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길상사 옆에 위치한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이사장 덕운 스님) 조리장이 앞치마를 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이면 결식이웃 밑반찬 조리봉사로 바빠지는 조리장이지만 이 날은 그 열기가 더했다. 연말 김장 나누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자원봉사자 때문이다.

맑고 향기롭게는 12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결식이웃 후원을 위한 김장 나눔 행사를 실시했다. 김장 속 재료를 다듬는 4일 봉사에는 1백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가했다. 맑고 향기롭게 회원은 물론 코레일 서울고속철도열차승무사업소 봉사팀 ‘나누미회’와 동국산업 봉사단, 육군 수도사령부 병사들, 외국인 청년 선교단이 함께했다.

먼저 조리장 한쪽에서 손바닥만 한 목욕탕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쪽파를 다듬는 푸른 눈의 외국인이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했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인 길상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예수그리수도 후기 성도교회 외국인 선교단이었던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맑고 향기롭게의 김장 봉사를 발견했다는 정지호 장로는 외국인 선교단에 한국의 김장문화를 소개하고 결식 이웃을 위한 봉사도 하는 등 1석2조의 효과를 내기 위해 이번 봉사에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외 조리장에서 김장 속 재료를 다듬는 일이 외국인 청년들에게 썩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재잘거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덧붙였다.

매달 둘째 주 목요일마다 맑고 향기롭게의 조리봉사를 돕고 있는 코레일 서울고속철도열차승무사업소 봉사팀 ‘나누미회’도 김장 봉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일등공신이다. 한 달에 6백 포기씩 담그는 김장 실력이 4천 포기를 담그는 이번 김장 봉사에 십분 발휘되는 것이다.

김충현 나누미회장은 “무엇을 바라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우리가 담근 김치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되는 것,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일하는 게 행복”이라며 “오늘 김장 봉사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펼쳐진 맑고 향기롭게 김장 봉사에서 이사장 덕운 스님과 외국인 선교사 봉사자들이 재료를 다듬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재료 다듬기가 한창인 때,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덕운 스님이 조리장을 찾았다. 덕운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부처님의 오색진골사리가 인쇄된 금빛카드를 손수 건네며 봉사활동을 독려했다. 카드를 받아드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덕운 스님은 이날 김장 봉사에서처럼 다양한 단체와 계층이 참가하는 맑고 향기롭게의 활동상을 자원봉사자와 실무진의 공으로 돌리며 “나는 큰 흐름만 잡을 뿐, 실무진의 세심한 업무와 자원봉사자들의 손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한 “올해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인 길상사가 창건된 지 16주년이 되는 해”라며 “오는 12월 15일 봉행되는 16주년 창건법회와 더불어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정신이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