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5월 새내기 기자였던 시절, 김동수 열사에 대한 기사를 동료기자가 썼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에 맞서 도청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산화한 김동수 열사에게 당시 우리는 ‘보살’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요즘이야 보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때만해도 조심스런 부분이 없지 않았다. 과연 그에게 ‘보살’의 칭호를 붙여도 괜찮을까, 혹시 스님들이나 완고한 불자들에게 핀잔과 야단을 듣는 게 아닐까,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동수 보살’, 그것은 광주학살의 희생자들에게 대한 살아남은 자들, 산화한 이들에게 빚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의이자 예의라고 당시 편집국 기자들은 생각했다. 그 후 김동수 열사에게 보살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관례가 생겨났다. 기자들은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한 가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 같은 것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5월이면, 김동수 보살이 떠올려지고, 혹시라도 김동수 보살과 관련된 행사가 열리면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그런 김동수 보살에 대한 30주기 추모행사가 그가 산화했던 5월 27일, 보살의 추모비가 서 있는 광주 조선대 교정에서 열린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로 인해 다시는 후퇴하지 않을 것 같았던 민주주의가 또 다시 경각의 위기에 놓여 있고, 지난 80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이즈음에 ‘영원한 우리들의 보살, 지광 김동수열사’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추모행사는 ‘5·18민중항쟁 30주년 불교추모위원회’가 주최하고, 광주불교사암연합회, 지광김동수열사기념사업회, 조선대불교학생회동문회가 주관한다.
해마다 맞이하는 사월초파일이지만 이번 초파일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1980년 5월 21일, 꼭 30년 전의 이날도 올해처럼 부처오신날이었기에 그렇다. 또한 평화롭고 행복해야할 부처님오신날이 계엄군의 총탄으로 피의 초파일이었던 것처럼, 오늘의 초파일엔 남북 간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강압적 분위기가 팽배해있기에 그렇다.
광주학살 이후 불교계에서는 5월을 이야기 하면서 지광 김동수열사를 빼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1958년에 태어난 김동수열사는 80년 5월 당시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으며, 대불련 전남지부장과 광주지역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 진행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김동수열사는 광주민중항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자로 수배된 것으로 판단하여 5월 19일 목포로 피신하였다가 5월 21일 초파일날 계엄군의 학살만행 소식을 듣고는 분연히 광주로 귀환하여 전남도청 항쟁본부에서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서 활동했다. 시신을 보관하고 안치하는 일이 김동수열사가 맡은 일이었다.
처참한 죽임과 야만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불살생을 첫 계율로 여겨온 불자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5월 27일 전남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싸우다 새벽 4시 30분경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김동수열사가 남긴 유품은 대불련 뱃지와 단주 하나였다.
자신의 일신과 안위만을 생각했다면 김동수열사는 목포에서 광주로 귀환하지 않았을 것이고,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에 남아 총칼에 짓이겨진 시신 수습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27일 새벽에 전남도청에 계엄군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렬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보살심이 아니면 결코 하기 어려운 결단이었다.
조선대 교정에 세워진 김동수 열사의 추모비에는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라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이해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화하는 삶이 아니라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불가의 생명존중 사상을 받들며 이를 온몸으로 우직하게 실천해간 김동수열사가 왜 아름다운 보살인지를 알게 하는 비명이다.
광주불교계는 이 행사를 준비하며 애틋하면서도 비장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김동수 보살의 기일에 열리는 5월 광주엔 비가 내립니다. 오늘 내리는 이 비가 지광 김동수열사를 비롯 5월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비가 되고, 오늘 내리는 이 비가 산 자들의 부끄러움을 참회하는 비가 되며, 오늘 내리는 이 비가 갈수록 ‘5월’이 박제화 되고 규격화 되고 국가로부터 공인된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5월 정신에서 멀어져가고 있지는 않은 지 가슴깊이 성찰하게 하는 비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김동수 보살의 제30주기 추모행사가 광주불교계만의 행사로 초라하게 치러지는 것은 그가 목숨바쳐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이 행사에 범종단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소통은 현재와만이 아닌, 의미 있는 역사와도 이뤄져야 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