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사 부근에는 예로부터《천일대》《개심대》《진혈대》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전망대들이 있다.
천일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600년에 백제의 승려 관륵이 자기의 벗인 용운과 함께 금강산 도솔봉의 산허리에다 8방9암을 짓고 절 이름을 ‘정양’이라 하였다. 그 후 정양사의 승려들은 도솔천에 태어나기 위해 30년을 기한으로 하고 하루에 한 끼씩만 먹으면서 계율을 지키고 정신을 집중하여 불교의 도를 닦기로 하였는데 여기에 1,000명이 참가하였다.
* 관륵은 602년 10월에 왜땅에 가서 지리, 역서 등을 가르쳐준 학승이다.
* 도솔천은 불교에서 가상적으로 설정한 여러 ‘하늘세계’ 가운데 하나.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고통도 없이 즐겁기만 하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뒷바라지를 맡은 무착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1,000명의 승려들에게 한 끼씩 먹을 것을 마련해 주어야 하였다. 그 일이 너무도 힘들기 때문에 그는 여러 스님들에게 간곡히 말하였다.
“나는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데 하루 한 끼만 먹어서는 정말 그 일을 감당해낼 수가 없소, 그러니 여느 때와 같이 하루 세 끼를 꼭 먹어야만 하겠소. 여러 사람은 나를 ‘하루세끼 수좌’라고 불러주오.”
이때부터 여러 스님들이 그더러 조롱삼아 ‘하루세끼수좌’라고 불렀다.
정선의 금강산도 중 정양사 그림. 천일대에 올라 정양사 등 내금강의 절경을 바라보는 선비들이 글려져 있다.
어느덧 30년 세월이 흘렀다.
하루는 맑고 개인 날씨였는데 갑자기 우뢰가 울고 번개가 치는 가운데 남쪽 언덕 위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세끼 수좌는 빨리 나오라”
여러 스님들이 웬 일인가 하여 서로 돌아다보면서 “공양 맡은 중놈이 허위를 일삼는 수좌이기 때문에 그 죄가 커서 하늘이 이제 벌을 주려나보다”하고 중얼거렸다.
모두 두려워하여 마지않는데 공양 맡은 스님 무착만은 함박웃음을 띠며 나섰다. 그가 겨우 남쪽언덕에 도착하자마자 머리 뒤의 골 안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다보니 정양사의 반야보전과 약사여래전만이 남고 8방9암자와 999명의 승려들은 간 데 온 데 없어졌다.
무착은 “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도 있는가!”하면서 혼자 탄식하다가 문득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즉시 자리를 잡고 사색을 거듭하였다. 그가 깊이 사유하는 경지에 이르러 하늘세계를 우러러보니 999명의 승려들은 이미 도솔천의 궁전에 가 있었고 8방9암자와 정양사는 바다 속에 용궁으로서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무착 한사람만이 30년 동안 남들처럼 많은 공을 들이지 못해서 뒤늦게야 도리를 깨달은 것으로 된다.
그러나 공양 맡은 무착이 이 세상에 혼자 살아남아있으면서 좀 뒤늦게라도 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면 정양사라는 절에 대해서도, 1000명이 수양한 사실에 대해서도 후세사람은 아주 모르고 말 뻔하였다.
무착이 도를 깨달은 날에 봉우리 위에 초막을 짓고 14년간이나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 후 다시 정양사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정양사 서남쪽에 있는 천일대는 이렇게 1000명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남아있게 되었다고 하여 ‘일천 천’자, ‘한 일’자를 써서 ‘천일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천일대는 ‘하늘천, 한일’, ‘하늘천, 날일’, ‘일천천, 한일’ 등 여러 가지로 씌었는데 그 뜻은 ‘하늘아래 첫째가는 절경’, ‘하늘로 날아오를 듯 경치가 좋은 곳’, ‘천중에 하나만 있는 전망대’의 뜻으로 쓰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스님들에 의하여 그 내용이 불교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