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전라도의 한 산사에 다녀왔다. 이틀 동안 컴퓨터와 상관없이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와 텔레비전 대신 함께 한 것은 책과, 동행한 이들과의 토론이었다.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틀 동안 컴퓨터와 이별한 것은 일종의 휴식이자 재충전이었다.

일요일 밤, 늦게 집에 도착해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그동안 도착했을 이메일을 열어보고, 또 <미디어붓다>를 열어 독자들의 반응도 체크할 요량이었다.

이메일을 연 순간, 일아 스님의 편지가 몇 통 도착해 있었다. 며칠 전 ‘아소까’라는 묵직한 역저를 출간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너무나 밝고 당당했던, 목소리도 청아하면서 열정이 배어 있었던 스님이었기에, 또 당신의 한국불교의 교육문제에 대한 소신을 담은 글을 보내와 <미디어붓다>를 통해서 세상에 공개했던 스님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일아 스님의 메일을 읽으면서 가슴이 저며 옴을 느꼈다. 그렇게 밝고 청아한 목청을 했던 스님의 표정과 음성이 비록 문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었지만, 비통하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님의 글 ‘불법을 허물어뜨리는 주범은 강원, 강원을 폐지해야만 불교가 삽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글을 게재한 것이 스님에게 고통이 되어 돌아간 것이니, 송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 그만 나의 글을 내려달라’는 스님의 호소를 읽어 몇 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시나브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 글을 내리는 것이 스님의 고통을 줄이는 좋은 방법은 아니란 말씀을 전해야 하나, 알겠다며 스님의 글을 삭제해 드리는 것이 옳은 판단인가, 종잡기 어려웠다.

일아 스님이 겪고 있을 고통과 실망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내려야 하겠지만, 이미 교계 여론주도층의 상당수가 이 글을 읽은 상태이고, 인터넷의 특성상 여기저기 네티즌들에 의해 이 글이 퍼 옮겨졌을 것이기에 <미디어붓다>에서 글을 삭제하는 것이 스님의 고통을 해소시켜드릴 완전한 방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를 내일을 위해, 한국불교가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기 위해 승려교육 시스템의 혁신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스님의 애종심의 발로가 왜 이렇게 폄훼되고 도리어 스님에게 상처로 되돌아가야 하는가를, 스님의 의견을 존중한 분이나, 아니면 결과적으로 스님에게 깊은 상처를 준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이 글로 인해 일아 스님의 상처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오랫동안 기자를 망설이게 했음을 밝힌다.

스님의 장문의 글은 이미 보도를 해드렸으니 지금이라도 읽으면 될 것이고, 스님이 전해온 이메일 편지 일부를 공개해 <미디어붓다>의 독자들과 강호제현의 고견을 듣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불교계의 인터넷의 건전한 소통문화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그렇다.

스님은 지난 12월 23일 이메일을 통해 당신의 글을 게재해 줄 것 요청했다. 이 글과 함께 보내온 간단한 메모는 스님의 승가교육 개혁에 대한 원력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일아 스님은 이틀 후 다시 편지를 보냈다. <미디어붓다>에는 이미 스님의 글을 기사화했지만, 다른 매체에서는 아직 기사화가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이메일 편지를 보낸 것이다.

27일 밤늦게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이메일을 열어보니 26일 이후 스님의 편지가 세 통이나 도착해 있었다. 두통의 이메일은 스님을 글을 게재한 언론사에 모두 보낸 공동 이메일이었고, 마지막 한 통은 기자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그토록 한국불교의 미래가 걸린 승가교육 개혁의 글이라며 삭제 없이 전문을, 나눠서라도 꼭 게재해 달라고 하시던 스님의 당부는 당혹스럽게도 제발 글을 내려달라는 것으로 180도 바뀌어 있었다.

스님의 글을 게재한 보도에 대한 댓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인터넷 문화가 아직 덜 성숙되다 보니, 함량미달의 댓글이 달리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일아 스님은 당신 글에 대한 이성적 비판이 아닌 저급한 인신공격에 상처를 입으신 듯했다. 다급한, 그리고 크게 상처를 입은 스님의 편지는 윗 편지글을 보낸 후 2시간쯤 뒤에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스님의 간곡한 편지에도 <미디어붓다>에서 스님의 글을 보도한 기사가 삭제되지 않자, 스님은 이번에는 다시 기자의 이름을 걸어 편지를 보내오셨다. 토, 일요일 내내 지방에 머물며 컴퓨터와 떨어져 있던 기자의 사정을 아실 리 없기에 거듭 편지를 보낸 것이다.

문득 조계종의 어느 중진 스님이 종종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당시 스님은 자조섞인 목소리로 이런 말을 기자에게 건넸었다. 언젠가 조계종 한 중진스님의 말이라며 글로 써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이 기자, 조계종 큰일 났어요. 한 자리 맡아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거의 3무로 통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식과 무위도식과 무사안일 이 세 가지로. 공부 안해 무식하고, 전혀 생산적 일을 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고 사니 무위도식이고 무사안일이지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대로 가면 안 망하면 더 이상한 것이지….”

이 중진 스님의 말씀이 100%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에 아니라고 말하기도 또한 마땅치 않다. 상당부분 그런 흐름에 있다는 것이 솔직히 공감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아 스님의 가슴앓이를 보며, 또 스님에게 상처를 주는 댓글을 단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스님이라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한국불교의 미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래 한국승가를 책임질 젊은 스님들에 대한 승가교육을 개혁하자는 용기 있는 주창에 찬사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대못을 박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군가. 부처님의 제자가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