에서도 선거 관련 문제는 가능한 빨리 처리하는 만큼 조계종도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서둘러 법대로, 상식에 준거해 문제점들을 말끔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