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건축물 등을 상세하게 그려 놓은 1500여년 전 삼국시대의 바위그림(암각화)이 발견됐다고 경향신문이 6월 24일로 보도했다.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각종 문양·명문·그림이 새겨진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의 발견(1970년) 이후 최고 가치의 암각화가 확인됐다는 평가다. 경향신문은 지난 6월 21일 암각화 전문가들과 함께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서 삼국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를 발견했다. 답사에는 역사학자인 임세권 안동대 교수(전 한국암각화학회장)와 박희현 서울시립대 교수(전 서울시립대박물관장), 암각화 연구가 김호석 화가가 동행했다. 암각화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한국 고건축사, 미술사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조경의식이나 생활상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암각화가 발견된 곳은 충남 청양군 장평면 화산리에 있는 혜림암(惠林庵) 뒤편 산중턱이다. 칠갑산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혜림암은 고찰인 대한불교 조계종 정혜사의 산내 암자다.
암각화는 가로 1m, 세로 80㎝ 크기의 둥그런 바위(고운 입자로 된 사암)의 한 면에 그려졌다. 그림이 그려진 면은 가로 61㎝, 세로 35㎝ 크기다. 전문가들은 “바위를 매끈하게 다듬고 그린 것으로 보이지만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질 않아 좀 더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은 날카로운 금속도구 등으로 가는 선을 그어 형상을 만든 세선각화다. 세선각화는 암각화 발전 과정에서 청동기시대 말기부터 삼국시대(약 4~7세기 중반)에 주로 나타나는 형식이다.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세선각화는 암각화 소멸과 함께 사라진다.
우선 5개의 건축물이 명확하게 확인됐다. 모두 기와지붕으로 일부는 팔작지붕 형식을 보인다. 건축물 중 4개는 고상가옥 형태, 1개는 평지가옥 모습이다. 고상가옥은 현재의 수상가옥과 비슷한 형태로 지표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거주공간·창고 등을 만든 건축물이다. 침수나 습기, 동물이나 독충 등의 피해를 막고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건축물 형식이기도 하다.
임세권·박희현 교수는 “전해지는 고상가옥은 없지만 관련 유적은 확인되고 있다”며 “고상가옥은 청동기부터 삼국시대 주택이나 창고·제단·망루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고상가옥 유적은 하남 미사리, 부여 송국리 등에서 발굴됐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가야시대의 ‘집 모양 토기’(가형토기) 중에도 고상가옥 형태가 있다. 암각화 속 고상가옥 기둥들은 기둥 밑둥을 동그랗게 깊게 파 강조함으로써 지표에 깊이 박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건축물 일부는 정면·측면·조감 등 여러 시각에서 본 형태를 하나로 조합해 그렸다. 전문가들은 “국보인 ‘천전리 각석’ 발견 이후 구체적 형상물, 특히 기록화적 성격의 풍경그림이 확인된 것은 처음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김 화가는 “화가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시점을 조합한 것은 건축물 형태를 온전히 알려주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붕 양쪽 끝에는 건축물 규모에 비해 큰 치미(고대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부착한 대형 장식기와)가 그려져 있다. 과장스럽게 표현된 치미는 건물의 규모가 그림보다 더 크다거나 어떤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암각화 오른쪽 아래에는 홍살문 형식의 문이 새겨져 흥미를 끌었다. 문 왼쪽에는 연꽃무늬가, 오른쪽에는 물고기 무늬로 추정되는 문양이 장식돼 있다. 전문가들은 “더 연구·분석해야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라며 “다만 건물들이 밀집한 한 장소에 들어가는 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홍살문 형식의 그림 아래에는 ‘大’(대)자 명문이 뚜렷하고, 그 위에는 ‘天’(천)자로 추정되는 글자도 새겨져 있다.
암각화 오른쪽 위에는 배모양도 그려졌다. 김 화가는 “백마강이 그리 멀지 않아 강변 마을을 상징하거나, 고대에는 이 근처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암각화에는 또 간략한 선으로 나무를 표현하거나, 산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형상, 정확하게 파악이 안되는 문양과 그림들도 다수 확인됐다.
청양 암각화는 “향후 정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이고 일관된 한 풍경을 기록화식으로 그린 이 암각화는 사찰건물이나 행정관서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며 “고건축사나 미술사, 당대 각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정혜사 사적기나 당시 고문헌 등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심도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화가는 “기원이나 바람을 각종 문양으로 표현한 기존 암각화와 달리 이번 암각화는 구체적 삶에 관심을 둔 그림이라는 점에서 당대 미적감각, 조형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사·사진 경향신문 도재기 기자 보도 인용>
