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베트남 사이공의 미 대사관 앞. 당시 남베트남 불교계에서 명성이 높던 틱쾅둑(Thick quang duc) 스님이 이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주변에는 동료 스님들 수십 명이 있었고, 그들 모두는 틱쾅둑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틱쾅둑의 거사를 도왔다.

침통한, 그러나 비장한 얼굴의 동료들은 석유통을 들고 틱쾅둑의 몸 위에 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수많은 군중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오직 틱쾅둑만은 아무런 동요 없이 가부좌를 튼 채 삼매에 들었다. 베트남의 큰스님 틱의 몸에 한 스님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순간 불길을 솟구쳤고 틱쾅둑 스님의 몸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식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물을 흘리고 슬픔과 놀라움에 입을 닫지 못하는 장면들이 군중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틱쾅둑 스님만은 미동도 없이 가부좌를 튼 채 담담히 불길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불길이 되고 있었다. 가부좌를 튼 그의 자세는 그의 몸이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그러나 장렬하고 치열한 죽음이었다. 틱쾅둑 스님이 소신공양을 결행한 것은 1960년 팍스아메리카나를 주창한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에 항거한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며 기존의 정치와 사회, 문화, 종교의 배경과 질서를 묵살하고 획일적인 변화를 강제적으로 추진했다. 이런 일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미국은 그들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고딘디엠을 대통령에 앉혔다. 기존의 종교와 문화를 파괴하는 대신에 천주교를 도입시켰다. 자연 토착신앙이자 국교였던 불교를 탄압하고, 수많은 사원을 파괴했으며,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불자들에게 불평등한 조처가 취해졌다. 이에 항의하는 수십명의 승려들을 학살하는 사건까지 생겼다. 지배세력을 중심으로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암담한 상황을 지켜보았던 틱쾅둑 스님은 분연히 일어나 소신공양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조국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틱쾅둑 스님은 순교의 길을 결단한 것이다.

틱쾅둑의 소신공양으로 민심이 동요되고,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주춤거릴 때, 대통령의 부인이 틱쾅둑 스님을 ‘바베큐 승려’라고 비아냥대는 일이 생겼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임계점에 와 있던 민심이 폭발했다.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이 종말로 치닫는 역사적인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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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년, 5월 31일. 중장비의 삽날에 찢겨 신음하며 죽어가는 수없이 많은 생명류들의 아우성이 들끓는 낙동강의 한 둑방에서 참선수행에 전념하던 문수 선사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휘발유를 뿌리고 소신공양을 단행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소신공양을 결행한 그는 소신공양에 앞서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간절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가르침을 그는 소신공양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통해 온몸으로 시현해보인 것이다.

소신공양, 말그대로 스스로 몸을 태워 온 몸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이 의식의 근거는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 제23에 나온다.

“희견보살께서 일원정명덕 부처님 회상에서 수행정진할 때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를 증득하여 육신으로 공양함을 서원하고 행유(香油)를 몸에 바르고는 부처님 앞에서 하늘의 보배 옷으로 몸을 감아 거기에 향유를 끼얹고 몸을 스스로 태워 공양을 올려 불은(佛恩)에 보답한다,…스스로 소신하면 그 광명은 80억 항하사 세계를 비춘다.”

경에서도 밝히고 있듯 소신공양은 깨달은 구도자가 자신의 온몸을 태워 자신은 절대삼매에 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그 빛으로 중생을 널리 구제함을 의미한다.

이제 문수선사의 큰 뜻을 살려 마침내 생명평화의 세상을 이뤄내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할 일이다. 수경스님의 “더 말과 생각으로 폼 잡을 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실천으로 나설 때라는, 문수스님의 소신은 그런 가르침을 주려는 큰 죽비에 다름아니라는” 절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소신을 결심하고,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린 후 불을 당길 때의 선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불길이 몸을 휩싸고 돌 때, 자신의 몸이 이내 불길이 되고 한 점 한 점 재로 변해가는 순간, 선사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는 선사의 공양에 살아 있는 자들이 답해야 할 때다. 아마도 개발이라는 이름의 파괴로 죽어가는 수십만종의 미생물과 곤충과 식물들의 신음과 그들과 함께 살았던 어류와 동물, 곤충들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지는 않았을까.

이제 불교계는 지금까지의 생명살림 운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선사의 소신을 맞아 마지못해 내는 듯한 그런 형식적인 애도논평 말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으로 선사의 결단에 보답해야 한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은 그동안의 어정쩡한 침묵이 용인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른 문제도 아닌 생명을 살리는 문제에 대해, 생명존중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불교계를 대표하는 행정기관이, 교계일각에서의 지적처럼 어떤 세력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거듭 절대삼매의 경지에서 최고의 공양으로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있는 이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드러내 보인 문수 선사의 보살행에 거듭 찬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