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장경 축전을 기념해, 가야산 해인사 마애불을 1200년 만에 일반에 공개하겠다는 날(8월 8일)에 맞춰 전날 오후 부랴부랴 합천으로 달려갔다. 통일신라(9세기) 무렵에 조성된 마애불로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불상이기에 관심이 각별했던 것이다.

친견의 원력을 세웠다면 진즉에 친견의 기회를 가졌겠지만, 시절인연은 이제에야 가야산 꼭대기에 서 있는 마애부처님과의 만남을 허락하는 듯했다. 먼 길이기에 망설임도 없지 않았으나, 마침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과 동행하게 되어 원행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가야산 해인사 마애불의 얼굴부분 모습.


다 알다시피 해인사는 고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로 이름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절로 손꼽힌다. 해인사의 이름인 해인은 화엄경의 해인심에서 따온 것으로, 깊고 넓고 고요한 완전한 경지를 의미한다. 완전한 삼매의 경지를 우리는 해인삼매라고 하는데 바다의 표면이 추호의 일렁임도 없이 고요해 도장을 찍으면 그대로 찍할 듯이 적막한 경지를 상징한다면 이해가 빠를까.

해인삼매의 경지를 미술사학가 이태호 교수는 해인사 경내가 아닌 홍류동 계곡을 거슬러 한 시간여 쯤 올라가 만난 마애불 앞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그의 역저 <한국의 마애불>에서 술회하고 있다.

"마애불은 가야산 정상 기암연봉을 배경으로 장대하게 서 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으니 우리나라 마애불 가운데 가장 하늘 가까이에 닿아 있는 부처인 셈이다. 군집된 바위들 가운데 가장 큰 바위에 조성된 마애불은 동남향으로 서 있어 아침 햇살이 들 때면 화려하게 피어오른 가야산 기암들과 함께 부처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이태호 교수가 가야산 정상 마애불상 앞에서 느낀 부처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마애불을 친견하러, 산길을 잘 모르면서도 가야산을 오르며 나는 화두처럼 통일신라 마애부처님의 진면목을 머릿속 한 켠에 담아두고 있다.

가야산 해인사 마애불은 7미터 높이의 장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야산 상왕봉 정상을 가다보면 마애불이 나타난다는 홍제암 거사님의 조언을 듣고 오전 7시에 홍제암을 나섰다. 녹음이 지쳐 차라리 검푸른 기운이 도는 가야산을 한발한발 걸어 올랐다. 장맛비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산길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푹푹 찌는 더위는 초입을 막 올랐을 뿐인데도 온몸을 적시는 땀을 간단없이 뽑아내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상왕봉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원래 길 안내를 하기로 했던 대장경축전조직위원회가 해인사와의 협의가 덜 되었다며 해인사 마애불 안내를 포기해 부득이 두 사람만이 산을 오른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물어물어 오를 수밖에 없었지만, 낯선 산행길은 늘 판단을 흐리게 하게 마련이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산길이기에 하룻밤 신세를 진 홍제암 거사님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서울사람이 경상도 말을 100% 다 알아듣기는 참으로 어렵다. 홍제암 거사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도 길을 잘못 접어든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해인사 마애불상의 발 부위 모습. 발 위해 햇빛 한 점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은 예감에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대장경축전조직위, 홍제암의 거사님께 번갈아가며 전화를 돌렸다. 깊은 산중이라 전화 상태도 좋지 않아 애를 먹으며 수차례 전화 연결을 한 결과는, 길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해인사까지 내려와서 다른 길을 찾아서 올라가야 한다는 현실에 황소장과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1200년 만에 공개된다는 마애부처님 친견이 쉽겠는가, 라고 애써 자위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로도 두 갈래 길이 나타날 때마다 수차례 전화를 하며, 그야말로 물어물어 산을 올랐다. 그렇게 마애불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몸도 마음도 지쳤고,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저 멀리 위풍당당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부처님의 옆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순간,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자리에 서서 합장을 하고 인사를 올렸다. 3시간에 걸친 산행으로 인한 피로는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다. 힘든 표정 대신 얼굴에는 환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해인사 마래불의 수인 모습. 거대한 마애불의 수인같지 않게 정교한 조각이 눈길을 끈다.


합장을 한 채로 부처님께 다가갔다. 1200년 전에 조성된 통일신라 마애불, 그리고 1200년 동안 오직 스님들의 기도처로만 역할을 해온, 물론 더러 이곳을 오간 극소수의 재가자들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이 성스러운 장소에 오르니 절로 감동이 벅차올랐다. 그 순간 미황사 금강스님이 어느 핸가 이 마애부처님과 관련해 들려준 말씀이 떠올랐다.

“해인사로 출가를 했는데, 처음 해인사로 가던 날, 마애부처님을 찾아서 눈길을 헤치고 큰절 뒷산에 올랐어요. 마애부처님을 처음 친견하는 순간, 얼마나 좋던지. 저는 거기에서 한 가지 발원을 했어요. ‘금생에는 출가수행자로 살겠다’는 서원을 냈습니다.”

스님들의 기도처로 그만한 곳이 없다는 금강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나도 기도를 하기로 했다. 홍제암에서 가져온 과일을 부처님 전에 정성껏 올려놓고 우리는 오체투지 3배를 아주 천천히 올렸다. 간절한 기도를 올리다보니 자연 몸짓이 느려진 것이다.

정성을 다해 3배를 마친 후 황소장과 기자는 서로에게 무엇을 기도했는지를 물었다.

“이대표, 뭘 빌었어?”
“응, 미디어붓다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어. 황소장은?”
“응, 나는 앞으로 ‘부드럽고 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지.”

우리는 하염없이 부처님을 살폈다. 불경스러울 정도로 마애부처님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문화재전문위원이며 문화정책전문가인 황 소장과, <돌에 새긴 희망>이라는 책을 펴낸 나름 마애불 전문가를 자처하는 기자가 거대하고 멋들어진 통일신라 마애불을 친견했으니 허투루 시간을 보낼 리 만무.

두툼한 입술, 마치 뽀뽀를 하자고 입술을 내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풍성하다.




가사를 맨 끈의 모양을 매우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조각했다.


잘 생긴 남자의 모습을 한 통일신라의 부처님은 그런 우리를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계셨다. 꽉 다문 입, 특히 짧은 인중과 두툼한 입술은, 마치 코를 잇따라 새겨놓은 듯 크고 풍만했다. 마치 뽀뽀를 하자며 입술을 쭉 내민 형국이라고나 할까. 7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인 관계로 원근감을 계산해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겠지만, 다른 마애불에서는 볼 수 없은 육감적인 입술이다.

두툼한 볼과 다소 매서운 눈빛은 이 부처님이 마냥 자비만을 베푸는 분이 아님을 알게 한다. 특히 해인사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들에게 정진을 다그치는 눈빛은 아닐까 여겨진다.

가사의 매듭을 표현한 기법도 준수하고, 통견의 옷 주름도 부드러운 천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수인의 모습이다. 마애불의 수인치고는 표현이 정교하고 조각솜씨 또한 수준급이다. 전체적인 안정감은 고려양식의 마애불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거대한 바위에 섞여 있는 금속성분 탓인지, 얼굴을 포함하여 전반적으로 자줏빛 톤을 드러내주고 있다. 자줏빛 돌부처님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시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