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산수를 사랑하고 유람을 즐긴 신선 넷이 인간 세상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운 풍치를 돌아보기로 약속하고 동방의 명승 조선 땅을 찾았을 때에 있던 일이다.
“정말 듣던 말 그대로 명승중의 절승이로구나.”
이렇게 연방 경탄과 환성을 올리며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관서의 팔경과 관북, 영남의 황홀경치를 돌아본 네 신선은 천하 명승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관동팔경의 으뜸 금강산을 찾았다.
네 신선이 강원도 고성 땅에 들어서던 그날에 맑고 청청하였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고 먹장구름이 스쳐 지나면서 보기 드문 비를 쏟아 부었다. 억수로 퍼붓는 비속에서 네 신선은 그만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 아늑한 산촌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네 신선이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을 두루 살피는데 천상천하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별천지가 펼쳐져있었다. 여기저기 기세충천 솟은 아아한 산봉우리들이 아침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 정신마저 아연케 하였다.
“아, 저 봉우리들은 대체 몇 만이나 되는가. 저렇듯 영농하게 빛을 뿜으니 분명 봉우리마다 신귀한 보석이 깔린 것이 틀림없어.”
신선들은 너무도 황홀하고 신비하여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봉마다 골마다 신비경이고 변화무쌍한 조화를 일으키는 외금강과 내금강의 절승경개를 여러 날에 걸쳐 경탄과 흥분, 매혹 속에 돌아본 네 신선은 온정령을 넘어 지금의 만물상어구에 이르렀다. 때는 해돋이가 갓 시작된 아침이었다. 그런데 안개구름이 짙게 서려 신선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척도 가려볼 수 없는 자연에 파묻힌 네 신선은 조급한 마음 안고 의논했으나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하늘중천 높은 곳에서 풍악소리가 들려왔다.
신선들이 어리둥절 두루 살피면서 서 있는데 풍악소리는 신선들을 어서 빨리 올라오라 부르는 듯 더욱 크고 다정하게 들렸다.
신선들이 저마다 부푸는 가슴을 움켜쥐고 안타까이 구름 짙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어디선가 향기롭고 싱그러운 바람이 솔솔 불어오며 구름을 떠밀어 올리었다.
열자, 백자, 천자 구름이 산발을 타고 서서히 떠오르자 눈앞에 천태만상의 천지조화가 펼쳐졌다.
“야! 저거, 저거…”
신선들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환성이 터져나왔다.
네 신선은 신비경에 끌려 한 걸음 두 걸음 산정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황홀해 진 눈길이 걸음을 앞서 가니 발도 저절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뭇새와 짐승들도 즐겁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그들을 반겨 맞았다.
아니, 이건 또 웬 일이냐. 어느 결에 천선대에서 만상계 쪽으로 칠색영롱한 무지개가 서더니 풍악소리 더욱 요란한 속에 선녀들이 줄지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 선녀들이다. 선녀들이 우리를 맞아주는구나!” 하고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눈부신 옷을 떨쳐입은 선녀들은 밝은 웃음을 짓고 네 신선을 내려다보며 어서 무지개에 오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신선들도 그 무지개를 타고 말로는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선대에 모두 함께 내렸다.
그리하여 천선대에서는 여러 선녀들이 네 신선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하늘나라에서 가지고 내려온 <천도술>과 <황금술>을 권하며 종일토록 풍악을 울리고 춤추며 노래 불러 즐겼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선녀들이 하늘로 오를 시간이 되었을 무렵에 제일 아리따운 선녀가 신선들 앞에 무릎을 꿇더니 “신선님들한테 한 가지 청이 있사온데 들어주시겠는지요?”하고 의향을 물어보았다.
신선들이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니 그 선녀는 자기들의 만물상놀이를 마귀들이 방해하기 때문에 낮이면 이 산에 안개구름을 들씌워놓곤 했는데 마귀들이 이곳까지 오르지 못하게만 해주면 언제나 지금처럼 맑은 날씨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선녀는 그래야 앞으로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오늘 신선님들처럼 애타는 일이 없을게 아니냐고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선녀의 이 말에 네 신선은 선뜻 호응해 나섰다.
선녀들은 진정으로 고마워 거듭거듭 칭찬을 하고는 이제 그만 갈 시간이 되어 아쉽지만 헤어져야겠다고 하면서 무지개 한끝을 하늘에 올려놓고 또 한끝은 만상정쪽으로 내려놓았다.
이리하여 무지개를 타고 선녀들은 하늘로 오르고 신선들은 아래로 내리었다.
잠시 후에 무지개는 걷히었으나 뭇새들의 상쾌한 지저귐만은 여전히 온 골안에 차고 넘쳤다.
연꽃처럼 아리따운 선녀들이 하늘로 올라간 다음에 신선들은 마귀를 막을 방도를 의논하고 아래에서 모여드는 마귀들이 잘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험상궂은 바위 하나를 세워놓았다. 그 바위는 눈결에 얼핏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네 신선이 제각기 한 면씩 맡아서 바위의 동, 서, 남으로 세면은 험상궂게 만들고 북쪽 면만은 선녀들이 보아도 무섭지 않게 곱게 다듬어 놓았다.
신선들은 그 험상궂은 바위(귀면암)을 세워놓은 것이 자기들의 솜씨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하도 신기하게 만들었는지라 그 아래 켠에 나란히 늘어서서 즐기던 중에 셋밖에 설 자리가 없음을 안 눈치 빠른 막내신선이 훌쩍 맞은편 봉우리로 건너뛰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넌지시 세 신선들쪽을 건너다보면서 제가 좋은 자리를 잡았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세 신선은 넷이 다같이 가지런히 서지 못한 것이 서운하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 홀로 떨어져있는 신선을 동정하면서 오늘까지도 그대로 서있게 되었다. 이것이 삼선암과 독선암이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금강산의 경치가 네 신선의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아 그들은 끝내 돌로 굳어지고만 것이다.
신선들이 험상궂은 바위 귀면암을 만들고 그 자리를 지켜선 다음부터는 선녀들을 해치려고 하던 마귀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였고 날씨는 거의 매일같이 맑게 개여 만물상을 찾는 사람들을 언제나 기쁘게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