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경 교수(이화여대 철학과). 사진=미디어붓다 자료사진


지난 11월 23일, 연세대 외솔관에서는 한국선학회가 주최한 추계학술대회가 ‘간화선,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토요일 아침, 헬스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침부터 연세대를 찾은 것은 기실 한자경 교수의 발제를 구해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간화선에 관한 여러 발제가 있었지만, 나의 관심의 8할 이상은 한자경 교수의 ‘간화선의 철학적 이해’라는 논문에 쏠려 있었다. 이유는 왠지 이번에도 나에게 엄청난 불교적 자양분 줄 논문일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의 논문을 읽어가면서, 비록 천학비재한 기자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선어록을 읽으면서도 잘 느끼지 못했던, 또 내로라하는 선사들의 법문을 들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섬뜩함을 느꼈던 것이다.

한 교수는 결코 길지 않은 이 논문에서 간화선의 구조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표층의식과 심층마음이 있고, 여기서 심층마음이 일심(一心)이라는 것, 그 표층의식 때문에 일심이 드러나지 못하니 일심을 그대로 드러나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표층의식에서 심층마음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필요하며, 그 계기로 제시된 것이 간화선의 화두이고, 간화는 표층의식, 사유의 한계로 유인하고, 사유의 한계(은산철벽)에서 화두에 집중하면 장벽너머 일심이 드러난다는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표층의식을 견문각지심으로, 심층마음을 공적영지의 마음으로 견주어 설명하는 챕터 2 ‘간화선의 지향점:본래면목으로서의 일심’ 중 ‘불교에서의 일심의 이해’편에 대한 설명은 이 발제의 정점에 해당된다. 이 장을 정독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토요일 하루가 즐거웠다.

독자들이 의아할 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기자의 글쓰기가 아니지 않는가, 라는 반문도 있을 것이다. 하여, 여기서 발제문의 일부분을 소개해보기로 하자.

불교는 캄캄한 방에서 어둠밖에 없어도 우리는 본다고 말한다. 무엇을 보는가? 보여지는 개별 대상은 없다. 색깔은 어둠에 묻혀 사라지고, 있는 것은 허공 뿐이다. 우리는 어둠속에서 그 허공을 본다.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대상이 없이 보는 것이다. 실제로 깜깜하던 방에 빛이 들어와 색깔을 보게 되면, 보여지는 것이 어둠(대상 없음)에서 색깔(대상 있음)로 바뀌는 것 뿐이지 보는 활동이 없다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보지 않는다면,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는 그때에도 우리는 듣는다고 말한다. 무엇을 듣는가? 고요함을 듣는다. 소리로 채워지지 않은 정적을 듣는 것이다. 고요를 듣고 있지 않다면, 들리는 소리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처럼 우리에게는 색으로 채워지지 않은 허공(공), 소리로 채워지지 않은 정적(적)을 보도 듣는 마음활동이 있다. 이 마음활동을 불교는 ‘공적을 선령하게 안다’는 의미에서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부른다. 색깔과 소리 등 의식의 대상을 반연하지 않고도 깨어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갖가지 색깔을 보고 갖가지 소리를 들어 아는 반연심, 대상에 따라 움직이는 견문각지심보다 더 깊다는 것을 뜻한다. 대상 없이도 깨어 있는 이 심층의 마음이 공적영지의 마음이다.



지난 11월 23일 연세대 외솔관에서 열린 한국선학회 추계학술대회에는 토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어지는 발제의 내용을 더 인용하거나 설명하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이쯤에서 줄인다. 성이 차지 않는 독자께서는 한국선학회로 연락해서 각자 이 논문집을 구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한국선학회: seonstudy@naver.com)

표층의 주객분별의 견문각지심 너머 심층의 주객포괄의 공적영지심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심층마음에 본래적 깨어 있음, 즉 본각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 간화선은 이것을 이론적 논증이 아닌 구체적 수행으로 증득하고자 하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한자경 교수는. 최근 물리주의적 관점에서 의식의 현상성을 의식의 지향성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뒤바뀐’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표층의식이 심층마음에 근거한 것인데, 그 심층마음을 표층의식에 의거해서 다시 설명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물리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식으로 마음을 마음으로 대상화해서 붙잡으면 결국 ‘환 아닌 것’(마음)이 ‘환’이 된다. 그래서 물리주의자들은 진짜로 마음을 물리적 두뇌가 만든 ‘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간화선은 이런 식으로 심층마음을 표층의식의 개념과 사유틀에 따라 객관화하여 사유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결국 점점 더 자신을 미망에 빠뜨린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한 교수는 강조한다.

한 교수는 결론적으로 간화선이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분별적 사유 바깥에 서서 내가 보는 전체 우주가 곧 우주를 보는 나의 마음과 둘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 결국 우리의 일상 마음에 이미 그러한 일심의 각성, 본각이 함께 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한자경 교수의 ‘발제’에 논평을 밭은 변희욱 박사(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은 “좋은 글을 마주하는 즐거움, 글 읽고 글 쓰는 자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좋은 글을 만났다. 비록 군자가 아니고 진정한 학자라고 자부하지는 못하겠지만, 학문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맛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며 “좋은 글을 만나 즐겁게 읽는 호사를 누렸다. 좋을 글을 마지 못해 해부(논평)하는 불편한 기억을 쌓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날 한국선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신규탁 교수(연세대 철학과)가 ‘무자 화두를 통해 본 간화의 방법 고찰’을, 서광 스님이 ‘심리치유적 관점에서 간화선의 응용모델’을, 정영식 교수가 ‘일본 화엄승 봉담의 간화선(벽암록) 비판’을, 이병욱 박사(고려대 강사)가 ‘천태 십승관법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간화선’을, 성해영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가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간화선’을 각각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