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하는 울산광역시 울산박물관(관장 김우림)은 ‘울산 영축사지 유적’(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4호) 2차 학술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지난 12월 10일 오후 2시에 울주군 청량면 율리 영축사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개최했다.

울산 영축사지의 사역 전역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영축사지의 근경

영축사지의 원경

영축사지의 전경
영축사는 <삼국유사>에 창건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울산박물관은 영축사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2년 1차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쌍탑일금당식(雙塔一金堂式) 가람(금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탑을 배치하는 구조로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적인 가람배치 구조)임을 확인하였다. 이후 영축사의 규모와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2013년 10월부터 2차 학술발굴조사에 착수, 중문지(中門址,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중앙의 출입시설), 회랑지(回廊址, 사찰이나 궁전에서 주요 시설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를 확인함으로써 영축사의 중심 사역 범위가 분명해졌다.
중문지는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로, 전체 길이 8.6m, 폭 5.1m 규모이다. 금당지에서 남쪽으로 30m 떨어져 동일 선상에 위치한다. 중문지의 동, 서방향으로는 남회랑이 이어지는데, 중문지의 남북 폭은 남회랑보다 약 1.3m 정도씩 넓게 축조되었다. 회랑지는 동-서-남-북 모두 확인되며 측면 1칸의 단랑(單廊, 회랑지의 보칸이 1칸으로 구성된 구조) 구조이다. 동·서회랑지는 금당지 중심에서 동쪽으로 32m, 서쪽으로 32m 지점에 위치하고, 남ㆍ북회랑지는 금당지 중심에서 남쪽으로 29.5m, 북쪽으로 24m 지점에 위치한다.
회랑으로 둘러싸인 영축사 중심 사역부의 전체 규모는 동서 길이 약 69.5m, 남북 길이 약 56.5m로, 영축사(683년)와 창건 시기가 유사한 경주 감은사(682년)가 동서 길이 74m, 남북 길이 76m인 것과 비교하면 동서 길이의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영축사가 신라 지방 사찰임을 고려하면, 당시 영축사는 감은사에 버금가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판단된다.

울산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석불 좌상 전면. 불상 윗부분이 소실됐다.

석불좌상의 측면 모습.
이 외에도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石佛坐像) 1점이 출토되었다. 폭 83㎝, 두께 54㎝, 잔존높이 35㎝인 반가부좌를 틀고 있는 좌상으로, 상반신이 결실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옷 주름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몸체의 양감이 뛰어나 당시 통일신라 공인의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 기와류는 좌우 대칭 구도의 쌍조문(雙鳥文) 수막새, 특수 기와인 귀면와(鬼面瓦)와 연화문 마루수막새(곱새기와, 望瓦) 등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울산박물관은 금당, 동·서탑, 중문, 회랑으로 구성되는 영축사의 가람배치와 경주 감은사에 버금가는 사역 규모를 확인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를 가진다고 전했다. 차후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영축사의 창건-중창-폐사 과정과 석탑 축조방법 등을 확인하여 영축사의 역사적 위상을 밝히고 통일신라시대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