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간시장>으로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리고, 최근 인간 붓다를 그리는 소설 ‘대붓다’ 집필을 구상하고 있는 김홍신 소설가를 2월 18일 미붓아카데미(대표 이학종) 인문학 특강에서 만났다.
이날 김홍신 작가는 ‘소설가 김홍신이 본 불교정신’을 주제로 2시간 동안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했다.
그가 불교를 접하게 된 동기는 삶의 고단함이었다. <인간시장>을 말미암은 ‘벼락출세’는 그에게 명예, 치하와 함께 동년배들의 시기질투와 불특정 다수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됐다는 불안함을 안겼다.
그 시절, 스님들이 툭툭 던지는 화두, 짧게 던지는 메시지가 그를 불교로 이끌었다. 거기에 선 수행을 지도하며 ‘불교적 감성’을 일깨워준 지관 스님과 국회의원이 된 김홍신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진 법륜 스님의 영향으로 비로소 김홍신은 소설 ‘대붓다’를 구상하는, 또한 미붓아카데미의 강단에서 ‘불교정신’을 말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김홍신이 됐다.
김홍신은 ‘나는 불교를 잘 모른다’고 전제하며 불교정신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향기. 휴머니즘. 참 자유. 주인정신.

향기
그는 올 1월 법륜 스님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네 번째 인도 행이었다. 부처님께 우유죽을 공양한 처녀의 이름을 딴 수자타 마을에서 그는 향기를 맡았다. 진한 풀내음이었다.
“불가촉천민들이 소똥을 손으로 비빕니다. 손으로 만졌으면 밥을 먹을 때 씻어야 하는데 툴툴툴 털고 먹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러다 제가 벽에 붙여 놓은 소똥에 냄새를 맡는데, 악취가 아니고 풀 향기가 납니다. 소가 질긴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해서 완벽하게 소화를 해서 내보내는 게, 섬유질이 많고 향기가 짙은 거예요. 그 때 제가 수필을 쓰며 묘사한 게 그겁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욕심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으면 향기가 나는데, 받아들이는 건 많고고 다 소화시키지 못하니까 악취가 나는구나. 그러면은 욕구가 적든가, 욕구가 많으면 완벽하게 소화시키든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는구나.
6년의 고행 후에 부처님이 수자타의 우유죽을 드시고 깨달음을 얻으셨죠. 그 때 몸속에 들어가는 음식만 완벽하게 소화된 게 아니고, 정신이, 영혼이 거기서 완벽하게 소화가 됐다, 그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불교 정신이구나.”
휴머니즘
휴머니즘은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사상적·정신적 태도와 세계관을 말한다. 김홍신은 불교정신의 대전제는 이 휴머니즘이되, 인간애에만 국한되지 않은 존재 자체로서의 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내 존재 가치가 우주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너무 존엄한 거죠.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존재에요. 그러니까 내가 존재하려면 필요한 것이 뭐가 있어요. 미생물부터 물, 공기, 흙, 돌멩이 하나. 그러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가치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것, 이게 휴머니즘이에요. 왜? 나 혼자 생존할 수가 없거든요.”
그는 가장 존귀한 존재인 붓다가 휴머니즘에 입각해 위가 아닌 아래를 챙겼기 때문에, 즉 붓다의 ‘금강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을 만들었다고 단언했다. 김 작가는 서양의 ‘황금비(율)’를 동양에서는 ‘금강비’라고 부른다고 부연했다.
“동양의 금강비는 1:1.618이예요. 이 직사각형이 누워있을 때 안정감이 있죠. 불교정신이 뭐냐. 가로가 점점 길어지는 거예요. 사물은 길면 점점 아래로 내려가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 정신이 바로 이거예요. 붓다의 일대기를 보면 처음에 제자를 챙겼죠, 그 다음에 여성을 챙겼죠, 이건 가히 혁명이죠. 붓다께서 스스로 잘났고 영민하고 아름답고 찬란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붓다를 일으켜 세워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 나는 형상을 만든 겁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휴머니즘을 대자대비로 연결시켰다. 대자대비란 결국 어머니 정신이라는 것.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이와 심장을 맞대고 피부를 접촉하듯이, 대자대비란 사랑과 배려와 용서와 베풂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참 자유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에서 침팬지에게 4년간 140개 단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실시했다. 4년 뒤 침팬지의 첫 마디는 ‘Let me out(나를 놓아줘)’. 그는 이 실험에서 모든 존재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과, 붓다는 모든 욕망을 참 자유로 뛰어넘었다는 것을 봤다. 유흥과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붓다가 욕망을 제어하고 깨달음에 이른 것은 참, 자유로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저 나름대로 분석을 하면, 부처님은 하지 말라는 것 보다는 하라는 게 많았어요. 그것을 보면 결국 ‘참 자유’의 알맹이는 인생을 즐겁고 재밌게 살라는 거죠. 즐겁고 재밌게 살려면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가 저는 불교정신의 핵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불교정신에 물과 특성을 발견했다. 모든 것을 끌어안고 드넓은 바다로 가는 물처럼, 그 물들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그가 보는 불교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민속신앙을 받아들인 절집과 성탄절을 축하하는 불교문화에서도 불교의 포용력을 발견한다.
주인정신
김홍신의 불교정신은 마침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으로 귀결된다. 서는 자리마다 주인공이 되라는 이 선어가 일상생활로 들어왔을 때 반드시 엄숙하고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폐를 예로 들며 “소주 한 잔을 하고 5만원이 나왔어요. 그러면 ‘나는 오늘 신사임당을 내 맘대로 썼지’. 오만 원을 돈으로 보지 말고 신사임당을 썼다고 보는 거예요. 세종대왕, 이황, 율곡의 정신을 썼다고 생각하면 돈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적어도 불교정신은 이런 주인공 마음을 운용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지구의 중심이 어디죠? 내가 지금 서있는 내 발 밑이 지구의 중심이에요.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게 불교정신이에요. 온 우주 역사상 나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는, 정말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스스로가 꿀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꿀이 되어서 남도 기쁘게 하고 나도 기뻐야 돼요. 불교정신은 결국, 절에 나오던 안 나오던, 독송을 하던 안 하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의 기쁨이 될 수 있고, 내가 먼저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는 꿀을 생산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휴머니즘을 전제로 향기 나는 사람이 되어 참 자유 속에서 주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김홍신 작가. 그가 말하는 불교정신은 비단 불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한 한 중진 작가의 간곡한 당부에 다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